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문 정권을 바라보는 진보의 두 패러다임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2-25 14:04:56
  • -
  • +
  • 인쇄
현정부 '평등' 과제에 무능 노출
'조국사태'에도 세대간 의견 차
소통 면에서 확신은 잔인한 방식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에서 의사로 일했던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당시의 지배적인 의학 패러다임인 미아즈마 이론(병은 나쁜 공기를 통해 옮는다는 이론)에 역행해 의료진에게 철저한 손씻기를 강조했다가 병원에서 해고돼 우울증에 빠졌다. 프랑스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다른 패러다임이 통용되기까지는 그로부터 반세기의 세월이 더 걸렸다.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어는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라는 책에서 이 유명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패러다임의 힘은 대단하다. 패러다임은 특정 집단(경제학자, 정신과 의사, 법학자 등)이 가진 강제적 확신의 총체이며, 해당 집단의 사고와 행동 뿐 아니라 사회관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기 집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투쟁의 대상이다."

1987년에 발족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가 2019년 6월에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의했을 때 새삼 '패러다임 전환'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교협은 2021년을 맞아 '민교협 2.0 선언'을 공식 발표하고 혁신 작업에 착수했는데, 그 길이 험난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물론 나는 이 선언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교협 2.0 선언'의 핵심은 '민주화'라는 기존 목표에 '평등'을 더하면서 강조한 것이다. 누구나 다 환영할 것 같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당장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라는 현실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문 정권은 '적폐청산'을 내걸면서 민주화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곤 하지만, 평등 문제에선 보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못한 점도 있는 무능을 드러내고 말았다. 물론 그 무능은 패러다임의 문제일 수도 있다.

'민교협 2.0 선언'을 두 차례에 걸쳐 크게 다뤄준 한겨레에 감사드리면서, 한겨레의 인터뷰 기사를 참고해 말씀드려 보겠다. 문 정권을 보는 시각의 차이는 민교협 내부에서도 나타났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조국 사태'를 둘러싼 균열이 대표적 사례였다. 민교협 회원 가운데 '조국 세대'에 속하는 교수들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앞세워 '조국 지지' 목소리를 내고 집단행동도 벌였지만, 이후 세대에서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김진석 민교협 상임공동의장은 "조국 사태는 민교협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을 드러내는 한편, '87세대'가 가진 가치와 철학의 한계를 드러내 보인 사건으로 작용했다. 교수·지식인이 대단한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문제가 되는 것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뎌진 것"이라고 했다.

천정환 민교협 학술교육위원장은 "부모의 인맥을 통해 스펙을 품앗이하며 학벌을 대물림하는 '지배동맹'이라는 구조적 부패가 드러났는데, 검찰개혁 때문에 그게 묻혀버리는 것이 충격"이라고 했다.

당연히 한국 사회의 지배 권력을 보는 시선도 다를 수밖에 없다. 87세대에게 지배 권력은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수구 세력이지만, 포스트 87세대는 대체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세력이 서로 정권을 주고받으며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차이를 세대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세대 차이가 적잖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누구나 다 경험했겠지만,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는 소통과 설득의 영역 밖에 있다. 오죽하면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패러다임 전환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과학은 장례를 치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했겠는가.

정치 역시 다를 게 없다. 이런 넘기 어려운 차이를 인정한다면, 피차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세대와 무관하게 미디어의 선택적 노출과 학습에 의해 특정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소통의 관점에선 "확신은 잔인한 사고방식"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면 좋겠다.

우리 모두 다 확신에서 좀 자유로워지는 게 어떨까. 상호 소통은 어렵다 하더라도 증오의 강도는 크게 낮춰보자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이다.

▲ 강준만 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2021. 4. 13. 0시 기준
110688
1775
10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