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나는 어떻게 죽은 사람입니까?"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9-04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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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정 두번째 장편 '내 이름을 불러줘'
소유주 분쟁으로 두동강 난 건물의 혼령들과
소통하며 죽음의 원인 찾고 '터주'의 철학 펼쳐
탐욕의 세태, 땅과 건물의 진정한 주인은?

예부터 한국인에겐 '터주'라는 가신(家神)을 모시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울타리 안의 안녕을 관장하며 복을 주는 신이어서, 항아리에 쌀을 담고 짚가리를 씌워서 장독대에 모셨다. 이 터주신이 지켜보는 부동산 광풍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터에 세워진 건물 값이 하루아침에 널을 뛰고, 그 안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임대료를 올려줘야 하거나 쫓겨나기도 하지만 건물주는 느긋하게 쾌재를 부르는 세태. 터주의 입장은 어떠할까. 주인을 지켜주는 게 터주의 일일까. 그 터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건물주일까, 그곳에 살고 있는 혹은 살아온 이들일까. 황여정의 두 번째 장편 '내 이름을 불러줘'(문학동네)는 잊혀진 '터주'를 붙들고 부동산에 목을 매는 세태의 근본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나는 살해당했다'는 어느 '영'(靈)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 존재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뚜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름은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타살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조차 불분명하다. 그를 두고 특별한 장소에 묶인 혼을 일컫는 '지박령(地縛靈)'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아무튼 '나'는 누구일까. 누구든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는 나를 알 것 같다.

▲혼령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통해 오늘날 투기판이 돼버린 땅과 건물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지 묻는 장편을 펴낸 소설가 황여정. [문학동네 제공]


이 혼령이 묶인 '우성빌딩'은 건물이 반쪽으로 나뉘어 절반은 철거되고 나머지는 남아 있는 괴이한 형태다. 건물을 공동소유한 이들이 개발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끝에 한 쪽에서 자기 소유 지분만큼 철거해버린 것이다. 남아 있는 반쪽 건물에는 노래방, 헌책방, 미용실과 사진관이 마지막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다. 헌책방 주인 오탁조가 혼령을 알아보고 대화를 나누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혼령과 소통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영에게서 여러 존재를 번갈아 느낀다. 그 영이 이른바 '집합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확실하진 않다.

 

사진관 주인 고수림은 일찍이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생을 망가뜨린 경우다. 고수림의 아내 길오순은 딸 '미래'를 남겨둔 채 그 지옥을 떠나버렸다. 미래가 성년이 되어 터키에 자리를 잡고 살다가 아버지 고수림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 귀국해, 부친이 타살당했다는 오탁조의 말을 접하고 그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한 축이다.

 

미용실 주인 백은령은 어느날 북유럽 스타일 디자인의 조명등에 줄을 걸고 목을 맨다. 지독하게도 불우하게 이어진 삶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것인데, 그의 연인이었던 모근태의 죽음도 한몫 거들었다. 고수림과 절친이었던 모근태는 일찍이 우성빌딩이 들어서기 전 재개발 동네에 불을 지른 공모자였다. 사장 동생의 지시에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지른 일이지만, 목격자가 살해당하면서 그들은 내내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모근태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고를 가장한 타살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밝혀낼 재간이 없다. 고수림은 허물어진 사진관 벽 앞에서 누군가 밀어버려 추락사한 것으로 보인다.

 

자, 이제 '나'라는 혼령은 누구일까. 고수림, 모근태, 목격자였다가 살해당한 노숙자, 아니면 원래 이곳에 있던 존재? 작가는 이 존재를 밝힐 듯 말 듯 조금씩 실마리만 풀어가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해 쉽사리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여기에 미국에서 온 버스킹 청년 빔 피셔가 등장하는데, 이는 '터주'에 대한 글로벌한 배신 양상을 다루기 위한 득의의 설정인 듯하다. 빔의 아버지는 누구든지 현실에서 긍정적인 사고로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전파하는 유명강사. 정작 아들 빔은 내성적일 뿐 아니라 장애가 있는 피아니스트 수지와 깊이 교류하게 된다. 수지의 모친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 HYUNDAI 차 안에서 살다가 공공임대주택 신청 대기줄에서 압사당했다. 우성빌딩에 최후까지 남았던 오탁조나 백은령, 지하 노래방 주인 진묘연 같은 이들도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들이긴 마찬가지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건 결국 이 세상에서 비롯된 어떤 마음 때문이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마음, 한 번도 제대로 해소된 적 없는 마음, 그래서 끝내 버려지지 않는 마음 같은 거 말이다. 그런 마음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혼령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따져보지 않아도 되겠지. 설령 혼령 같은 건 허구에 불과하다고 여기더라도 그 사람은 이미 혼령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테니까."

