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일본은 식민지 역사를 심하게 묻었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4-07 16: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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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
영국에서 성장한 일본계 작가, 역사의 망각 질타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롭고 강력한 국제기구 필요"
'클라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캐릭터
▲가즈오 이시구로는 한국 기자들이 던진 질문을 토대로 진행된 비대면 인터뷰에서 "일본도 2차 세계대전 전후에 한 일들에 관한 수많은 역사와 식민지 역사를 심하게 묻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것들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 Lorna Ishiguro [민음사 제공]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7)가 신작 '클라라와 태양'(리뷰: 조용호의 문학공간)을 펴내고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노벨문학상(2017)을 수상한 이후 처음 집필한 이 장편의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진행한 비대면 인터뷰에서 그는 "영국은 식민주의에 대한 많은 기억들을 묻어버렸고, 일본도 2차 세계대전 전후에 한 일들에 관한 수많은 역사와 식민지 역사를 심하게 묻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것들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려우며 바로 이 내용이 제가 관심 있는 주제"라고 밝혔다.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세 때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계 작가 이시구로에게 한 민족이나 공동체가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영국 국적이지만 일본인들이 자국 작가처럼 여기는 이시구로가 일본의 전후 '망각'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작가로서 예견하는 미래와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세상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국제기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고, 증거 기반의 과학적 일처리 방법을 존중해야 하며 이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긍정적인 교훈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특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한국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고, 전염병과의 싸움을 아주 잘 해냈다"면서 "한국과 영국처럼 자유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나라들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회가 잘 작동함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시구로는 신작 '클라라와 태양'에서 인공지능 소녀 클라라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다른 곳에서 가져온 편견과 가치관이 거의 없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고 "인간에 대해 점점 더 많이 배우게 된다고 해도 클라라가 그런 단순함과 어린애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통해 인간의 고유함을 완전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런 일이 과학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이것이 우리의 관계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과거 우리는 한국을 삼성과 같은 기술이나 자동차의 생산지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은 K-팝 같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라면서 "제 책이 매우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인 한국에서 읽힐 수 있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이라고 한국 독자들에게 소감을 전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 전문 발췌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4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17년 12월에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3년하고 몇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두 아시다시피,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록다운을 겪었지요. 그리고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로는
『클라라와 태양』을 마무리하고, 올해 다음 달에 촬영이 시작될 영화 대본도 쓰고 있었습니다. 제가 작업하고 있던 프로젝트는 이렇게 두 개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아주 잘 대응했지만 영국에서는 록다운이 거의 1년, 1년 이상 이어졌죠. 1년간 외출을 못했고요.

노벨상 수상이 저의 글쓰기 또는 생활 방식을 바꾸었냐고요? 별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저는 『클라라와 태양』을 3분의 1 정도 집필한 상황이었거든요. 소설에 대한 제 계획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스톡홀름에서 돌아왔을 때도 모든 문제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여전히 제 서재에 있었습니다. 제 서재는 제가 두고 간 상태 그대로 어수선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노벨상 수상은 환상적이었지만 뭔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난 일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터로 돌아오자 모든 게 그대로였죠. 어쩌면 제가 다음 책을 쓸 때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쓰기와 비교하면 수상이나 출판 등의 일은 마치 다른 행성,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서재에서 글을 쓰는 건 매우 사적인 세상이거든요. 그래서 별로 그렇게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60대가 되었을 때 노벨상을 수상했는데요. 어렸을 때 그런 일을 겪었다면 물론 당연히 상황은 바뀌었을 겁니다. 많은 노인들이 그렇듯 저는 지금 제 습관과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영상에서 말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린다. 

