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정호승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11-12 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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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시와 산문은 별개 장르이지만 하나의 영혼과 몸
'시대의 눈물'에서 '존재의 눈물'을 닦는 시로…
"시는 배가 고플 때 먹을 수 있는 양식 같은 것"

정호승(70) 시인은 어느 여름밤 자정 무렵 지하철에서 비구니 스님 한 분을 보았다. 화장기도 없고 삭발을 했는데도 갸름한 얼굴 선이 맑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스님은 한손엔 바랑, 한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전동차에 앉아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산 속에서 그리워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했다. 속세의 통화를 끝낸 스님은 휴대폰을 꼭 쥔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참선 수행하듯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 순간, 시인은 전동차 안이 갑자기 깊은 산사의 수행공간처럼 느껴졌다. 드문드문 앉아 있는 승객들도 참선에 들어간 스님들이었다. 그날 밤 풍경은 이렇게 시가 되었다.

▲정호승 시인이 그동안 써 온 시 1000여 편 중에서 60편을 골라 산문과 함께 수록한 책을 펴냈다. 그는 "시와 산문은 별개의 장르이지만 서로 하나의 영혼과 몸을 이룬다"면서 "시와 산문이 한몸인 책을 늘 소망해왔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대 지하철역마다 절 한 채 지으신다/ 눈물 한 방울에 절 하나 떨구신다/ 한손엔 바랑/ 또 한손엔 휴대폰을 꼭 쥐고/ 자정 가까운 시각/ 수서행 지하철을 타고 가는 그대 옆에 앉아/ 나는 그대가 지어놓은 절을 자꾸 허문다/ 한 채를 지으면 열 채를 허물고/ 두 채를 지으면 백 채를 허문다/ 차창 밖은 어둠이다/ 어둠속에 무안 백련지가 지나간다/ 승객들이 순간순간 백련처럼 피었다 사라진다/ 열차가 출발할 때마다 들리는/ 저 풍경소리를 들으며/ 나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다니는 사내처럼 운다/ 사람 사는 일/ 누구나 마음속에 절 하나 짓는 일/ 지은 절 하나/ 다시 허물고 마는 일"('지하철을 탄 비구니')

 

정호승은 "인생이라는 시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전환시켜 생각해본다면 인생은 각기 나름대로 짓는 하나의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절을 지었다 허물었을 것"이라고 시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최근 펴낸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비채)에 담긴 내용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등단 이래 써 온 열세 권 시집, 천 편이 넘는 시 중에서 고른 60편이 산문과 짝을 이루어 실렸다. 시인의 어린 시절, 청장년기, 부모님 스승 문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20여 장도 함께 수록됐다.

 

"지금까지 저는 시는 시대로 시집으로 묶고, 그 시를 쓰게 된 계기나 배경은 산문집으로 엮었는데 어느 시점에는 시와 산문은 별개 장르이지만 서로 하나의 영혼과 몸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시와 산문이 한몸인 책을 소망해왔습니다. 이 책은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정호승은 "시가 어렵고 독자들과 동떨어져 있어 시가 우리 삶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면서 "시는 어려운 게 아니라 배가 고플 때 먹을 수 있는 양식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를 쓰게 된 서사 배경을 같이 한 상에 차리면 그 시를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결과가 이 책"이라고 덧붙였다. 표제가 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그의  대표시처럼 굳어진 '수선화에게'에 붙인 산문 마지막 문장 "나는 언제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서 가져왔다.

▲정호승 시인이 '수선화에게'가 새겨진 대구시 수성구 범어천변 시비 옆에 서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수선화에게')

 

이지상 작곡, 양희은의 노래로도 널리 알려진 이 시에서 위안을 받는 독자들은 많다. 아이를 잃고 살아갈 희망을 잃었던 부부가 이 시를 읽고 다시 희망을 찾았다는 사연을 전한 시인은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인데 그 본질에 대해 왜,라고 반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항상 생각해왔다"면서 "우리가 밥을 안 먹으면 당연히 배가 고픈 것처럼 우리가 인간이니까 자연히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이집트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이 시에 대해 강의한 적 있는데 그 학생들은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말에 "절대로 하느님은 울지 않는다"고 완강하게 반발하더라는 말을 산문에서 전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그 비유가 절절하게 다가와 외로움을 덜어주지만, 종교적 도그마에 갇힌 곳에서는 이마저 쉽지 않은 현실을 웅변하는 씁쓸한 후일담이다.

 

정호승 시에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드리워진 편이다. 불교적 세계관도 깊이 스며 있고 기독인의 신앙도 눈에 띈다. 가톨릭 영세를 받은 그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종교적인 존재라는 말에 공감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저도 종교적 존재이며 자신의 성격과 기질에 맞는 종교를 선택한 차이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책상에는 부처님도 놓여 있고 십자가상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두 분을 책상에서 보면 마음에 큰 위안이 느껴진다"면서 "인간은 정말 보이지 않는 절대적 존재에게 위안을 얻고 기댈 수밖에 없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쓴 시중에서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단 한 편의 시, '산산조각'은 부처에게서 왔다.

▲정호승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잘린 자기 머리를 들고 먼 여행을 떠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산산조각')

 

시인은 "산사의 범종에 금이 가면 종을 칠 때마다 깨어진 종소리가 나지만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면, 그 파편 하나하나를 칠 때마다 제각기 맑은 종소리를 낸다"면서 "깨어진 종의 파편 하나하나가 제각기 종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는 "내 삶이 하나의 종이라면 그 종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고 고백하면서 "그러나 나는 깨어진 종의 파편 파편마다 맑은 종소리가 숨어 있기 때문에 산산조각난 내 삶의 파편을 소중히 거둔다"고 쓴다.

 

정호승은 "생드니 성인이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참수당한 뒤 자기의 머리를 들고 걸어가다 쓰러져 죽은 자리에 생드니 대성당이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잘린 자기 머리를 들고 먼 여행을 떠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시를 쓰는 일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시인이란 가슴속에 차고 넘치는 수많은 말들을 대중과 더불어 누릴 수 있는 축복받은 존재인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절대에 가까운 사랑을 주고받은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이런 시를 바칠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보답받은 삶일 터이다. 그는 어머니를 관에 모시면서 "울음 잠긴 목소리로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를 낭독하고 종이에 육필로 적은 시를 수의 입은 어머니 품속에 고이 넣어드렸다"고 썼다.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정호승 시인은 "인생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인내"라면서 "희망은 반드시 절망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고 말했다.[조용호 문학전문기자] 


1970년대 '유신시대'에 시단에 나온 정호승은 "초기에는 '시대의 눈물을 닦는 시인'이 되기를 소망해 '서울 예수' '슬픔이 기쁨에게' 같은 시집들을 냈지만, 시대와 사회가 달라진 이제 나라는 존재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시를 쓰고 그 시가 다른 존재의 눈물까지 닦아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큰 힘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다면 시인으로서 얼마나 큰 기쁨인가"라며 "죽음이 찾아왔을 때 아직 써야 할 시가 내 가슴에 남아 있지 않도록, 지금 죽어도 마땅하도록 쓰다 가겠다"고 다짐했다. 먼데서 바람 불어, 풍경소리 들린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풍경 달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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