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차가운 광화문 광장, 뜨거운 '분노의 배출구'

양동훈 / 기사승인 : 2020-01-17 1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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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이 온갖 주장·시위 중심으로
"당국이 외면하니 거리에 나올 수밖에"
텐트 설치는 불법이나 단속 쉽지 않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역사성을 담고 있는 광화문 광장. 한국정부의 심장인 세종로 정부청사, 그리고 서울시청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리다.

사람들은 이 길을 걸으며 역사의 향취를 느끼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자부심을 갖고, 나아가 역동하는 국운의 박동소리까지 듣고자 한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은 코리아의 흥과 멋, 숨결이 가득한 이곳에서 한복을 빌려입고 낭만과 추억을 즐긴다.

그런 광화문 광장이 어느 때부터인가 울분과 통곡과 절규의 함성이 가득한 '분노의 광장'으로 탈바꿈해버렸다.

주말에는 광장을 꽉 채울 정도의 인파가 몰려 고막을 찢을 듯한 확성기 소리가 가득한 '분노의 배출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무엇을 외치고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그들의 분노는 시민들의 광장을 빼앗을 만큼 정당하고 가치로운가. 오늘의 광화문 광장은 우리들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지난 15일 UPI뉴스 기자들은 시청역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세종대로를 샅샅이 훑으며 그들을 만났다. 차가운 1월 중순 날씨에도 천막 속에서, 길가에서 외침과 분노는 계속되고 있었다.

▲ UPI뉴스 기자들이 방문한 광화문 천막농성 및 시위 현장 지도 [구글 지도]

#1. 조선일보가 입주해 있는 코리아나호텔 앞엔 조선·동아일보 폐간 시위가 진행 중이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에서 주관하는 이 시위는 새해 첫날부터 15일째 이어지고 있다. 피켓을 든 장지만(70) 씨는 "일제강점기에는 사람들을 선동해 일본군에 참전하게 하고, 독재정권 비호에 앞장 서더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며 "100주년 맞이하기 전에 폐간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주장했다.

추운 날씨에 야외에 서 있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일 시위를 하고 있다. 2명이 교대로 시위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할 만하다"고 했다.

#2. 광화문 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막가파 문재인 정권 퇴진촉구 국민대회'가 보인다. 오후 3시 집회를 앞두고 3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무대에서는 가수가 노래로 흥을 돋운다.

무대 옆에 앉아있던 국민의소리 고도환 운영위원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집회를 하며,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작년 4월부터 다른 곳에서 하던 집회를 여기로 옮겼다"고 덧붙였다.

'정권을 어떻게 퇴진시키려 하시냐'는 질문에는 "알아서 하야할 리가 없지 않나. 4월 총선에서 크게 이겨야 한다"며 총선 승리를 통해 탄핵정족수를 획득하는 것이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총책임자인 국민소리당 창당준비위원회 장기표(76) 대표가 도착했다. 장 씨는 "문재인 정권이 아주 막가파다. 법 무시하고 경제 파탄내고 안하무인"이라며 "국민의 이름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 인근에 천막농성장이 설치되어 있다. [정병혁 기자]

#3. 광화문 광장에 진입하자 세월호 기억공간이 보인다. 그 앞에는 두 명의 1인 시위자가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김제현(87) 씨는 '한미방위조약파기시위 1900일차'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1인 시위를 하러 나왔다"고 했다. 김 씨는 "이명박 정권 때는 광우병 관련 시위를 했고, 박근혜 정권 때는 부정선거·역사왜곡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었다"며 가방 속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를 꺼내 보여줬다.

김 씨는 "미국이 우방국이니 우리나라와 잘 지내야겠지만, 상호방위조약에 매여 갑질을 당하는 상황"이라며 "자기 이익을 위해 주둔하는 거니까 주둔비 내도 모자랄 판에 방위비 6조로 올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했다.

#4. 김 씨 바로 옆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본인을 창현이 엄마(56)라고 밝힌 시위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시간 정도 시위를 하고 있다. 안산에서 올라와서 시위를 한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설치된 것은 좋지만 기대만큼 해내고 있지 않다. 침몰 원인도, 당시 대통령의 7시간도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우려했다.

이어 "우리는 형식적인 특조위가 되지 않도록 계속 감시할 것이며, 아직 작은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 '전두환 포획 동상' 옆에서 천막농성 중인 신기선 씨 [양동훈 인턴기자]

#5. 세월호 기억공간을 지나면 동상이 하나 보인다. 지난해 12월 12일에 있었던 '전두환 구속 퍼포먼스' 동상이다. 동상에는 '전두환 포획상의 파손 위험이 있으니 절대 치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동상의 머리 부분에는 땜질한 흔적이 역력했다. 대신 옆에 있는 펀치볼에 전두환 씨의 사진을 붙여뒀다.

천막 안에는 신기선(61) 씨를 비롯해 3명이 있었다. 밖에 비해 천막 안은 비교적 따뜻했다. 신 씨는 전두환 씨의 구속을 촉구하는 단식을 14일 한 뒤 천막을 계속 지키고 있다.