독자들에게 보내는 영상에서 이 책이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라고 말한 것은 일부는 홍보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책이 가장 유명한 책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진지하게 말씀드린 면도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남아 있는 나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클라라와 태양』과 『남아 있는 나날』 사이에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아 있는 나날』에는 주인공이자 해설자로 영국 집사가 나옵니다. 그는 로봇은 아니지만 로봇과 거의 비슷해서 사회로부터 단절돼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대상을 봅니다. 그리고 클라라의 경우, 진짜 로봇인 클라라와 같은 해설자가 갖는 장점 중 하나는, 매우 이상한 시각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공통점이 하나 있고, 다른 한 가지 공통점은 당연히 『남아 있는 나날』의 집사는 서비스를 제공이라는 개념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나리를 섬긴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상당 부분에서 그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게 그것입니다. 클라라는 십대 아이를 돌보고 그 아이가 외로워지지 않게 해주고 조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AI 로봇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집사와 같습니다. 클라라는 매우 헌신적인 하인처럼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명분에 자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클라라와 태양』을 쓸 때, 『남아 있는 나날』을 쓰던 때가 종종 떠올랐습니다. 물론 『나를 보내지 마』의 연장선은 아닙니다. 그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주제도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좀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나를 보내지 마』를 다시 읽었을 때 그 책이 아주 슬픈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렇게 슬픈 책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나를 보내지 마』의 슬픔에 대한 응답 또는 답변 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 것 같은데요. 저는 '선(goodness)'에 대한 더 많은 희망과 믿음이 있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결국 같은 영역에 있는 것 같다는 독자들의 말씀은 저도 알겠지만, 『클라라와 태양』의 분위기가 더 희망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클라라에게 슬픈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결말이 너무 슬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클라라와 태양』은 희망, 그리고 세상에는 선함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복귀작으로 왜 우화적인 내용의 SF 장르를 선택하게 됐는가.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유전자 복제 등 미래의 기술을 다룬 작품을 여러 차례 발표해 왔다. 이런 소재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는가?

정확히 말하면 인공 지능 같은 것들이 나오는 작품은 『나를 보내지 마』와 『클라라와 태양』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나를 보내지 마』에는 '복제'라는 소재는 있었지만 인공 지능이나 유전자 편집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를 테면, 『나를 보내지 마』의 경우, 제가 『나를 보내지 마』를 쓰고 있을 당시(아마 꽤 오래 전인 약 18~19년 전에), 저는 제가 장르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의식했습니다. 이 작품이 SF 장르로 분류되리라는 점을 의식했지요. 그리고 그 장르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클라라와 태양』을 쓸 때는 제가 어떤 허구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현실 세계의 인공 지능이나 유전자 편집의 실제 개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관련 글을 읽고, 과학자들과 함께 이 주제를 다루는 콘퍼런스와 세미나에도 참석했습니다. 저는 이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 인공 지능과 유전자 편집 분야의 발전은 『클라라와 태양』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한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두 분야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를 쓸 때는 장르를 의식하며 스토리를 장르에 맞추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사실주의자들이 활용하는 다른 많은 방식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그 안에 스토리를 넣었죠. 그리고 제가 보기에 영어권 사람들은 『클라라와 태양』이 SF 소설이라는 사실을 훨씬 덜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2005년에 『나를 보내지 마』가 출판되었을 때는 "이 작가가 SF를 썼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책 출판한 뒤 지난 몇 주 동안, 영어권 사람들이 제 책이 SF 장르에 속한다는 걸 훨씬 덜 인식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이 이제는 인공 지능과 유전자 편집과 같은 문제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중대한 문제이자 이슈이며, 현재의 이 중요성이 소설 장르에서 부각된 게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영국과 미국에서 SF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보내지 마』가 출간되었을 때, SF는 여전히 아웃사이더 장르, 전문적인 장르이며, ​주류 문학과는 상당히 단절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난 15년~20년 동안 SF는 주류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책뿐 아니라 영화와 TV에서도요. SF가 훨씬 더 대중적인 장르로 느껴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내지 마』를 출판했을 때와 이번 책을 출판했을 때를 비교해 보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이번에는 SF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고도화된 인공지능이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성에 대한 당신의 정의, 혹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적 요소들은 무엇인가?

바로 소설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간단하게 답하고 싶지 않은데요. 소설 전체가 던지는 질문이죠. 클라라는 마지막까지 이 질문을 던집니다. 독자들은 이야기 속에 들어가면 알게 될 겁니다. 클라라가 함께 살게 되는 가족의 중심에는 어떤 미스터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미스터리가 물어보신 바로 그 질문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이 핵심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고 싶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죠. 이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은 우리의 특별함을 다소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할까? 

 

