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상주본, 국민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장기현 기자 / 기사승인 : 2019-07-22 16: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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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요구 '1000억원' vs 문화재청 포상금 '1억원'

지난 15일 대법원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55) 씨가 문화재청의 서적 회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배 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판결로 상주본의 소유권이 배 씨가 아닌 문화재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상주본은 현재 배 씨가 소유하고 있고, 배 씨만이 상주본의 위치를 알고 있다. 배 씨는 어딘가에 상주본을 숨겨둔 채 국가 반환의 요구 조건으로 1000억 원을 제시하며 버티고 있다.

'상주본' 논란의 역사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 28년(1446)에 발행된 일종의 훈민정음 해설서로, 원래 간송미술관에 보관 중인 '안동본'이 유일한 해례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경북 상주에 거주하는 배익기 씨가 2008년 자신이 갖고 있는 판본이 안동본과 같다면서 공개했고 진본으로 판명됐다. 이 판본 이 바로 '상주본'으로, 16세기 때 표제와 해설이 더해져 학술적 가치가 안동본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 불에 그슬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뉴시스]


상주본과 관련해 세 차례의 대법원 상고심 판결이 있었다. 첫 번째 상고심은 배 씨의 절도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으로, 배 씨는 고(故) 조모 씨의 골동품상에서 30만 원을 주고 고서적 2박스를 구매했다. 


배 씨는 그 박스 안에 상주본이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한 반면, 조 씨는 배 씨가 궤짝에 올려둔 상주본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두 번째 상고심은 조 씨가 배 씨가 가져간 상주본을 되돌려달라는 '물품인도'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민사재판으로, 대법원은 배 씨가 가져간 상주본을 조 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확정 판결했다. 재판 중 숨진 조 씨는 문화재청에 상주본의 소유권 일체를 기증했다. 


문화재청은 대법원 민사소송의 확정 판결을 근거로 배 씨에게 상주본을 내놓으라며 '강제집행'을 시도했고, 배 씨는 형사소송의 확정 판결을 근거로 상주본이 자신의 것이라며 맞섰다.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민사적으로는 배 씨가 훔쳤다는 취지가 사실로 인정돼 조 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이 확정됐지만, 형사적으로 절도범이라고 단정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이처럼 대법원 민사판결과 형사판결이 갈리면서 국민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0억 원 vs 1억 원'…아니면?

배익기 씨는 1000억 원을 받아야 상주본을 국가에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배 씨는 "주운 돈도 5분의 1은 찾은 사람에게 준다"며 "상주본은 가치가 1조 원 이상이기 때문에 10분의 1만 받아도 1000억 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엔 제3의 독지가가 배 씨에게 상주본의 대가로 상당 금액을 제시했고, 돈을 받으면 상주본을 넘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대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금전적 보상을 통해 상주본을 회수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재판 결과를 배 씨에게 통지해 온전하게 문화재를 반환하도록 설득할 것"이라면서도 "배 씨가 계속 상주본 반환을 거부하면 강제 집행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동시에 문화재 은닉 및 훼손죄로 검찰 고발 조치도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주본의 가치로 평가된 '1조 원'에 대해 오도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감정 당시 8000억 원으로 평가된 '직지심체요절'보다 상징적 의미가 있는 훈민정음이 더 높아야 된다는 의미에서 '1조 원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최진녕 변호사는 "법적 절차에 따라 1조 원의 가치가 나온 적이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1조의 10분의 1인 1000억 원을 내놓으라는 주장도 법적 근거가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보를 돈으로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넌센스"라고 덧붙였다.

서기호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는 "신고 포상금 1억 원에 대해서는 소유권과 관계없이 보상의 성격으로 지급이 가능하다"며 "공식적인 방식으로는 1억 원이 최대금액이고, 배 씨도 이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가능성 중의 하나로 민간의 독지가가 배 씨에게 기부의 형태로 지급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품으로 돌아올까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익기 씨가 1000억 원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상주본 반환을 거부하면서, 국보급 보물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강제로 상주본의 소재를 밝힐 방법도 없거니와 강제집행이 시작되면 배 씨가 우격다짐으로 상주본을 훼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2015년 3월 30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구잠리에 위치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 씨의 집 화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요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최진녕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봤을 때는 상주본이 단 1분도 본인 배 씨의 소유였던 적이 없다"며 "적어도 민사적인 측면에서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돈으로 보상해 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배 씨가 직접 보관하고 있었고,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며 "법리적으로 따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를 위해 국가와 배 씨 사이에서 대승적인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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