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칼럼] 칭찬받은 기생충, 욕먹는 기생충

이원영 / 기사승인 : 2020-02-10 15:23:48
  • -
  • +
  • 인쇄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고 눈시울까지 붉어질 지경이었다. 할리우드 오스카 시상식 무대를 휩쓴 '기생충' 덕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답답하고 우울한 나날을 겪어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처럼 커다란 위안이 또 있을까.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희소식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생긴 찝찝한 기분을 한순간 털어내기에 충분했다.

전문가들조차도 작품상은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에 돌아갈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에 마지막 작품상 호명은 즐거운 양보를 하겠노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작품상도 기생충에 안겨주었다. 비영어권 영화로는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란다.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영화도 역사상 1955년 미국 영화 '마티' 이후 두 번째다. 수상 소감에서 나온 말처럼 상상하지도 않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소재와 환경이 매우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쓰인 시나리오에 세계가 공감하고 호응했다는 것도 신기하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 정서와 같이 호흡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4관왕 수상 장면을 감격적으로 바라보면서 '국격(國格)'이란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격이 쑥 올라가는 느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란 말 대신에 '나 대한민국 사람이야'라고 흥얼거리면서 지구촌을 활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즐거운 상상이 솟구쳤다. 한 편의 영화가 전 국민에게 이렇게 뿌듯한 자부심을 심어주었으니 그 공로를 어떻게 충분히 칭찬할 수 있으랴.

'기생충'이란 단어도 앞으론 좀 가려가면서 써야겠다. '혐오스럽고 징글맞은 느낌이 드는 기생충'이란 어감이 달라졌다. 앞으로 남을 극찬할 일이 있다면 '기생충 같은 분'이라고 불러주면 어떨까 하는 다소 불손하고 유쾌한 상상도 해본다.

'기생충'은 국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면서 연관검색어처럼 '정치'라는 단어를 불러온다. 경제도 세계적인 나라, 케이팝으로 대중문화도 세계를 휩쓴 나라, 이미 코리언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게 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마지막 남은 국격 상승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 데가 정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치만 한 단계 성숙해진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은 그야말로 최정점에 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기생충'은 '정치'까지 소환하게 된다. 직업별 신뢰도 조사를 보면 한결같이 '가장 못 믿을 직업' 1위에 정치인이 꼽힌다. 그야말로 유권자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진짜 기생충 같은 사람들이란 이미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영화 '기생충'으로 쑥 올라간 국격 상승의 기운에 탄력 받아 정치도 한 단계 성숙시키자. 정치인들에게 '셀프 승격'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격(연목구어)일 터이니 칼자루를 쥔 유권자들이 이번에 좀 수고를 하자.

두 달밖에 남지 않은 4.15총선은 진짜 기생충 같은 정치꾼들을 청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기생충 정치꾼들을 소멸시키고 '기생충'으로 얻은 국격 상승의 정점을 찍자. 또 한 번의 '기생충' 환호가 4월 15일에 들려오길 고대한다.

▲ 이원영 사회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핫이슈

만평

2020.04.03 00시 기준
10062
174
6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