 

혼령과 소통하는 오탁조가 장례지도사 아들 '풀잎'에게 하는 말이다. 혼령으로 떠도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건 아니건 혼령의 존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 남은 마음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혼령은 이름이 불리는 순간, 이름에 깃들어 있는 시간이 자신을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누가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까. 오탁조는 자신보다 신기가 뛰어났던 이모할머니의 영을 만나 지금 존재가 궁금한 혼령의 이름을 묻지만 "그 이름을 말하는 건 내 몫이 아니다"는 답만 돌아온다. 탁조는 그제야 깨닫는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 자들의 몫'이라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놈들 말이다. 그런 놈들은 끝까지 들러붙게 돼 있어. 줘도줘도 만족을 못하지. 결국엔 내가 가진 것 전부를 내놓으라고 할 놈들이라고. 진짜 파렴치한은 그런 놈들이야. 자기가 못 갖는 걸 가진 자들을 혐오하면서 언제나 남의 것만 탐내는 버러지 같은 것들. 마치 본래 자기 것이었던 걸 뺏기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하게 억울해하는 개자식들."

 

철거지역에 남아 이전비용을 보장하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사장은 목소리를 높인다. '수용은 미덕이 되고 체념은 최선이 되고 망각은 습관이 되는' 현실은 좌절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죽은 자와 죽인 자를 밝혀낸다 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 몰랐다. 죄를 지은 자들이 죗값을 받을 길은 없었고 죗값을 받는다 해도 또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철거지역 주민들을 내쫓고 방화에 살인까지 저지른 악의 편은 죄책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들은 당당하지만, 쉬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 죽고 죽임을 당하는 '모질이'들은 왜 항상 당하고만 사는 존재로 그려지는가.

▲황여정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곳은 어떤 장소여야 할까"라는 물음에서 이번 장편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문학동네 제공] 


자신이 누구인지, 왜 죽었는지 가물가물한 혼령의 기억을 깨우기 위해 필요한 건 '분노'였다고 작가는 적시한다. 어느 순간 '분노'에 촉발된 혼령은 비로소 자신에 대한 모든 걸 알게 된다. 그가 누구이고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잠시 머무르다 가는 자들이 땅의 주인인 것처럼 오만하게 행세하는 것에 노여워했고, 머무르는 자들의 절망과 슬픔이 반복되는 것에 혼령은 노여워했다. 그는 이제 말한다.

 

"모든 걸 되돌려놓을 수는 없다. 오래전 그때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곳을 가졌다고 믿는 자들이 이곳은 애초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는 영겁의 세월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여움을 표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곳은 자신의 것이니 자신의 의지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교만에 대해, 사람이 머무는 곳을 함부로 부수고 함부로 짓는 무례함에 대해, 영원에 속하는 것을 사고 파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천박함에 대해, 이곳에 깃들어 있는 시간을 살펴보지 않는 무지함에 대해."

 

2017년 문학동네소설상에 장편 '알제리의 유령들'이 당선돼 작단에 나온 황여정은 두 번째 장편에서 작금의 투기와 탐욕의 세태를 '터주'의 철학으로 뚝심있게 파고든다. 그는 '천지신명'이란 "따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조화로운 세상에 대한 바람을 투사한 일종의 상징"일 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이런 기도야말로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천지신명께 비옵나니, 부디 당신의 본성이 세상의 뜻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근년 한국 문단에서 눈에 띄는 부녀 한승원-한강, 이제하-윤이형에 이어 황석영을 부친으로 둔 소설가로도 주목받는 황여정은 "소설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세상에 대해서든 회의와 좌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뭔가를 계속한다는 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후기에 적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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