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밤새도록 여린 짐승 하나 창밖에 서성거려…언니"

조용호 / 기사승인 : 2019-12-27 17: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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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 벌이듯 사흘 동안 쏟아낸 시 묶어낸 김민정 시인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슬픔이 오면 타협하지 말고 외투처럼 껴입어"

"지난 10월 허수경 시인 1주기 예불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씨발, 당분간 아무도 죽지 마, 그랬어요. 작년에는 슬플 겨를이 없었는데 올해는 매일 너무 슬프고 보고 싶고 그리웠어요. 그들이 남겨놓은 걸 그들이 없는데 혼자 만들어야 되니까. 다 저한테 맘대로 니가 하라고 유언했는데, 뭘 보고 나에게 그랬을까, 그러니까 내가 틀리면 안 되잖아요. 수경 언니 것까지 끝내고 나서 돌아보니까, 산 사람 쫓아다니며 일해야 하는데 죽은 사람들을 너무 따라다닌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든 털어내야 하는데, 사흘 동안 굿을 한 거 같아요."

 

김민정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를 펴낸 소회다. 파격적인 시어를 일상어로 끌어들인 시인이자 '성공한' 편집자로 소문난 그녀가, 사흘 동안 '굿'을 하듯, 중편소설을 쓰듯, 내리 토설한 시를 그녀의 나이에 맞추어 44편으로 편집, 매 편마다 '곡두'라는 부제를 달고 일련번호를 매겨 연작시 형태로 꾸려낸 시집이다.

 

▲지난해 작고한 박서영 배영옥 황현산 허수경의 유언을 받들어 올해 망자들의 유고집을 차례로 펴낸 뒤, 산 사람들 편에 다시 서기 위해 시로 씻김굿을 벌였다는 김민정 시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정작 장례를 치르는 기간보다 번잡한 일들을 치르고 문상객들이 떠난 뒤 홀로 남았을 때에서야 본격적인 슬픔이 시작되는 법이다. 2018년 그녀가 편집을 맡았던 박서영 시인, 배영옥 시인, 황현산 평론가, 허수경 시인이 2월, 6월, 8월, 10월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작고한 이들의 유언을 받들어 그녀는 망자의 1주기에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박서영),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배영옥),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황현산), '가기 전에 쓰는 글들'(허수경)을 차례로 펴냈다. 이들 중에서도 황현산 평론가는 그녀가 각별히 따르며 '밤이 선생이다'를 편집해 대중에게 널리 소개한 문인이고, 독일에서 작고한 허수경은 김민정이 2003년 '문예중앙' 편집자 시절 인연을 맺기 시작한 이래 나눈 이메일만 200자 원고지 1000장이 넘을 정도로 깊이 교류한 시인이다.

 

"언니가 멀리 있어 언니에게 부릴 수 있는 엄살…… 언니가 가까이 있으면 내게만 부리고 말았을 몸살…… 언니는 왜 내게 슬픔을 온몸으로 입어라 해서 이렇게 날 슬프게 할까…… 점 하나에 추억과 점 하나에 사랑과 점 하나에 쓸쓸함과 점 하나에 동경과 점 하나에 시와 점 하나에 언니, 언니 언니야…… 혼자 갔을 먼 집에서 검은 바둑돌로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두 개 놓아가며 먼저 놀고 있어라 언니야……[중략] 밤새도록 여린 짐승 하나가 창밖에서 서성거리기에 성냥에 불을 붙였는데 커져서는…… 번져서는…… 더는 쓸 수가 없겠다 언니야…… 침침해서……" ('수경의 점 점 점-곡두 22')

 

김민정은 허수경 시인이 투병 중일 때 나눈 통화 녹음을 내내 노래처럼 틀어놓고 유고집을 만들었다. 실수할까봐, 하란 것을 안할까봐, 걱정돼서. 허수경이 부탁한 것은 모두 들어주었지만 마지막 약속, 자신이 시를 쓰고 시집을 내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던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 시집은 수경 언니와 그 약속을 지키는 차원이기도 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허수경은 생전에 그녀에게 슬픔이 오면 외투처럼 껴입고 다니라고, 그래야 된다고 말했는데 그때는 절실하게 그 말들을 받아들이지 못해 김민정은 미안하다고 했다. 유고집을 만들면서 보니 이미 허 시인은 이 땅을 떠날 때 정신적 죽음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고 전했다. 가정사에다 시인으로서의 절망도 겹쳐 독일로 떠난 뒤 노숙까지 하며 힘들게 살았더라고 했다. 그 '수경 언니'가 슬픔이 오면 타협하지 말고 껴입으라고 했지만, 자신은 겁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경 언니 이야기를 줄줄 쓰다 보니, '언니'라는 여린 짐승은 그녀 곁에서 내내 서성거렸다.

▲시인은 예민한 존재라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무당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김민정 시인은 수긍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2018년 11월 9일 오늘 진달래나무 카페에서/ 일러준 생년월일로 사주와 주역을 보았어요./ 다 얘기하라 해서 다 얘기합니다./ 얘기한 거고요./ 마지막으로,/ 민정 씨는 병진년 윤달생입니다./ 윤달은 손 없는 사람들이/ 그때 무덤도 옮깁니다./ 즉 윤달생을 통해 주검이 오가면/ 탈이 없고 좋습니다."('모르긴 몰라도-곡두23')

 

김민정은 '손 없는' 윤달 생이어서 죽은 이들의 일을 맡아도 탈이 없는 사주라고 하니, 그녀는 천생 무당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무당이라는 존재는 시인의 업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까. 김민정은, 시인이란 예민한 존재여서 무당과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가 이번 시집에 실체가 없는 헛것, 환영을 이르는 '곡두'를 일관되게 부제로 끌어들인 것은 "없는 거지만 있는 거 같고, 있는데 없는 거 같기도 한 미묘함, 이게 시 같기도 하고, 허깨비 같은 걸 붙잡고 사는 사람이 유일하게 시인인 거 같아서"였고, "'곡두'라고 붙여주었을 때 44개로 나눈 시들이 지팡이 짚듯 하나하나 일어날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시집 뒤표지에는 "화두는 곡두/ 그러나 사랑은 나에게 언어를 주었다"고 썼다.

