반성으로 희망을 연 유성룡과 그의 시간을 엿보다

조채원 / 기사승인 : 2020-09-11 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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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징비록(懲毖錄) - 종군 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

국가의 존망을 가른 참혹한 전쟁이 7년 동안 이어졌다. 온 나라가 황폐화되고 백성들은 도륙당했다. 왜군에 짓밟히고 명군에 수탈당한 백성에게 절망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당면한 국난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해야 했다. '재조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만들다)'의 사명을 부여받은, 재상 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한 일은 지난 과오를 되새겨 후세의 경계로 삼는 것이었다.

▲  '징비록(懲毖錄) - 종군 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 


전란에 겪어야 했던 백성의 아픔을 목도한 위정자의 처절한 반성을 담은 '징비록'을 르포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이 나왔다. 신간 '징비록(懲毖錄) - 종군 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이 그것이다. 그의 '징비 정신'은 왜란 이후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그가 백성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한 위정자였다는 것은 유성룡 사후,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거행된 조선조 최초의 백성장이 증명한다.

저자 조진태는 앞서 지난해 출간된 '난중일기-종군 기자의 시각으로 쓴 이순신의 7년 전쟁'에서 국운을 짊어진 무장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의 양상,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하는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그려낸 바 있다. 이번엔 그의 막역한 지기이자 당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이 1592년부터 1598년 왜란이 끝나기까지 전란을 진두지휘한 경험을 토대로 기록한 징비록을 다뤘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르포와 스트레이트 기사를 병행하면서 유성룡과 그의 시간을 채웠다. 기사는 유성룡이 사망한 1607년(정미년)에 프롤로그 형식으로 출발, 손죽도 왜변이 일어난 1587년(정해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후부터는 시간에 따라 전개된다. 그리고 유성룡이 정계에서 은퇴한 1598년(무술년)에 사실상 마무리된다. 전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해전은 전작과 일치해 대부분 스트레이트 기사로 짧게 처리했다.

또 실제 유성룡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은 징비록과는 달리,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보태 유성룡이라는 인물을 생생하게 재현하려 노력했다. 다각도에서 그를 이해함으로써 독자의 평가를 돕고자 함이다. 유성룡이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기축옥사의 전개, 그의 탄핵 과정, 퇴임 후 행적 등 징비록에 없는 부분도 다소 포함됐다. 특히 유성룡이 전시 중 설치한 훈련도감이나 각종 군제·세제의 개혁정책은 유성룡의 기록이 아니라 다른 사료를 인용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춘 2020년 대한민국. 그 어느 때보다 국난 극복에 힘을 모을 개인 하나하나가 절실한 시점이다. 전쟁의 공포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문을 열어내야 하는 과제가 현 세대에도 주어진 것은 마찬가지다. 이 책에 담긴 유성룡의 지혜와 인내가 그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UPI뉴스 / 조채원 기자 ccw@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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