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여자들에게 평등을 약속한 건 잔인한 짓?"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1-10 11: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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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수상 마거릿 애트우드 장편 '증언들'
여자를 도구로 전락시킨 디스토피아의 몰락
전 세계에서 각광받은 '시녀 이야기' 후속작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은 소설에 쓰지 않아"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에서 벌어지는 여성 학대 이야기를 1985년 '시녀 이야기'에 담아내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팔순을 넘긴 그녀는 미투 운동과 트럼프 반대 시위의 상징으로까지 등장한 '시녀'들 후속 이야기를 '증언들'에 담아냈다. [황금가지 제공]


임시정부는 여자들의 돈은 가장 가까운 남성 친족에게 귀속시키는 새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나라의 새 법에 따르면 아이를 유산시키는 '인간 살해'는 사형으로 다스리며, 이혼은 범죄에 해당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몸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경멸한다. 전체주의 정부는 환경 오염과 각종 질병 때문에 출산율이 극도로 저하되고, 아이가 태어나도 정상일 확률이 드문 사태에 직면해 특별 조치를 취한다. 임신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여자들을 분류해 하녀, 대리모에 해당하는 시녀, 엘리트 계급의 아내, 여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아주머니' 계층으로 나누어 관리한다. 이 나라의 사령관은 여성을 통제하는 관리자에게 말한다.

"(여자들을 개조하는 일은) 상당히 방대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전문적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평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를 너무 오래 들어왔으니까요. 애초에 여자들에게 평등을 약속한 것 자체가 잔인한 짓이었어요. 천성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죠. 우리는 이미 그들의 기대를 낮추는 자비로운 과업에 착수했습니다."

'자비'를 베푼 결과 여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남자들이 욕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여자들을 통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증언 녹취록에 따르면 "남자의 욕구는 끔찍한 것이고 그런 충동은 억제할 필요가 있으니까" 여자의 치마는 발목에서 5센티미터 올라가는 길이가 상한선이었다. 증언자는 "남자의 눈은 호랑이 눈처럼 언제나 이리저리 배회했고, 그 탐조등 같은 눈은 유혹적이고 나아가 눈을 멀게 만드는 우리의 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했다"면서 "우리는 순진하고 무구한 죄의 원인이라서 타고난 본성으로 남자를 욕정에 취하게 만들어, 휘청거리고 비틀거리다 선을 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한없이 값진 보물을 보이지 않게 속에 품고 있는 관리인"이며 "우리는 귀한 꽃이라 유리 온실 속에서 키워야 했다"고 부연한다. 그녀들을 가르치는 '아주머니'는 "남자들이 하는 중요한 일들은 너무 중요해서, 뇌가 작아서 큰 생각을 못 하는 여자들이 관여할 게 아니다"고 가르쳤다. 상부에서 분류한 대로 시녀들을 엘리트 집안에 배속해 그 집의 아내가 머리맡에서 양 팔을 붙잡은 가운데 남편이 시녀의 몸에 씨를 뿌리는 '의식'을 치르고, 운 좋게 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는 가로챈 뒤 시녀는 다른 집에 다시 배속되는 운명이다. 이러한 체제의 법에 저항하면 공개 처형이 기다릴 뿐이다.

이 끔찍한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81)의 '증언들'(김선형 옮김·황금가지)에 등장하는 '길리어드'라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길리어드는 1985년 선보인 애트우드의 전작 '시녀 이야기'에 처음 등장했거니와, '증언들'은 이후 35년 만에 지난해 출간한 이 작품의 후속편이다.

▲미국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제작한 '핸드메이즈 테일'에서 붉은 망토를 걸친 '시녀'들이 도열해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후속작 '증언들' 말미에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은 소설에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존중해줘 감사한다"고 밝혔다. [훌루 제공] 


최근 2년 사이에만 1000만부에 이르는 판매고를 기록한 '시녀 이야기'는 영화, 미니시리즈는 물론 오페라, 만화, 발레로 제작됐을 뿐 아니라 4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강렬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미투 운동과 트럼프 대통령 반대 운동의 상징으로도 부각됐다. '시녀 이야기'가 길리어드에서 탈출하는 '오브프레드'라는 시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증언들'은 그 이후 오브프레드의 행방과 길리어드의 붕괴 배경을 3인의 증언을 매개로 풀어내는 형식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영미권 노벨문학상으로 일컬어지는 '부커상'을 받았다.

길리어드 안에서 태어나 성장한 '아그네스 제미마'와 길리어드와 국경을 맞댄 캐나다에서 성장한 데이지의 증언, 최고의 지위에서 여자들을 관리하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회고록이 '증언들'을 꾸려가는 내용이다. 전직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리디아는 출산의 효용가치는 없는 데다 이미 머릿속에 지식이 가득해 지독한 고문 끝에 사령관은 '관리자' 아주머니로 만들었다. 리디아는 잔인한 직분을 수행하면서도 나라 밖 저항단체 '메이데이'와 긴밀한 끈을 유지하면서 길리어드의 몰락을 향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아그네스와 데이지는 길리어드라는 사회의 전체주의적 실상을 독자들에게 드러내며, 종국에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명을 받아 길리어드 고위관료들의 내밀한 부패상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리디아는 언젠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면 누군가 보게 될 자서전을 몰래 집필해 나가면서, 자신을 던져야 하는 순간을 앞두고 망설이며 미래의 독자에게 말한다.

"미지의 독자여. 지금 당신이 읽고 있다면 이 원고는 적어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쟁여둔 무연 화약을 끌고 길리어드의 토대 밑으로 이만큼 터널을 파 들어왔는데, 여기서 비슬거릴 것인가? 나는 인간이므로,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경우, 나는 내가 이토록 힘겹게 쓴 이 페이지들을 파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신도 파괴해야 할 것이다, 내 미래의 독자여."

애트우드는 흥미로운 서사와 함께 이처럼 묵직한 문체의 잠언 형식도 끌어들여 다양한 층위의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 '시녀 이야기' 말미에 애트우드는 후손들이 길리어드 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로 마지막 문장을 맺었다. 이후 35년 동안 "길리어드는 어떻게 붕괴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들었다는 애트우드는 "실제로 종이에 글을 쓰기 전에 '증언들'은 전편을 읽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부분적으로 집필되었을 것"이라면서 "35년은 가능한 대답을 생각하기에 긴 세월이고, 사회 자체가 변하고 가능성이 현실로 바뀌면서 대답들도 변해왔다"고 후기에 썼다.

 
그녀는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시민들은 30년 전보다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부연했는데, 실제로 2017년 미국의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낙태 제한 및 금지법이 여러 주에서 통과되자 많은 이들이 '시녀'를 상징하는 빨간 망토를 입고 시위에 참가하는 일도 벌어졌다. 애트우드가 만들어낸 아주머니 '리디아'의 인간적인 고백은 계속된다.

"내 미래의 독자여. (이 자서전에) 성냥불을 화르르 붙이면 당신은 사라지리라. 한 번도 존재한 적 없고, 영영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싹 지워지고 말 것이다. 내가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리라. 얼마나 신과 같은 기분인가! 절멸의 신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흔들린다, 나는 흔들린다.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

애트우드는 여자들의 끔찍한 지옥을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으로 '희망'이라는 방부제를 선사한 셈이다. 폭넓은 독자에게 다성적 울림을 주는 이야기라는 차원에서, '증언들'은 후속작을 오래 기다려온 이들의 기대에 두루 부응할 만하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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