 

"곡두가 제 삶의 화두라면 사랑도 부질없을 수밖에 없는데, 저에게 사랑이 가져다준 언어라는 것은 실체가 있는 거더라구요. 첫 번째 시집에 사랑이란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연애한 남자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안 써봤어요. 이 시집을 쓰면서 옛날 연애했던 남자들에게 다 미안했어요. 다 차였긴 했지만 왜 차였는지도 알아요. 그 사람들에게 어떤 확신도 주지 않았으니 허깨비랑 연애했다고 생각할 거야. 연애한 사람이든, 좋아하는 선후배들이건 똑같이 대했어요. 사랑이 공평할 순 없잖아요? 사랑이 공평해지는 순간은 슬픔인데, 그들에게 그런 불편함을 준 거 같아요. 이번 시집은 우선순위가 모두 같다고 선언한 시집입니다."

 

김민정이 이번 시집 '시인의 말'에 "나는 나의 부록.//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랑이 있을 것이다"고 적은 배경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삶에 대한 태도를 새삼스럽게 많이 배웠다고 했다. 깊은 밤 홀로 방을 뛰쳐나와 시소에 속옷 차림으로 앉아 반대편에 누군가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주길 바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 존재가 자신이 만들어가는 책이라고 했다. 자신은 시인의 정체성보다 편집자 쪽에 더 가까운 존재 같다고, 이번 시집을 펴내면서 새삼 그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김민정 네번째 시집.


시집 표제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서 관능적인 상상력을 발동하는 사람은 정작 그녀의 '해명'을 듣고 나면 쑥스러워질 법도 하다. 너의 거기란, 잘 알지 못하는 좁은 문, 문학의 세계 혹은 저 세상이고, 나의 여기란 잘 알기 때문에 큰 이곳이란 말. 헤어진 뒤보다 헤어지는 중이야말로 과거의 일들을 시시콜콜 더듬는 시기이기 때문에, 현재형이라고 김민정은 말한다. 이미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두 번째 시집 제목을 비롯해 '페니스라는 이름의 페이스' '젖이라는 이름의 좆' 같은 시들에서처럼 그녀의 파격적인 언어 구사가 어떻게 시로 승화되는지 아는 독자들이라면, 이번 시집의 표제에서도 흥미로운 탐구심이 이미 발동했을 터이다. 두 번째 시집에서는 '처음, 느끼기 시작한' 대상이 다름 아닌 '시'였다.

 

"그새 시는 안 쓰고 수만 쓰는 시인들. 시들해지는 시들. 그 시는 안 쓰고 심만 심는 시인들. 시심이 전심일까? 시심은 변심이지. 나 알죠? 내 시 몰라요? 모르는데요. 나를? 내 시를 모른다고? 죽은 시인은 따로 있는 장례식장에서 제가 죽은 것도 아니면서 저를 묻고 제 시를 말하는 좆같고 엿같은 사이들. 그래봤자 잊고 들어봤자 잊힐 사이들. ……작년에 죽은 수경 언니의 전화 목소리나 반복 재생하여 듣는데 왜 다 태어나서 이 고생일까? 뚜뚜 끊어지는 전화…… 그래 미친놈은 어딜 가나 있다는 소리. 미친년은 찾을 것도 없이 나란 소리. ……봄밤도 아닌데 창문 열고 바람아 오라 그러고 보면 저 달이 저 별이 내 목에 걸리고 내 귀에 걸리지. 달랑달랑 액세서리 좋아하니까 버티는 나날이란 얘기지."('시는 안 쓰고 수만 쓰는 시인들-곡두 3')

 

문학동네 시인선을 130권 넘게 만들고 있는데 이 중 1만부 넘게 판매된 '첫 시집'만 10권이 넘는다니,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녀에게 "시는 안 쓰고 수만 쓰거나 심만 심는" 시인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김민정은 "그 수라는 건 저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면서 "이런저런 시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운 거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아가 최하림 시인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간' 얼굴로 떠났듯이, 자신의 궁극 목표도 '말간' 시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철규에게 물어나 봐야지 않을까/ 여하튼 간에 시인들인데/ 다리에 털 많은가 털 없는가/ 그걸 묻는 게 죄라면/ 단박에 나는 수갑 차고 말 누나라지만"('철규의 감자-곡두 25') "왜 엄마는 새벽 2시가 넘어 양파 써느라 울면서 웃는 째진 눈으로 콧물 흘리는 요지경 속에 있나. 이거 봐요 민정 엄마 콧물 닦아요. 전화 너머로 엄마 코에 휴지 대주고 있다는 아빠는 뭐 하냐니까 이 오밤중에 칼을 갈고 있다는 요지경. 엄마 손 말고 양파 속 잘 썰리라고!"('준이의 양파-곡두 26')

 

▲'성공한 편집자' 김민정은 자신은 시인보다 편집자의 정체성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특히 흥미롭게 읽히는 배경에는 시인이 사흘 동안 한 호흡으로 써 내려간 과정도 있지만, 본디 소설 전공이었다는 그녀의 묘사력과 리듬감에 실린 유쾌하고 발칙한 언어들을 빼놓을 수 없다. 김민정은 "이제 시는 천천히 쓰겠다"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절하게 먹고 운동해서 아름답게 근육과 살이 잡힌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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