신 씨는 "내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고3이었다"며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수괴를 단죄하지 않으면 역사가 반복된다"며 "나는 얼마 더 살지 모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당국의 철거 시도가 없었냐는 질문에는 "천막 설치한 지 1주일 정도밖에 안 됐고 집회신고도 안 했다. 계고장이 두 번 날아왔다.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6. 세종문화회관을 지나면 천막들이 즐비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이 세운 천막들이다. 톨게이트 노동자 정규직화, 고 김용균 씨 추모분향소 및 위험의 외주화 방지, 고 문중원 기수 사망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다.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본부 문함수(51) 정책국장은 "투쟁을 시작한 지 200일이 됐다. 김천에서 130일, 서울에서 70일 정도의 집회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문 국장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는데도 정규직으로 뽑아주지 않는 공기업에 참담한 심경"이라며 "아직도 길에 있어야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7·8. 고 김용균 씨 추모분향소. 주변에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균과의 약속을 지켜라', '특조위 권고안 정직하게 이행하라', '비정규직 철폐' 등의 문구가 걸려 있다.

▲ 세종문화회관 옆에 자리한 고(故) 문중원 기수 사망 진상규명 천막. [김형환 인턴기자]

옆으로 옮겨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를 만났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문중원 기수의 유서에는 마사회 내부 비리와 부정이 적혀 있었다"며 "'내가 쓴 유서가 맞다'는 흔적도 남기고 마사회 간부 이름까지 적었지만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관계자는 "부산 경남 경마공원 개장 이래 최소 7명이 자살했고 4명이 폭로 유서를 남겼지만 진전된 것이 없다"며 메아리 없는 당국을 비판했다. 이들은 "매일 낮 1시 30분에 청와대를 향해 빈 상여를 들고 행진하며, 오후 7시에는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9. 정부서울청사 앞에 자리 잡은 탈북자 북송 진상규명 시위 텐트. 지난해 11월 7일 정부는 동료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북한 남성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송했다.

남북함께 공동대표 겸 사무총장인 성현모 목사는 "이들이 실제로는 탈북 브로커이며, 사람들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왔다"며 "설사 정부 주장이 맞고 그들이 살인자라 해도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따라 사실 확인을 해야 하는데, 결박하고 눈까지 가린 채 북한으로 보냈다"고 했다.

성 목사는 "탈북민들이 이 사건에 흥분했고, 작년 11월 26일에 이동현 씨가 단식을 시작했다. 이후 주일용 고려대 트루스포럼 대표, 김태희 탈북민연대 대표, 나, 김충성 탈북 목사가 릴레이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성 목사는 "단식 텐트가 고장나서 천막을 설치했는데 철거했고, 그래서 다시 텐트를 쳤더니 또 철거했다. 항의하던 김태희 대표는 긴급체포까지 됐다"며 "옆에 민노총, 마사회 천막이 대형으로 17동이나 있는데 우리만 철거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종로구청 관계자는 "이미 텐트에 대해 계고장을 보낸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텐트나 천막을 설치했기 때문에 반복적, 상습적 행위로 보고 철거한 것"이라며 "다른 천막에도 계고장을 모두 보낸 상태"라고 반박했다.

천막농성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나뉜다. 우선 집회 자체에 흥미가 없다는 반응이 있었다. 근처 버스정류장 앞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지나가면서 보긴 했는데 뭔지 잘 모르고 별 관심도 없다"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온정적인 시선도 있다. 고 김용균 씨 분향소 앞을 지나던 김모(71) 씨는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나오는 것 아니겠나. 사람들의 죽음에는 다 사연이 있고 그 죽음에 대해 느끼는 무게감과 하는 생각도 다 다른 법"이라고 했다

이어 김 씨는 "이 추운 날씨에 저렇게 고생하는 건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니편 내편 갈라서 싸울 게 아니라, 저렇게 고생하지 않도록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정부가 잘 듣고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 인근에 천막농성장이 설치되어 있다. [정병혁 기자]

천막농성은 모두 불법

종로구청 관계자는 "집회신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천막은 다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집회 자체를 못 하게 하지는 않지만, 천막을 치고 며칠을 버티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로법 제61조에 따르면 도로를 점용(차지하여 사용)하기 위해서는 도로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가 가능한 시설물의 종류는 도로법 시행령 제55조에 명시돼 있다. 천막이나 텐트는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원칙적으로 도로에 세워서는 안 된다.

불법으로 세워진 천막이나 텐트에 대해서는 행정대집행법 제3조에 따라 우선적으로 계고장을 부여해야 한다. 계고장은 행정상의 의무 이행을 재촉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다. '천막이 불법이므로 지정한 기간 내에 자진철거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정한 기한이 지났음에도 철거하지 않았을 경우 행정기관은 대집행 시기와 예상비용을 통지하고, 그대로 이행할 수 있다.

도로법 제74조는 '행정대집행의 적용 특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반복적, 상습적으로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도로를 점용하는 경우와 도로의 통행 및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계고장을 보내지 않고도 철거할 수 있다.

UPI뉴스 / 양동훈·김형환 인턴 기자 yd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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