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야인' 끝에 화려하게 서울시장 복귀한 오세훈은 누구?

김광호 / 기사승인 : 2021-04-08 11: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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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권 변호사'로 스타덤…강남 의원으로 국회 입성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시장 사임 후 10년간 정계야인
경선·단일화서 승리하며 상승세…정치인생 반전 마련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10년 만에 서울시에 재입성하게 됐다. 지난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시장직을 사퇴한 이후 10년간 야인으로 지냈다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오세훈 제38대 서울특별시장이 8일 오전 중구 서울시청 집무실로 들어가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오 시장은 1961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귀공자 외모와 달리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가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9년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부에 들어갔고 대학교 2학년 때 고려대 법대로 편입,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스타 변호사'로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는데 1993년 유명한 '일조권 소송' 때부터다. 당시 인천의 한 아파트 일부 가구의 법정 대리인을 맡아 대기업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해당 소송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조권이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으로 인정받는 판례를 만들었다.

준수한 외모와 달변으로 TV에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에 영입돼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됐다. 이명박(MB) 서울시장 입후보 당시 캠프에서 대변인을 지내 MB계 인사로 분류됐다.

잘 나가다 2004년 총선 불출마를 돌연 선언했다. 정계를 떠난 듯 보였지만 2006년 지방선거 직전 한나라당에 복귀, 경선을 통과하며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본선에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강금실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이 됐다.

시장 재임시 서울시 통합 민원 서비스인 다산콜센터 설립, 경기도·인천시와의 협의를 통한 수도권 통합 대중교통 환승제, 디자인 서울 계획을 통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설계 등을 이뤘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10년 최초의 재선 시장이 됐다.

이듬해 문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그는 서울시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밀어붙인 무상급식을 '과잉 복지'라며 강력 반대했다.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제안하며 시장직을 내걸었다. 하지만 투표율은 25.7%에 머물러 주민투표는 개표조차 하지 못한 채 무산됐다. 그는 8월 26일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서울시장 사퇴 뒤 10년 간 암흑기를 보냈다. 2016년 20대 총선과 지난해 21대 총선 등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와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전당대회에 도전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야인 생활이 이어졌다.

절치부심한 그는 이번 선거에서 같은 당 나경원 전 원내대표, 제3지대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차례로 꺾고 부활했다.

이번 선거 승리로 정치인생의 확실한 '반전'을 마련하게 됐다. 일단 차기 대선이 아닌 차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자신이 이번에 내건 공약이 대부분 5년짜리라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재차 출마하겠다는 뜻을 누누이 밝혔다. 그는 당선이 확실시되자 "서울시민께 감사드린다"며 "지난 5년 (초·재선) 임기 때 머리로 일을 했다면 앞으로 시장으로 일을 할 때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10년 만에 서울시를 탈환한 것은 물론, 내년 3월 대선의 전초전인 이번 선거에서 야권 '4연패' 고리를 끊어낸 점을 감안하면 야권 대권주자로서 오 시장 입지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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