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작가의 공간은 언제나 유배지여야 한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2-19 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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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악의 평범성' 펴낸 '한라산 시인' 이산하
연대가 무의미해지고 자신과의 싸움만 남은 시대
앞으로 '어떻게 잘 지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
"돌아갈 곳을 잊어버린, 막다른 길에서 쓴 묵시록"

"우리 현대사는 강을 다 건너기 바로 직전에 꼬리를 물에 적신 어린 여우처럼 마지막 고비마다 늘 꺾였다. 그래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젠 그 강이 우리 내부로 거점을 이동했다. 연대가 무의미해졌고 자신과의 싸움밖에 남지 않았다. 자기 내부에는 '또 다른 나'라는 짐승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건 투지 차원이 아니라 본성 차원이라서 이길 수 없다. 앞으로는 '어떻게 잘 지느냐'의 문제다."

 

제주 4·3의 비극을 '한라산'이란 서사시로 써서 투척, 수배와 고문과 수감의 터널을 지나온 이산하(61) 시인이 22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악의 평범성'(창비)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시인은 굳이 '말' 대신 이메일로 답하길 고수했다. 잘못 전달되기 쉬운 '말'보다는 '문자'가 그나마 생각을 잘 전달하는 건 맞다. 답이 짧아도 '언어의 날'은 예리하다. 이번 시집에는 대체로 강건하고 견결한 시들이 전편에 흐르고 있지만, '허무'도 숨기지 않는다. '잘 지는 것'이 희망이다.

 

▲이산하는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의 빈소에 꽃 하나 바치며 조문하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른다"면서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썼다. [창비 제공]


"어차피 마음밖에 건널 수 없는 강/ 그 너머 또다른 무엇이 존재할지 몰라도/ 결코 지금의 여기보다 더 허무할 수는 없겠지.// 제아무리 달음박질쳐도 끝내 닿을 수 없는 곳/ 닿더라도 지나온 길이 다 무너져야만 시작되는 곳/ 지금도 꼬리를 높이 치켜들고/ 부지런히 강을 건너가는 어린 여우여/ 네 남루한 깃발이 흘러간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물에 적신들 가라앉기야 하겠느냐./ 가라앉은들 빛이 바래기야 하겠느냐.//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강이 하나 있다./ 어린 여우가 건너기엔 가라앉지 않을까 우려되는/ 깊고 물살 센 강이 하나 있다."('어린 여우' 부분)

 

시인은 '어떻게 잘 지느냐'의 문제만 앞에 놓여 있을 뿐이라고, 강을 건너다 꼬리를 물에 적신들, 가라앉은들, 도강(渡江)의 아름다운 시도가 빛이 바래기야 하겠느냐고 미리 위로한다. 그가 '한라산'이라는 폭탄을 던지고 강고하게 투쟁할 때만 해도 눈에 보이는 분명한 싸움의 대상이 있었고, 연대와 신뢰라는 정신적 버팀목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정권이 몇 번씩 바뀌는 과정에 운동권 시절 '투스타' '쓰리스타'라면서 감옥 다녀온 전력을 과시하던 '동지'들 중에는 "촛불을 삼킨 스타 괴물"이 되어 지상을 배회하는 이들도 많다.

 

'스타'도 아닌 평범한 이들 중에도 '적'들은 숨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여러 시신들 사진과 함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에는 '광주 수산시장의 대어들'과 '거즈 덮어놓았습니다" 혹은 '에미야, 홍어 좀 밖에 널어라" 같은 가증스러운 내용들이 있었다. "우리 세월호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게 아니라/ 진도 명물 꽃게밥이 되어 꽃게가 아주 탱글탱글 알도 꽉 차"있다니, 시인이 이런 글을 시에 옮기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제목을 단 이유는 자명하다. 유대인 학살을 진행하는 군인들이 가스실 작업을 수행한 뒤 클래식을 듣고 집에 돌아가 아이를 안고 즐거워하는 그 일상의 지독한 양면성을, '악의 평범성'을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거론했거니와, 그 '비범하지 않은' 평범한 악은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시인이 "연대가 무의미해졌고 자신과의 싸움밖에 남지 않았"으며 "자기 내부에는 '또다른 나'라는 짐승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건 투지 차원이 아니라 본성 차원이라서 이길 수 없다"고 진술하는 배경이다.

 

이산하는 새 시집을 내면서 "'한라산' 서사시는 내 27살의 비명이자 통곡이었다"면서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될 줄 몰랐다"고 밝혔다. 그 짐은 "내게 너무 많은 진실을 강요했다"면서 "나도 가끔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투사 시인'에 부과된 '진실'의 무게가 버거웠다는 말일까. 선시 같은 답이 돌아온다.

 

"같이 살다 보면 밝힐 수 없는 진실도 많다. 나이가 들수록 혀도 무거워진다. 다만 작가는 늘 무거운 혀 밑에 칼날을 감추고 있어야 한다. 진실을 말할 때는 혀가 베일 각오를 해야 한다."

 

'평생의 짐'에서 벗어나려고 해본 적은 없었는가.

 

"인간은 혼자 있을 때는 다양해지고 같이 있을 때는 단순해진다. 그래서 가능한 조직을 기피했다."

  

한라산 시인의 '짐'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이기적인 관성이라고 저 답을 해독하는 건 섣부르다. 일사분란하게 한 방향을 향해 다중의 뜻을 모아 나아가는 '조직'의 속성을 알기에, 그 조직의 뜻을 거스를 수 없기에, 단기필마의 외로운 싸움을 선택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는 '항소이유서'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를 써서 당시 황교안 검사를 길길이 뛰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도발'했을까. 그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했다.

