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랜선여행] 김일성이 늦깎이 시인이었다고?

김당 / 기사승인 : 2020-11-20 18: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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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랜선여행] 4. '만인칭송'의 감상문과 사라진 남측 선물
역대 대통령, 동아일보 금동판 등 남측 인사 선물 안보여
서방 인사로는 유일하게 美 AP통신 기자의 감상문 게시

일종의 '선물 박물관'인 국제친선전람관은 북한 인민이라면 누구나 가봐야 할 '필수코스'이자 '보물창고'이다. 우리의 평생교육 강좌에 해당하는 북한의 '우리민족강당' 홈페이지에선 국제친선전람관 선물의 의미와 종류를 이렇게 선전하고 있다.

 

▲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시대와 인류 앞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 올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열렬히 흠모하여 세계 여러 나라 당과 국가수반들을 비롯한 정계, 사회계, 실업계, 언론계의 저명한 인사들과 주체사상 신봉자들, 여러 국제조직들, 혁명투쟁 단체들 그리고 평범한 노동자, 농민, 학생 등 각계각층 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지성어린 선물을 수많이 보내왔다.

 

선물들 가운데는 위대한 수령님의 만수무강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정성을 다하여 마련한 보약재와 몸 가까이에 두고 쓰셔야 할 진귀한 공예품이며 식사도구 같은 것들도 많았으나 수령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신 선물은 다 나라의 재산이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그 모든 것을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보관하도록 하셨다."

 

요컨대, 김일성 동지를 흠모하는 전세계 저명 인사들과 인민들이 보낸 진귀한 선물들을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보관한 곳이 국제친선전람관이라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처음에 내각 사무국 청사의 한개 방에 선물을 보관하다가 1963년에 당 및 국가선물진열관을 지어 보관했다. 그러다가 70년대 들어 늘어난 선물을 다 진열할 수 없게 되자, 김일성이 중앙선물관을 지을 것을 결심해 1976년 8월 '천하절경인 묘향산'을 장소로 직접 낙점하고 설계와 시공, 선물 진열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지도했다는 것이다.

 

▲ 국제친선전람관을 찾은 해외 인사들 [우리민족강당 홈페이지]


현재의 '조선식 건축맛'이 나는 한옥 건물 설계와 화재사고 위험성을 낮춘 듀랄루민 진열장, 대륙·나라별 선물 진열 원칙과 방법 등이 모두 50여회에 이르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른 것이다. 국제친선전람관이라는 이름도 김일성이 직접 지어줬다.

김일성의 이런 세심한 배려와 지도 속에 국제친선전람관이 평남 온천의 화강암 바닥에 황해도 평산 대리석으로 지은 '만년대계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우뚝 서게 되었고, 1978년 8월 26일 공화국 창건 30돌을 맞이해 김 주석이 직접 전람관 개관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개관 당시에는 김일성이 해방 직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일 때부터 받은 수만 점의 선물 가운데서 선별한 1만5000여점의 선물들이 진열되었다. 김일성은 1979년 10월 15일에 이곳을 찾아 전람관의 노대(露臺), 즉 발코니에 올라 묘향산의 절경을 감상하다가 스스로 시흥에 도취돼 즉흥시를 읊었다.

 

▲ 김일성 주석이 67세에 지은 시 '묘향산 가을날에' 시비


바로 '묘향산 가을날에'라는 제목으로 김일성이 남긴 유일한 시(詩)로 전해진다. 원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로대 우에 올라서니 천하절승 예로구나 / 묘향산 절경이야 태고부터 있는 것을 / 전람관 여기 솟아 푸른 추녀 나래펴니 / 민족의 존엄 빛나 비로봉 더욱 높네

 

만산에 붉은 단풍 가을마다 붉었으리 / 로동당 새시대에 해빛도 찬란하니 / 단풍도 고와라 더욱 붉게 물들면서 / 산천에 수놓누나 이 나라 새력사를

 

사대로 망국으로 수난도 많던 땅에 /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든다 / 5천년 력사국에 처음 꽃핀 이 자랑을 / 금수강산 더불어 후손만대 물려주리"

 

북한은 이 시를 "노동당시대에 우리 인민이 처음으로 누리게 된 민족적 존엄과 영광을 자자손손 물려주시려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사상감정을 주옥같은 시구절에 집약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고 칭송한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김일성 주석이 노년(67세)에 늦깎이 시인으로 데뷔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기자는 2000년 10~11월에 한국 기자로는 처음으로 북한 당국으로부터 '단독 취재 비자'를 받아 7박8일 방북 취재를 했는데, 그때 전람관 앞뜰에서는 여성 일꾼들이 김일성의 '묘향산 가을날에'를 새긴 시비를 한창 조탁(彫琢)하고 있었다.

