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었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1-08 17: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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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원장 서홍관 새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
'좋은 의사'와 '좋은 시인',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통합
모국어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시쓰기
"여전히 나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병원 재무회계팀에서는 내일까지 연말정산을 하라고 재촉합니다./ 인사관리팀에서는 지난 일 년 간 쓴 논문 제목을 입력하라고 그 논문으로 의학 잡지별 임팩트 팩터 점수로 시상을 하겠다고 기한까지 입력하지 않으면 업적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교육훈련팀은 지원받은 컴퓨터는 병원 자산이니 반납하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는 이렇게 매우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은 바보입니다. 내가 오늘 환자와 나눈 이야기는 모릅니다.// (……)/우리가 진료실에서 비밀스럽게 나누었던 이야기는 어느 의학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 않은 말입니다. 더구나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비 산정할 때도 반영되지 않는 것이고, 국립암센터 의사 업적평가에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의사의 업적 1')

▲10년 만에 새 시집을 펴낸 '의사 시인' 서홍관. 지난 1일 국립암센터 8대 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꽃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어차피 모두 먼지 같은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서홍관(63) 시인이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를 상재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의사이면서 시인으로 살아온 그가 자신의 일과 시를 특별히 밀착시킨 점이 눈에 띈다. 세밀하게 살펴보면 1985년 등단한 이래 써 온 시에 자연스럽게 의사의 삶이 녹아 있을 테지만, 이번만큼 '의사의 업적'을 내세운 적은 없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제의대 가정의학과 주임교수를 거쳐 국립암센터에서 17년 동안 재직하다, 지난 1일 국립암센터 8대 원장으로 임명된 그를 고양시 국립암센터 행정동 원장실에서 만났다.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전 시집을 읽은 사람들은 이번 시집에서 의사의 삶을 시로 형상화한 점을 주목하더군요. 그동안 의사가 시를 쓰니 독특하다는 정도였지, '의사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지 않았습니다. 등단 초기에는 시인이라는 옷이 의사 생활을 하는 데 불편했어요. 의사와 시인이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그 갈등이 사라지게 됐습니다."

 

한국 시단에 의사이면서 시인인 이들은 서홍관 외에도 적지 않다. 마종기 시인은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방사선과 의사로 재직하면서 유명 시편들을 썼고, 치과의사 송재학, 의학자 허만하 시인도 우선 떠오르는 존재들이지만 의사의 삶을 전경에 배치한 이번 시집을 두고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그냥 의사이면서 시인인 경우는 있지만 '의사 시인'이 처음으로 탄생한 것 같다"고 상찬했다는 전언이다. 1980년대 격동의 세월을 지나면서 내면의 갈등과 울분을 시로 쓰다가 서울대의대 문예반 시절 신경림 시인의 눈에 띄어 시인의 길로 들어선 서홍관은 "젊을 때 좋은 의사는 자연과학적 사실 탐구에 매진해야 하고 좋은 시인은 감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별개의 존재였다"면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 좋은 의사와 좋은 시인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생명에 대한 그 사랑을 매개로 좋은 의사와 좋은 시인은 통합된다"면서 "이렇게 달라진 내 생각들이 이번 시집에도 드러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두개골 파열과 뇌 경막하출혈로 진단되었고, 316일 동안 서울대병원의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시위하는 국민을 살해해도 되는지 의사는 사망진단서를 왜곡해서 써도 되는지 정의로운 의사의 길이 무엇인지를 묻는 칼럼을 썼습니다/ 며칠 뒤 사십대 남자 환자가 진료를 받고는, 선생님 신문에 쓰신 글 읽었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다음에 제가 올 때도 선생님이 여기 계실까요? 박근혜 정부가 국립암센터 의사를 가만두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나도 맷집이 있어요. 다음에도 나를 볼 수 있을 겁니다"('의사의 업적 6')

▲지난시절 환자가 의사인 자신을 걱정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서홍관 시인은 "신념에 대한 확신과 두려움을 이기려는 용기가 세월이 흐르면서 맷집을 키워주었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서홍관은 "그 환자가 정말 의사를 걱정하는 게 느껴져서 달래느라고 맷집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 말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맷집'은 젊은 시절부터 다져온 터였다. 1987년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국면에서 의사시국선언서 작성을 주도했고, 이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일찍이 금연운동을 벌이기 시작해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까지 역임했다. 북한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를 만들어 상임이사로 일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서홍관은 "활동가 기질을 타고났다기보다 성장기에 스며든 비판적 역사의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측면이 크다"면서 "자기 확신과 함께 두려움을 내면에서 이겨내는 태도가 물이 고이듯 형성되면 맷집은 더불어 생겨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히말라야의 아침을 맞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돌로 담을 쌓던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어디서 왔소?'/ '한국이오.'/ '아 그렇다면 우리 아들이 한국에서 돈 벌고 있는데/ 갸가 보낸 돈으로 집을 이렇게 짓고 있다고/ 사진을 보여줄 수 있겠소?'/ '아 그러다마다요'// 집을 짓는 여인네와 집터를 잘 찍고/ 아예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더니/ 여동생은 물까지 묻혀서 머리를 다시 빗었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라줄 라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 전화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랑탕 계곡에서 생긴 일')

