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포슬포슬한 농담으로 견디는 코로나 블루"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9-11 11: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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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두번째 장편 '복자에게'
우울한 시절 청춘들을 위한 헌사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

이른바 '코로나 블루' 시절에 어디로 분출할 길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찬 젊은이들은 유독 더 우울하고 힘들다. 가뜩이나 취업에 대한 불안과 좌절,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힘든데 코로나는 설상가상인 셈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뻔한 위로에서부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오래된 언사들까지, 이들을 위무하는 수사는 차고 넘친다. 이즈음 청춘들의 고통이 이런 언설 정도로 진통 효과를 발휘하기는 애당초 무리다. 이제 막 삼십대를 지나온 김금희(41)가 선보인 새 장편 '복자에게'(문학동네)는 어떠할까.

열세 살 여자 아이 '이영초롱'은 부모가 파산하는 바람에 제주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에서 고모와 살아야 했다. 이 섬에서 '할망당'에 전입신고를 시키는 또래의 아이 '고복자'를 만난다. 아이스크림을 사러가던 중 다짜고짜 끌려가다시피한 할망당에서 복자는 '영초롱'에게 서울에서 내려온 사연을 할망신에게 고하라고 요구한다.

▲제주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가상의 '고고리섬'을 배경으로 풋풋한 성장담과 청춘의 아픔을 교직한 소설가 김금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우리집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서울에서 나쁘게 지냈습니다. 아빠 친구라고 해서 문을 열어줬는데 남자들이 신도 안 벗고 들어와서 욕설을 하였고 싸웠습니다. 아빠가 신발을 벗으라고 하자 남의 돈을 안 갚는 집은 사람 새끼들 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베란다 창고에 숨어 노래를 들었습니다. 영웅이는 거실에서 다 봤습니다."

 

남동생 영웅이는 서울에 남고 누나인 영초롱만 섬으로 내려온 처지. 이 시기 복자와 맺은 튼실한 우정은 영초롱의 '자주 상처받고 여러 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로 인해 훼손된다. 서울로 떠난 영초롱은 그녀를 보살폈던 당시 '정희 고모'의 나이가 되어 다시 제주로 내려온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판사 신분으로, 그것도 재판을 하면서 말을 함부로 하여 징계를 받는 차원에서 내려와 다시 복자와 만난다.

 

지난 시절 영초롱의 보호자였던 '정희 고모'는 보건진료소 의사. 당시 서른 살이었던 정희는 나름 푸르지만 고립된 화분 같은 존재였다고 영초롱은 떠올린다. 삼십세를 일컬어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라고 하거나, 어떤 시인은 '잔치가 끝난' 나이라고 했지만 김금희가 생각하는 삼십대는 본격적인 성장을 맞는 시간이다.

 

"서른 살이란 이십대의 형형한 에너지가 약간 순화되었을 뿐 여전한 활기와 발산을 간직한 때가 아닐까. 마치 새잎과 꽃의 계절인 봄을 보내고 본격적인 성장의 시간을 맞은 초여름의 식물들처럼. 하지만 고모는 정물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화분 속 식물처럼. 나름의 푸름으로 자족하지만 단조롭고 분명한 고립이 있는."

영초롱이 제주에서 맞닥뜨린 사건은, 아픈 기억으로 남은 제주의 어린 시절 상처를 회복하기는커녕 다시 덧들이는 숙제였다. 복자가 제주 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처방 약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해를 입어 아이를 유산시킨 일을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송사를 제기한 것이다. 병원 측은 제주의 권력자들을 배경으로 송사에 맞서고, 영초롱은 고군분투하지만 오히려 피고 측의 술수에 말려 재판에서 손을 떼야 하는 처지로 몰린다. 결정적으로 복자마저 그녀에게 손을 떼라고 선언한다. 영초롱의 찢긴 마음은 어디서 회복할까.

 

"사람을 한번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랄까, 비극이랄까, 고통이랄까 하는 모든 것이 옮겨오잖아. 하물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야. 이를테면 판사는 그때마다 눈을 맞게 되는 것이야. 습설(濕雪)의 삶이랄까. 하지만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고."

 

선배 판사는 그녀에게 '물기를 많이 머금어 잘 뭉쳐지고 무거운 눈'을 일컫는 '습설'의 삶이야말로 판사들의 업이라고 충고했다. 다른 이들의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재판을 끝낸 뒤 그 삶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달아나라고. 복자와 영초롱의 관계와 쌍을 이루는 '정희 고모'와 '이규정'의 사연은 이 소설의 외연을 넓히는 지난 시대의 아픔이다.

 

정희는 1990년대 초반 '전대협'의 일원이었던 절친 이규정이 김민준의 투신을 방조했다는 '자살방조죄'를 받는데 유력한 증인이 되어버렸다. 이규정이 투신한 김민준의 뒤에서 '사랑한다'고 울부짖은 것을 정희가 증언한 것이다. "사랑해,는 친구가 투신한 상황에서 정상인이라면 뱉을 수가 없는 말이라고 재판부는 보았다." 사랑하는 친구의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그 사랑을 증언했던 정희 고모의 청춘은 사랑으로 갇혀버렸다. 이후 정희가 그 사랑을 만회하기 위해 걸어간 행로는 복자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영초롱의 안간힘과 어울려 애틋하게 다가선다.

 

영초롱은 이별한 남자친구가 있는 프랑스로 건너가 인권법연구소의 체류연구원으로 살면서 생존법을 깨닫는다. 팬데믹 시대 영초롱의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노파가 '나는 1944년 파리 공습의 생존자란다'는 팻말을 들어 올려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니와, 그녀는 이 대목에서 '한소식'을 얻는다.

 

"맞은편의 생존자가 생존자라는 단어를 들어보일 때마다 그 충동은 커져갔다. …그러고 보면 이 팬데믹 시대에 그것은 모든 이들이 두 팔로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생존하고 싶다고. 전염병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가난이나 상실이나 실패로부터."

 

▲제주의 섬에서 가을을 보낸 체험을 바탕으로 장편을 집필한 김금희는 "그곳에서 받은 깊은 위안과 포용이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영초롱은 그녀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던 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병실에서 말한다. "내가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런데 그러면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 김금희는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면서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김금희 소설을 서사로만 압축해버리면 싱거워질 수 있다. 김금희 스타일의 유머와 젊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감성과 대사가 큰 윤활제다. 복자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 눈썹을 그려주면서 그것은 '농담' 같은 거라고 했다. 김금희가 만들어낸 복자라는 인물은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으로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블루 시절을 건네줄 처방약은 그런 농담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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