수백 년 동안 우리는 각각의 인간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특별한 영혼과 같은 무언가를 몸 안에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치 안에 어떤 영혼 같은 게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동물이나 확실히 로봇과는 매우 다르다고 믿고 싶어 했죠. 이 때문에 우리가 다른 생물들보다 우월한 것이고요.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이런 특별한 영혼 속 무언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저자로서 이런 질문을 던진 것 같습니다. 만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각각의 사람 내면의 특별함을 관찰하는 데 도전하는 세상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그리고 다음 주에 무엇을 사고 싶은지,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은지,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지, 알고리즘만으로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 안에 있는 어떤 특별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바뀌게 될까요?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통해 인간의 고유함을 완전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저는 이런 일이 과학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묻는 건, 이것이 우리의 관계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입니다. 인간 간의 관계, 가족 간의 관계. 우리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다른 감정들의 본질을 바뀌게 될까요? 앞서 말했듯, 이 질문이 바로 제가 묻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정답은 없기 때문에 답변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 전체가 이 질문을 다루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최근 저는 제가 몇 년 동안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번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소설인데 이때의 깨달음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제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썼을 때는 이미 『클라라와 태양』을 3분의 1 정도 집필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상 연설문에 표현된 내용의 상당수, 즉 방금 언급하신 내용들이 『클라라와 태양』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연설에서 제가 언급하고 있는 주요 사건들은 제 나라, 즉 영국에서 유럽 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진행되던 당시의 일들입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이를 무역협정에 관한 결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나라를 절반으로 갈라놓은 매우 치열한 논쟁처럼 느껴졌습니다. 국가의 정체성과 영국이 국제화, 세계화된 국가가 되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단절된 민족주의적이고 다소 앞서나가는 제국이었던 과거의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지.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큰 국제 사회에서 영국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거대한 싸움으로 변했습니다. 영국인들의 대다수가 저처럼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듯 제게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건, 실제로 탈퇴 투표를 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저는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탈퇴 투표를 한 사람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생각이 일종의 환상임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절반의 영국 시민들과 그들이 매일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부터 우리를 차단해 버린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제가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하기 1년 전인 2016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어린 시절 자라면서 가졌던 여러 가지 가정들과, 성인이 되면서 '자유세계'에서 점점 더 강화되었던 저의 일종의 가치들이 어쩌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견해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특히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서 두 진영 사이에 거대한 분열이 존재함을 볼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잠시 제쳐두고, 오늘날 제가 우려하는 점은 책과 문화 같은 것들을 통해 이런 장벽들을 넘어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약 30년 동안 우리는 문화의 국제화라는 측면에서는 잘 노력해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나라나 사회보다 다른 나라와 사회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의 영화를 더 많이 봅니다.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최우수 작품상을 한국 영화가 받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례 없는 일입니다. 비영어권 영화가 수상한 건 처음입니다. 이미 진작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대중문화가 훨씬 더 국제화되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 내에서 이런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대화하는 점에서 우리는 그리 잘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내, 미국 내, 영국 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영화 <기생충>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큰 격차를 다뤘습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분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 점이 매우 우려됩니다. 최근 몇 년간 문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국경을 넘어 이런 문화적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이런 큰 충격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문득 나라의 절반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거죠.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그동안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분투하는 개인들에 관해 써 왔고, 앞으로는 한 민족이나 공동체가 그런 질문들을 어떻게 직시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방향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것은 변함없는가. 

2001년, 관객의 질문에 제가 처음 대답할 때였습니다. 그게 제 야망 중 하나임이 뚜렷해졌습니다. 저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의식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7년 노벨 수상 연설에서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다시 했을 때는 이미 2015년에 출간된 『파묻힌 거인』이라는 책을 쓴 시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정확히 이 주제를 다루죠. 이번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전작입니다. 책 한 권이 전부 그 주제에 관한 겁니다. 앞으로 제가 탐구하고 싶은 분야이기도 하고요. 

 

『클라라와 태양』은 국가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는 그리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를 관찰해 보면, 각 국가들을 괴롭히는 수많은 문제들, 국가 내 갈등, 미국 내 인종 관련 갈등, 영국에서의 비슷한 갈등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를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국가가 최근의 역사를 잊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국가가 잊어버린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문제, 그리고 지난 300년 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미국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자유주의자들(liberal people)의 마음에도 공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남북 전쟁 말의 노예제 폐지와 1964년 민권법 도입 사이에 약 100년간의 공백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의 여러 문제들 중 상당수가 남북 전쟁 이후 사실 노예 제도가 끝나고 흑인들이 평등을 찾아야 했던 시기에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100년 동안 모든 문제의 토대가 된 일들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걸 다 잊어버린 겁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한 이유를 모르고서는 그것에 대한 견해를 갖기란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영국은 식민주의에 대한 많은 기억들을 묻어버렸습니다. 일본도 2차 세계 대전 전후에 한 일들에 관한 수많은 역사와 식민지 역사를 심하게 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바로 이 내용이 제가 관심 있는 주제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 우리나라를 위한 메모리 뱅크(memory bank 기억 저장소)가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에게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경우, 기억은 국가를 위해 어떻게 작동하며, 누가 기억을 통제할까요? 그러니까,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잊을지를 누가 결정할까요? 이런 내용들은 저를 끊임없이 사로잡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는 이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을 썼습니다. 이는 제가 다시 다루고 싶은 내용입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제 책이 매우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인 한국에서 읽힐 수 있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이라며 "서양인들 대부분이 한국을 현대적이고 젊은 나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Lorna Ishiguro [민음사 제공]