 

"'김일성'은 표현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최후의 금기어다. 실패하더라도 누군가는 바위로 만든 그 마지막 문을 먼저 부수고 나가야 한다. 비록 부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바위에 조각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위에 최후의 금기어를 조각하는 것, 그게 작가의 자존심이다."

▲이산하는 2018년 '악의 평범성'이 전형적으로 드러난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위)와 오스트리아 린쯔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를 찾았다. [이산하 제공] 

 

이산하는 '두 번째 폭탄'을 던지는 심정으로 당시 '항소이유서'를 썼다고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이번 시집에 다시 '항소이유서'를 썼다. '아마 그때 129번째쯤 자작나무 잎을 세다가 멈춘 것 같은데/ 갑자기 상처 입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지에 앉더니/ 나에게 항소하듯 잠시 눈부시게 피어올랐다가/ 이내 담장 너머로 이송되었다./ 담장 안에는 아직도 하얀 유골 같은 자작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난 여전히 망명도 못한 채 혼자 불을 피우고 혼자 불을 끄며/ 저 지극한 난공불락의 자작나무 꼭대기만 쳐다보고 있다'고. 저 '자작나무'란 무엇인가.

 

"빛의 기둥 같은 수직의 염결성이다."

 

시인이 구속되던 1987년 11월, 부친은 그 충격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나 현대사의 파란 많은 곡절 끝에 주왕산 자락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가 살았던 아버지다. 그는 '휴정협정 체결 뒤 포로석방으로 중립국을 선택했지만/ 행정착오로 남한에 잔류하게 된' 청년이었고, '자기 손에 죽어간 자들의 십자가로 오두막집 울타리를' 쳤으며, '날마다 비루한 생의 껍질을 대패로 밀고/ 미리 짜놓은 자기 관짝에 못을 박으며 전쟁의 악몽을' 잊어갔던 청년이었다. 시인에게는 어떤 아버지였을까.

 

"주춧돌 위에 기둥 세우고 지붕 올리는 농부목수였다. 그래서 난 어릴 때 사생대회에 나가면 주춧돌부터 먼저 그려 기둥 세우고 마지막으로 지붕을 그린다. 아이들 거의가 지붕부터 그리고 기둥 세워 아래로 내려왔다. 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순서로 그렸다. 어떻게 집을 지붕을 먼저 덮어 기둥을 세울 수 있는가. 또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 것은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시작하라는 말이었다. 소박하고 생각이 많은 분이었다."

수배 4년 동안 그를 '은닉' 혹은 '묵인'해준 119명은 그나마 '체포 뒤 한 사람도 연행되지 않아 큰 다행'이었다. 그런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그는 '모난 돌과 바위에/ 부딪혀 다치는 것보다/ 같은 물에 생채기/ 나는 게 두려워/ 강물은 저토록/ 돌고 도는 것이다.// 바다에 처음 닿는/ 강물의 속살처럼 긴장하며/ 나는 그토록/ 아프고 아픈 것'이라고 '강'에 썼다. 연대했기에, 믿었기에 받는 상처는 더 큰 것일까. 그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보다 약자에 대한 약자의 폭력이 더 두렵다"고 답했다. 아프지만 강렬한 추모시,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나무')의 사연.

 

"너무 짧아서 행사에 낭송하지 못한 노무현 1주기 추모시다. 80년대 초중반 부산 장림공단 공해문제 조사 때 처음 만났다. 대통령 취임 후 '소박한 콜'이 있었지만 난 정치적 관절이 없어 들어가면 뼈가 부러진다고 거절했다."

 

그는 "죽은 자 여럿이/ 산 자 하나를/ 따라가고 있다"('추모)도 썼다. 죽은 자야말로 산 자이고, 산 자는 죽은 자라는 도저한 역설이다. 그는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자들이 많다"고 했다. "아직 다른 길이 없으니 왔던 길 계속 가야겠지./ 케테콜비츠 판화 같은 세상도 여전하고/ 들판에 하얀 목화꽃이 팡팡 터지는 꿈도 사라지고/ 이젠 너무 멀리 이송되어 돌아갈 곳도 잊어버리고/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소용도 없어지겠지."('베로니카'). 돌아갈 곳을 잊어버린 혼돈은 어디에서 오는가.

 

"동방박사들이 돌아올 때는 로마 왕의 눈을 피해 별을 따라 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왔다. 인도 식민지 목화농장 노예들의 꽃은 시들어버렸다. 인류의 꿈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는 열차처럼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 다른 길은 모두 막혔다. 그 막다른 길에서 쓴 묵시록 같은 게 이 시집이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인의 이름을 거론했다. '4·3의 진실을 폭로하다 외면당한 금기의 이름이었다'고. 이를 두고 시인은 '이제 유배에서 풀려났구나'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유배지'가 어른거렸다고 썼다. 왜 스스로 다시 유배되는가. 그는 목수 아버지가 연장을 숫돌에 갈면서 햇빛에 날을 비추어 보여주던 푸른빛을 떠올리며 "약 40년이나 시를 썼지만/ 아직도 내 언어의 날에는 푸른빛이 어리지 않았다"('푸른빛')고 썼다. 궁극의 시는 무엇인가.

"바람을 탁본한 것 같은 경지와 또 바람을 탁본한 것 같은 시다. 작가의 공간은 언제나 유배지여야 한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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