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이상(한)문학상?…초유의 수상 거부 사태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1-07 10: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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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최은영 김금희 우수상 수상 거부
권여선 "이토록 든든한 작가들...기쁘고 좋은 날"
믿고 읽을 만한 권위의 문학상 고대

연초부터 문학판은 이상문학상 거부 사태로 시끌벅적하다. 매년 1월 초에 발표하는 이상문학상의 경우 대상 수상작과 우수작을 함께 발표하는데, 우수상 수상자로 통보받은 이기호 김금희 최은영이 수상을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진 사태다. 문제의 핵심은 저작권이다. 주최 측인 문학사상사가 우수작의 저작권을 3년 동안 독점하겠다는 것을 작가들이 거부한 것이다. 향후 3년 동안 이들이 작품집을 낼 때 표제작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수록 자체도 안 된다는 조건을 주최측이 내민 것이다. 주최 측은 그동안 관행이었다고 하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이런 조건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주최 측은 수상 발표를 연기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상문학상 우수상(2007년)과 대상(2008년)을 모두 수상했던 작가 권여선은 이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렸다. 권여선은 "우수상을 받을 때 나는 워낙에 무명작가였던 데다 그때 돈 300만 원은 엄청난 액수였기에 기뻐 날뛰었을 뿐 계약조건이 어떤지는 알지도 못했다"며 "생각해보니 그때는 후보작인 우수상 작가에게까지는 계약을 강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돌아보았다. 또한 "대상을 받았을 때는 지금 문제가 되는 내용의 계약조건을 전화로 고지받았지만, 그런 것에 개의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계약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면서 "정식 계약을 하러 갔을 때 담당자는 고지한 계약 외에 앞으로 내가 문학사상사에서 의무적으로 두 권의 책을 발간해야 하는 조건을 추가해서 제시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조건을 수락하지 않고 수상을 거부했더니 당황한 주최측이 한 발 물러서더라는 것이다. 

권여선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이번 일로 제발 출판사의 낡은 출판관행과 상 운영관행도 바뀌기를 바란다.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들이 바뀌었으니. 이토록 든든한 작가들이 버티고 있으니"라면서 "기쁜 날이고, 참 좋다"고 후배 작가들을 격려했다. 이 사태를 접한 장은수 문학평론가도 "공모전이 아닌 한 기존 발표작 심사해서 상 주고 심지어 본심작까지 모아서 작품집 내는 건 이제 구시대 모델"이라고 밝혔다.
 

▲2019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 수상작과 우수작 4~5편을 함께 수록한다. 


이상문학상은 1977년 1회 김승옥을 대상 수상자로 뽑은 이래 이청준, 오정희, 박완서, 최인호, 서영은, 이제하, 최일남, 이문열, 김원일 등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이 상의 얼굴로 선정했다. 회를 거듭하면서 이 상은 단편 문학을 대중에게 이어주는 상징적인 권위의 문학상으로 자리잡았다. 수상작품집이 발간되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문제는 상의 권위를 담보로 주최 측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것이다. 이미 2000년에 문인들이 1977~86년 발간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일부 작품들이 제대로 양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무단 게재된 것이라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그럼에도 구멍을 메우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러 이제는 젊은 작가들의 수상 거부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문학상은 작가들을 격려하고 대중에게 작품을 알리는 역할이 본연의 소임이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공쿠르상의 경우, 상금은 10유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매년 11월 3일 발표되는 이 상에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수상작이 프랑스 서점에만 30만 부 이상이 깔리고, 세계 각국어로 번역돼 막대한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작가나 출판사 모두에게 명예는 물론 부까지 안겨주는 상이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의심하지 않을 권위를 지닌 문학상이 존재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연말이면 시상되는 수백 개의 문학상은 끼리끼리 주고받는 공로상 혹은 감사패 성격이어서 논외로 치더라도, 굵직한 유명 문학상들조차 수난을 겪고 있거나 폐지된 현실이다. 출판된 작품에 상업적 고려 없이 순수하게 상을 주는 국내 한 문학상은 친일시비에 휘말린 시인의 이름을 붙인 문학상 옆에서 엉뚱하게도 유탄을 맞아 아예 없어졌고, 또 다른 굴지의 문학상은 여전히 친일 시비에 휘말린 가운데 버티는 중이다.

그나마 대중에게 괜찮은 문학상으로, 믿고 사 볼 수 있는 작품집으로 다가갔던 이상문학상마저 잡음에 휘말려 가뜩이나 활자를 외면하는 독자들이 문학에서 더 멀어질까봐 안타깝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구축해온 권위도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대에 걸맞은 빛나는 문학상으로 거듭나기를 바랄 따름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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