 

▲ 김일성 주석의 밀랍상이 있는 전시실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당시 기자를 안내했던 리종임 안내원은 이곳이 일제 강점기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나 김일성 주석이 '금과 인민의 휴식을 바꿀 수 없다'며 금광 개발을 반대하고 인민의 휴양지로 가꿀 것을 지시해 여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전람관의 여성 안내원은 30명쯤 된다고 했다. 김일성 주석의 밀랍상이 안치된 곳이어서 그런지 안내원들은 절도가 있어 보였고 일이 없는 안내원들은 건물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당시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및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한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여서인지, 박정희(은 공예품)·전두환(차그릇 세트)·노태우(금장식 주전자 세트) 등 남측 역대 대통령들 선물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현대그룹 정주영·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선물한 국산 승용차와 동아일보가 선물한 '보천보전투' 호외를 찍은 금동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호암미술관 홍라희 관장이 선물한 고급 손목시계 등도 눈에 띄었다.

 

▲ 김정일 밀랍상이 있는 전시실 내부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하지만 방북이 비교적 자유로운 재미교포 등 해외 방문객들의 방문기를 보면, 김정일 집권 시기까지는 남측에서 보낸 선물을 관람한 기록이 눈에 띄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남측 선물을 관람한 기록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영향을 받아 선물 진열도 달라지는 셈이다.

 

수십만 점의 진귀한 선물이 전시된 전람관을 대충 관람한 뒤 안내원이 "통일을 위해 좋은 글을 남겨 달라"며 감상문을 청했다. 그래서 기자는 김 주석의 '묘향산 가을날에'라는 시구를 흉내내 '향산 가을날에'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남겼다.

 

현재 북한은 국제친선전람관을 방문한 해외 인사들인 남긴 감상문 중에서 26건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대부분 김정일 시기(2000년대)에 방문해 남긴 것이지만 일부는 김정은 집권 이후에 방문해 쓴 것도 있다.

 

대부분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러시아 외무성 부국장, 쿠바 국가이사회 제1부위원장 등 북한의 우방국 고위 인사들이 남긴 의례적인 감상문이지만, 김일성의 중국 항일혁명투쟁 연고자의 가족과 후손들이 남긴 감상문도 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의 소학교·중학교 동창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장울화(張蔚華, 장웨이화, 1913년 2월 13일 - 1937년 11월 4일 또는 10월 27일)의 손자인 장기는 2015년 4월에 이곳을 찾아 "김정은 동지의 현명한 영도 밑에 진행되고 있는 조선의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위업을 위해 적은 힘이나마 적극 기여해 나가겠다"는 감상문을 남겼다.

 

장울화는 193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지하사업단 대원으로 활동했으며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에 비밀 지원을 하다가 발각, 체포되었으나 진술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1948년 북한 정부 수립 후, 김일성 주석을 대신해 죽었다고 해 혁명열사로 추대했다.

 

▲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에 게시한 감상문들(왼쪽)과 AP통신 기자가 감상문을 남기는 모습.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김일성과 항일혁명투쟁을 함께 한 중국 빨치산 동지의 가족들이 김정은을 축원하는 감상문을 게시함으로써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선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남측 인사가 남긴 감상문은 공개하지 않은 가운데 서방 인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국 AP 통신사 기자의 감상문(2011. 4. 19)을 게시해 눈길을 끈다.

 

"묘향산은 위대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영도자, 김정숙 여사께 친선을 상징하여 드린 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아름답고 감흥적인 산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의 벗들로부터 받고 있는 지지와 사랑의 감정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감상문을 쓴 리 진 기자는 2009년 AP통신 여기자 2명의 평양 억류를 계기로 베이징에서 평양을 오가며 평양지국 개설을 준비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동료 기자와 함께 전람관을 친선 방문했다. 리 진 기자는 2012년 1월 서방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지국을 개설해 초대 평양지국장으로 북한 사회의 변화를 처음으로 서방 세계에 알렸다.

((다음은 '국제친선전람관은 전시 지휘용 지하궁전?' 편이 이어집니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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