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하나의 관점이 승리하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11-11 13: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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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화상 인터뷰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 수상한 인도의 '큰 소설가'
복잡하고 특수한 욕망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토로
"문학과 정치는 살과 피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

"우리는 욕망의 복잡성과 특수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이슬람주의자가 될 수 없고, 모두가 절대적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지도 않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어린애처럼 굴지 않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는 겁니다. 문화, 역사, 사회적으로 우리 사회는 복잡합니다. 하나의 관점이 승리하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델리와 서울을 잇는 화상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59)가 10일 한국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났다. 로이는 첫 장편 '작은 것들의 신'이 영어권 노벨문학상이라 할 만한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이래, 종교와 계급 갈등을 비롯한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논픽션 글쓰기에 주력해왔다. 최근에는 첫 장편 이후 20년 만에 인도 주류 사회의 차별과 억압을 그린 '지복의 성자'를 펴냈다. 로이는 이날 프랑스를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와 맞서는 무슬림 테러 사태에 대해 "이런 갈등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슬림 인구가 대부분인 카슈미르 지역을 힌두인이 통치하면서 카슈미르는 독립 쟁취를 위해 인도와 오랫동안 반목해왔다. 최근 카슈미르 지역을 방문하고 델리로 돌아왔다는 로이는 "언론인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갔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웠다"면서 "그동안 논픽션을 쓰면서 민족주의에 대해 많은 의심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서는 "남한과 북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다양한 강국들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많은 이들이 문제 해결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고 경계했다.

첫 소설 이후 논픽션 중심으로 글을 써 온 로이는 "마치 제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글을 쓰기도 하는데 작가는 세계를 살아내면서 쓰는 것"이라며 "실제 현실에 대해 쓰는 사람을 운동가라고 부르지만 나는 작품의 종류가 달랐을 뿐 항상 작가였다"고 말했다. 문학 작품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어느 정도 수용해야 되는지는 현실에 집중하는 작가들이 항상 맞닥뜨리는 질문이다.

"과거에는 예술과 정치를 인위적으로 분리했습니다. 그런 담론이 현상유지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대단히 정치적인 표현을, 예술에 포함시키자는 시도도 지속됐지요. 예술과 정치는 살과 피의 관계로 서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작품 속에 직설적인 정치적 입장을 담아야겠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대로 쓰는 겁니다. 저는 '픽션은 진실이다'는 말을 항상 생각합니다. 사실 더 깊은 진실일 때가 많습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용해 정치적 메시지 전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첫 장편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아룬다티 로이. 그는 "세계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피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평구청 제공]


로이는 "정치이건, 젠더의 문제이든, 세계 속에 존재하는 복잡성을 바라보며 그대로 쓴다"면서 "다만 그 복잡성으로부터 도망치는 걸 피하려는 것"이라고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밝혔다. 인도 남부 케랄라 주 출신으로 17세에 2박3일 기차를 타고 델리에 올라와 건축학을 전공한 로이는 이후 시나리오 집필, 배우 생활 등을 거쳐 작가로 나섰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저는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많이 배웠고, 글을 쓰는 데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시계획을 하듯 장편 '지복의 성자'를 설계하고 해체하면서 집필해나갔습니다. 제 책은 도시를 걸어가면서 어떤 사람들을 살펴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과 같습니다. 직업이 바뀐다고 관점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시각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모든 것이 소설가의 뼈와 살이 되고 머리카락과 눈썹이 되는 것이죠."

인도 전통사회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그린 '작은 것들의 신'은 "어느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제가 생각하는 인도 여성을 직접 그리기 위해 썼다"고 밝혔다. 부커상으로 세계적인 갈채를 받은 뒤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기도 했지만 인도인들의 도덕 정신을 부패시킨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인도 모디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는 "국민들을 기습 공격하는 것처럼 록다운을 불과 4시간 전에 발표했다"면서 "힌두 근본주의와 민족주의 강화에 이용하는 반인도적 범죄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로이는 '박사와 성자: 암베드카르-간디 논의'라는 긴 에세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자' 간디의 이면을 들추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 바 있다.

"인도 사회에서 카스트를 벗어나서 결혼하는 사람은 3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도의 기득권 상층부는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는 발리우드 같은 화려한 모습만 보이지만, 실제 인도 사회는 대단히 위계적이고 인도인들은 자신의 카스트와 종교가 다른 이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카스트 역사가 긴 만큼 반대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디에 대해 글을 쓰면서 부분적으로 카스트를 용인하고 인도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성자'의 태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으려는 위험성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인도 사회의 복잡한 갈등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은 것'을 지지하며 제도와 편견에 맞서온 여성, 아룬다티 로이의 내면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로이는 이날 델리와 서울을 잇는 화상에서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며 "저는 지속적으로 싸움을 이어가는 수천만, 수억 명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자신이 뛰어나게 특별하고 뭔가 이끄는,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그중 일부다, 그렇게 생각하면 힘을 빼고 그냥 그 흐름을 타면서 넓은 강을 헤엄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 강은 위험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것도 있는 강이죠. 함께 창조하고 분노하고 즐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끔찍합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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