 

-당신이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손상되고 있다면 그것을 수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제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명확한 정의를 내리려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반박할  겁니다. 어쨌든 자유 민주주의라고 하면 누구나 대개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사실상 자유 민주주의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강하게 떠오른, 사회 운영을 위한 가치관입니다. 이는 우리가 나치즘과 공산주의, 그 밖의 다른 독재 정권들이 얼마나 해로웠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 민주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가치 체계의 중심에 개인의 권리를 둔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중요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됩니다. 사실상 그 밖의 모든 것들이 그 주장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개인이 명분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높은 명분을 앞세워 수많은 개인을 희생해선 안 됩니다. 이런 발상이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많은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자유선거라든가,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든가, 정부가 법과 사법부, 사법 제도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등이요. 그리고 우리가 정부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시위 등과 자유 토론이 실제로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물론, 경찰이 법을 집행하겠지만 개인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게 기본적인 것이며, 여기서부터 많은 것들이 파생됩니다.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맞서 싸우는 권익 증진 캠페인은 모두 그런 가치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저는 이런 가치관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특히 1989년 냉전의 막바지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는 자유 민주주의 모델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러 문제들이 많은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그중 한 가지 문제는 자유 민주주의 자체가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해서 '자유세계'에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별로 정의로운 세상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문제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불만이 엄청 커지면서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을 채택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인공 지능은 분명 자유 민주주의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시가 훨씬 더 쉽고 정교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경찰이 필요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과거에는 자유세계가 더 부유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흥미로운 상품들을 생산할 수 있었고 더 좋은 슈퍼마켓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서양이 대체로 냉전에서 승리했다고 느끼는 겁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유는 공산국가 사람들이 생활수준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양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갖 훌륭한 장난감들과 좋은 옷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 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점(Advantage)을 없애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집권적 정부, 중앙에서 계획한 경제는 마오쩌둥 시대나 스탈린 시대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상품들이 부족했던 시절과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 그런 시스템을 유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우리가 그 점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서 우리는 여러 불평등이 커지도록 내버려두었고, 우리가 예전에 누렸던 이점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엔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매우 강력한 모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국가들은 막강해졌고, 중국의 경우,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아주 부유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과 영국처럼 자유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나라들이 그런 점에 대해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가 잘 작동함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한국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고, 전염병과의 싸움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이 작품에 영향을 준 것이 있나?  작가로서 바라보는 우리의 앞날, 어떻게 될 것 같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 『클라라와 태양』 집필을 끝냈고, 팬데믹 발생 바로 직전에 에이전트와 출판사에게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꽤 심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냥 사스나 에볼라, 다른 전염병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즉, 『클라라와 태양』에 팬데믹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황이 반영되었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앞에 놓인 상황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는 대해서는 많은 길이 있겠지만,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큰 교훈 중 하나는 국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국제기구들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받은  거대한 경고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같은 몇몇 국가들은 훌륭하게 대처했고, 그 밖의 영국이나 미국, 브라질 등의 국가들은 확실히 처음에는 대처를 아주 못했습니다. 현재 영국은 백신으로 대응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제 사회 측면에서 봤을 때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이렇게 국경을 넘는 문제들에는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다음 팬데믹을 겪기 전에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이번과 비슷한 규모의 팬데믹이 미래에도 나타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국제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알아야합니다. 물론, 기후 변화처럼 앞으로도 국경을 넘고, 선진국과 빈국간의 차이에 상관없이 전 세계를 휩쓸 문제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날 겁니다. 강한 국제기구 없이는 이러한 문제들을 직면할 수 없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여러 강한 국제기구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UN과 IMF, 세계은행 등의 기구들이요. 저는 오늘날의 세상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국제기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팬데믹이 우리가 받은 큰 경고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이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우리는 위에 있는 누군가가 상황이 이 정도로 나빠지는 걸 막아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제어할 시스템이나 전문 기술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고, 그래서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엄청나게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건, 우리는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과학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상황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적어도 지금 우리는 백신 덕분에 출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단 12개월 만에 여러 가지 백신이 만들어졌다는 건 놀라운 기적입니다. 향후 5년 동안 백신이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었는데도요. 따라서 우리는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고, 개별 국가들이 과학에 자금을 지원해야겠지만, 국제적 차원에서도 과학에 대한 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이번 사태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일깨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개인들만 잘못 움직인 게 아니라, 정치인들도 누구나 자신만의 진실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팬데믹이 여러 면에서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사실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줌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전염병이 존재하지 않거나 별로 해롭지 않다고 말하는 보우소나루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정치인들이라면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 믿게 할 수 있겠지만요. 