 

라줄 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시인은 빨리 라줄 라마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밥 한끼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확인했던 전화번호는 결번이었다. 불법체류자로 쫓겨다니다 비극으로 생을 마치지 않았기를, 단지 번호가 바뀌었을 뿐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시인의 연민은 짧은 시들에서 더 돋보이거니와 특히 '새'를 모티브로 한 연작들의 울림이 크다.

 

"겨울 찬비 내리니,/ 기러기 날개 젖겠다.// 북풍 몰아치니,/ 고니 날개에도 찬 서리 내리겠다.// 두루미, 풀씨 먹다가/ 잠시 서럽겠다."('겨울, 한탄강')거나 "외로워서 숲에 들어와/ 낙엽 되어 앉아 있을 때// 맑은 눈 맞추며/ 앉아 있던 박새// 포르릉/ 떠나버린 나뭇가지// 만져보니/ 따뜻하다"('새가 떠난 자리') 같은 시편들은 새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더 자세히 오래 관찰한 덕분에 건져낸 것들이다. 한시풍의 맑은 서정이 배어든 한탄강의 겨울새, 새가 떠난 자리에서 온기를 느끼는 마음 들은 "눈비도 맞고/ 흥건한 땀에도 젖고/ 흐린 하늘을 보다 눈물에도 젖어/ 깃털은 온통 젖어 있었"('새그물')던 어린 시절의 죽은 새에 대한 기억도 소환한다.

서홍관의 시들은 몇 번씩 읽어야 어렴풋이 윤곽이 잡히는, 그마저도 어려운 난해시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시집 뒤에 해설을 붙인 평론가 방민호는 "어떻게 하면 이 시들을 되도록 어렵게 풀이할 수 있느냐" 하는 '해설 초유의 곤란'을 겪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자신의 시가 쉽다는 반응에 대한 고민은 없을까. 

 

"쉽게 읽혔다니 다행입니다. 평생 시집을 사서 읽어본 적 없는 누나가 이번에 내 시집을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다고 하고, 시를 아는 몇 사람은 시집을 받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고 하더군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국어를 아는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다면 내가 부족한 거지요. 내가 화가 났을 때 옆 사람이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면 좋고, 기뻤으면 같이 기쁜 게 좋지 않겠습니까. 모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시를 읽고 이해가 되면 좋겠고, 다른 시인들 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시론입니다."

 

그가 이번에 시집을 묶어내는 데는 역설적으로 '코로나19'의 도움이 컸다. 바쁜 업무 속에서 시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메모만 하다가 시집을 펴낼 엄두도 못 냈는데 코로나 사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줄고 많은 약속들이 취소되는 국면을 맞았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 초기에 페이스북에 "방역지침을 지키되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은 손해이니 이런 때야말로 책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쓸 때"라고 올렸는데, 그 당부를 자신이 실천하게 되면서 그동안 모아놓은 시편들을 보완하고 선별해 이번 시집을 펴냈다. 

"몽골에 갔다가 솜다리꽃을 보았다./ 들판에 숱하게 깔려 있었다./ 거기서는 나라꽃도 아니고 기념품도 아니었다./ 말들이 짓밟다가 뜯어 먹는 간식거리였다./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었다."('솜다리꽃')

▲서홍관의 네번째 시집에는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된 새에 관한 시편들도 눈에 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오스트리아에서는 나라꽃으로 사랑받는 에델바이스, 설악산에서는 말린 그 꽃을 기념품으로도 파는데 몽골에 가보니 말들의 간식거리였다. 시인은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다고 썼다. 서홍관은 "국민을 암으로부터 보호하는 길은 암에 안 걸리게 하는 게 우선 중요하다는 생각인데 예방에 관해서는 소홀한 편이었다"면서 "암 예방에 대한 철학 때문에 원장 공모에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의사이고 시인이면 사람들은 잘 나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젠 더구나 원장까지 됐으니 꽃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솔직히 그런 생각 자체가 점점 의미가 없어진다"면서 "어차피 우리는 모두 먼지 같은 존재들인데 더 태깔 나는 먼지가 있고 더러운 먼지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먼지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일 터이다.

 

"오늘도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따라/ 해가 진다.// 지구에 올 때 화진포의 청둥오리나/ 선유도의 산나리꽃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무거운 짐은 없었으련만,// 내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고,/ 다시 돌아갈 희망도 없다.// 그래,/ 지구에 내려서 행복했던 순간도 없진 않았지.//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나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별을 기다리며')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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