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탈북 김련희 '고르디우스 매듭' 대통령이 풀어야  

이원영 / 기사승인 : 2020-06-03 08: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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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서 탈북했다는 김련희 씨 9년째 입북 호소
당국 "현행법 규정으로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유엔 인신매매 방지 규정 어긋나 결단내려야

8년 전 미국 LA에서 기자로 일할 때 북한을 방문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7박 8일간 일정을 마감하면서 김철주사범대학의 정치학강좌장 정기풍 교수와 간담회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는 우리 일행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했다. 일행 중 유일한 기자였던 나는 작심하고 3대세습, 핵무기, 탈북자 문제 등 대답하기 곤란할 것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남한으로 온 탈북자가 3만 명을 웃도는데 이건 북한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질문마다 거침없이 대답하던 그는 털털 웃으면서 "뭐 조국이 어려워서 먹고살겠다고 나가는 건데 어쩌겠습니까. 남조선에는 탈남자 없습니까. 내가 알기론 수백만 명이라고 하던데. 우리 인민들 어려워서 이민 가는 거나 남조선 이민자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살기 어려워 '탈출'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던 차에 '먹고 살려고 나간 이민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던 그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탈북의 동기는 다양하다. 돈을 벌기 위해, 정치적 탄압을 피해서, 범죄를 저지른 후 도피수단으로 등등. 생각해보면 미국의 한인 이민자들이 태평양을 건넌 이유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만 남쪽으로 온 탈북자들은 특수한 조건의 이민자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로 이민을 하든지 살다 싫으면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유독 북한에서 한국으로 온 이민자들은 원칙적으로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은 정보기관에서 한국행의 자유의지를 확인받는다. 적응 기간을 거쳐 소정의 정착 지원금도 받는다. 그리고 한국 국적과 여권도 생긴다. 대개는 입국 1년 정도 지나면 한국 여권을 받게 된다고 한다.

 

한국 여권을 받은 후로는 사실상 해외여행에 제한이 없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수백 명의 탈북자가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갔다는 말도 있다. 더 많은 숫자가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런 현실에서 볼 때 탈북자 김련희(51) 씨 사연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녀는 2011년 국내에 들어온 이후 줄곧 "돈 벌어서 금세 돌아갈 수 있다는 브로커 말만 믿고 들어왔는데 속았다"며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러나 '입북 의사'를 밝힌 것이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여권도 8년 만인 지난해 나왔고, 그나마 출국금지가 걸려 해외에 나갈 수도 없다. 출금 사유가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죄 조사 중'이라는데 지금까지 당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적도 없단다.

 

김 씨는 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밀입국도 시도하고, 위조여권에도 기웃거려보고, 심지어는 간첩행위를 하면 추방당할 것으로 알고 스스로 간첩이라고 자진신고까지 하는 등 발버둥 쳤지만 돌아온 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처벌(징역2년 집유3년)이었다. 언론과 사회단체가 문제를 제기해도 정부의 대답은 현행법상 그녀를 돌려 보낼 법적 장치가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3만여 탈북자 중에 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왜 없겠나. 김 씨처럼 속아서, 몰라서 온 다음 후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집단 탈북한 식당 종업원들도 자유의사가 아닌 유인납치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도 그치질 않고 있다. 유엔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의 부속 의정서인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도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 무력, 납치, 사기, 기만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 운송, 인수하는 행위'를 인신매매로 규정한다. 탈북자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거나 속아서 왔다면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인권 유린 상황에 있는 것이다.

 

분단 상황에서 탈북 이민자들이 돌아가고 싶다고 무조건 돌려보낼 수 없다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김련희 씨와 같은 케이스는 유엔 기준으로 볼 때도 엄연한 인신매매 피해자를 억류하고 있는 셈이다.

 

통일부까지도 "김련희 씨는 자유의사에 따라 탈북하였으며,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김련희 씨가 대한민국에 정착 의사가 있음을 충분히 확인하였다"고만 답한다. 동문서답.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예민한 문제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집단적 '내몰라라' 속에서 김련희 씨는 9년의 세월을 가족과 생이별하고 있다. 북한이 거꾸로 우리에게 인권 문제를 제기해도 할 말이 있을까.

 

김련희 씨 문제는 고차방정식처럼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모를 '고르디우스 매듭'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이 단칼에 잘라내지 않고는 풀 수 없을 것 같다.

▲ 이원영 사회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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