 

저는 이번 팬데믹이 이렇게 진실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진실을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선거에서 이겼지만 '도둑맞았다'는 말을 어느 정도는 지지자들이 믿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널드 트럼프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믿게 만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이 바로 전염병이 가르쳐준 큰 교훈입니다.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고, 증거 기반의 과학적 일처리 방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이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긍정적인 교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매우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협력 및 강력한 국제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 과학에 대한 장려와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하는 것.

 

-'클라라와 태양'을 동화로 쓰려다 성인들을 위한 장편 소설로 바꿨다는데, 앞으로도 동화를 쓸 계획은 있는가?

지금은 계획이 없습니다. 그런데 2014년 경, 전작 소설의 집필을 마친 후, 그림책에 넣을 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주 짧은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단 몇 분 만에 직접 들려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삽화와 그림이 매우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당시 제 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 줬는데요. 그 당시 제 딸은 아마 25살인가 23살 정도였던 것 같고, 서점에서 일하고 있어서 동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제 딸 이시구로 나오미는 현재 소설가로, 얼마 전에는 영국에서 책도 냈습니다. 딸은 제게 이 이야기가 아이들이 읽기에게 너무 슬프다면서 이 이야기를 가지고는 아이들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가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지만 오히려 성인에게 적합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더 크고, 어떻게 보면 더 어두운 이야기로 만들었고, 그게 바로 『클라라와 태양』이 된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점이, 지난주에 제 딸 나오미가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전에 들려준 동화가 『클라라와 태양』보다 훨씬 더 슬프고 불안했다는 겁니다. 『클라라와 태양』은 꽤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라면서요. 딸은 전의 그 동화가 훨씬 더 심했다고 했어요. 아마 맞는 말일 겁니다. 꽤 슬픈 이야기였거든요. 처음에 가진 아이디어가 좀 많았는데, 동화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이 성인용 책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동화에는 여러 특성들이 있는데요. 제가 말하는 동화는 제 눈에 매우 흥미롭고 매우 매력적인, 어린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잠들기 전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 책들에는 어른들의 상충되는 감정들이 담겨 있거든요. 한편으로 우리는 더 온화하고 친절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죠. 그래서 웃는 얼굴과 태양 등의 그림이 있고 이야기도 온화하죠. 하지만 동시에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세상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슬픈 일들에 슬슬 대비시키고 싶을 겁니다. 아마 삽화에서도 이런 걸 종종 볼 수 있을 거예요. 하늘에 어떤 슬픈 분위기가 서려 있을 때도 있고, 숲이나 나무에 어둠이 있다거나 동물 얼굴 표정에 나타나거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마주해야 할, 가혹하고 더욱 힘든 세상을 항상 암시하기 때문에 책에는 항상 그런 갈등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어린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려주죠. 또한, 아이들을 어떻게 준비시키고 싶은지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많이 말해줍니다. 결국 클라라라는 인물의 상당 부분에서 저는 그런 갈등을 담고 싶었고, 동시에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희망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태양은 아이들 그림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양과 비슷합니다. 들판과 하늘도 있고요. 클라라가 어린 아이 같은 희망을 가졌으면 했습니다. 클라라는 마치 동물 캐릭터 같기도 하고요. 아니면 어린아이들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같기도 하죠. 저는 클라라가 세상의 선함(something good)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기를 바랐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 독자들에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제 책이 한국의 '문화적 현장(cultural scene)'의 일부를 이루게 되어 정말 기쁘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지난 10~15년 동안 한국이 문화의 근원지로서 국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거 우리는 한국을 삼성과 같은 기술이나 자동차의 생산지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은 K-팝 같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입니다.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한국 영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15년간 전 세계가 최첨단의 흥미진진한 한국 문화의 등장을 잘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책이 매우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인 한국에서 읽힐 수 있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입니다. 서양인들 대부분이 한국을 현대적이고 젊은 나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들은 젊지 않지만, 이들이 만드는 작품은 새롭고 신선하고 미래 지향적인 현대 국제 문화로 간주되거든요. 한국에서 읽히는 책들의 대열에 제가 함께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사람들은 한국을 흥미진진하고 현대적이고 새롭고 예술적인 작품들의 원천지로 여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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