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생을 기워서 울고, 달빛에 여우 가죽 감추는…

조용호 문학전문 / 기사승인 : 2019-12-02 15:56:57
  • -
  • +
  • 인쇄
제3회 한중시인회의 청송에서 열려
양국 문인 14명 교차 시 낭송, 토론

한국과 중국 시인들이 연례적으로 만나 양국의 시에 대해 토론하는 '제3회 한·중시인회의'가 2일 경북 청송에서 열렸다. 청송 객주문학관이 주최하고 한국문학번역원과 경상북도가 후원하는 이번 회의에는 한국 8명, 중국 6명 등 모두 14명의 문인들이 참여해 '고전시가의 전통과 현대시의 발전 양상'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2일 경북 청송에서 열린 제3회 한·중시인회의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 네번째부터 홍정선 인하대 명예교수, 왕샤오니 시인, 김주영 소설가, 조흥구 청송부군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날 개막식에서 객주문학관 좌장이자 2007년부터 한중 문인 교류에 앞장서 온 소설가 김주영은 "사드 문제 때문에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양국 문화 교류가 상당히 많이 끊긴 가운데에서도 한중 문인들의 교류가 끊이지 않고 어어지는 유일한 모임이 이 회의"라면서 "정치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더라도 문학 하는 우리끼리는 긴밀하게 작품을 교류하고 우의를 다지면서 이 모임이 끝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중국 측 대표로 축사에 나선 왕샤오니 시인은 "북한에도 가 보았고, 어린 시절 이웃에는 조선족, 일본 고아, 백계 러시아 할머니도 같이 살았다"면서 "제 마음 속에는 나라라는 개념은 없고 다만 사람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창춘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사람으로 살면서 행운을 얻어 시를 느낄 수 있었고 시와 함께 살아온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기조발제에 나선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명예교수는 한시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고전시가의 전통과 근대 자유시의 발전 양상'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21세기 이후에 시작 활동을 시작한 한국의 젊은 시인들은 한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한국의 근대자유시가 그 형태를 모색하기 시작하던 20세기 초에 '시'(詩)라는 개념은 '한시'(漢詩)를 가리키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970년대 이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황동규 시인까지 고전적인 한시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라면서 "자유시를 처음 실험한 사람들과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자유시를 발전시킨 시인들에게 한시는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가 이 자리에서 예로 든, 한시에 영향 받은 한국 시들 중에는 잘 알려진 정지용의 '향수'도 있다. 판소리 '적벽가' 중 조조의 '단가행'에 나오는 구절 "월명성희月明星稀/ 오작남비烏鵲南飛(달이 밝으면 별빛이 흐리고/ 까마귀와 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네)"를 정지용이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향수'에 나오는 "하늘에는 성근 별"과 "서리 까마귀 우지짓고 지나가는"이라는 시구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다고 홍 교수는 보았다.

▲3회 한·중시인회의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왕샤오니, 송재학 시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오형엽 고려대 국문과 교수의 사회로 이어진 본회의에서 송재학 시인과 왕샤오니 시인은 서로 상대의 시를 교차 낭송하고 토론을 이어갔다. 송 시인은 남명 조식(1501~1572)의  한시 '題德山溪亭柱'(제덕산계정주)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집필한 '시처럼 북처럼'을 소개했다.
 

"단풍이 찬란할 때도 울지 않는 북이 있다 붉은 북은 쉬이 울지 않는다 울어야 할 때 불콰해지면서 잎을 죄다 떨어뜨리고도 울음을 시작 못하는 북이 있다 늘씬나게 두들겨야 떨리는 막면이라면 북이라 할 수 없다 두들기지 않아도 온몸이 떨리고 두들겨도 울지 않는다면 능히 북이라 할 수 있다 막면이 찢어져도 생을 기워서 울부짖는 북이라면 감히 북이라 떠받을 수 있다 왜 북에게 손발 대신 심금이 필요할까마는" 

'생을 기워서 울부짖는 북'이라는 명구는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기개를 바란 남명의 시에서 나온 셈이다. 송 시인은 "사물의 외양과 본질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고 서로 능동적으로 작용한다"면서 "그러니까 시는 사물 스스로 내뿜는 능동적 기운을 품고 있어야 좋은 시"라고 강조했다. 

"달빛이 다가오면/ 문 앞의 부드러운 카펫 위는 흰여우 가죽 한 장// 잘 감춰져 있어/ 죽은 척해도 너무나 그럴 듯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든, 카펫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밟거나 누르고 지나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보기에는 꼭 온순한 동물 같다/ 코끝이 차가워지고, 그림자는 막 독을 발랐다/ 상처에서 하얀 즙액이 흘러/ 온 산천에 모발이 다시 자란다/ 카펫은 살아 있다"(왕샤오니, '하얀 동물') 

한국 문예지에도 시들이 번역 소개돼 낯설지 않은 왕샤오니 시인의 '하얀 동물'은 송재학 시인이 낭송했다. 송 시인은 "부드러운 달빛이 비친 카펫을 여우의 가죽 한 장으로 묘사한 이 시에서 달빛과 카펫과 여우는 사실 같은 종족"이라며 "연상작용이 부드럽고 급박하지 않다"고 평했다.

그는 "왕샤오니의 다른 시 '자살하는 물고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묘사가 선명해 손에 잡힐 듯이 풍경이 그려진다"면서 "시를 쓸 때 그림이나 사진을 참고하는가" 물었다. 왕샤오니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화가가 될 뻔했다"고 답했고, 이 자리에서 참석한 중국 평론가 베이타는 "왕샤오니의 시는 중국의 큰 변화나 사회적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폭발 순간까지 참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3회 한·중시인회의는 중국 측에서 대체로 젊은 문인들이 참석한 점이 특징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날 회의는 오후에도 진지한 낭송과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번 회의에는 대체로 젊은 중국 시인들이 참석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 셰익스피어연구지회 비서장 베이타, 청도시작가협회 부주석 까오웨이, 중국 아방가르드 시인 멍위안, 주쟝국제시가축제 청년시인상을 받은 두뤼뤼, 소주대학 교수이자 비평가인 주위 등이 그들이다.

한국에서는 박세현 박형준 조은 김행숙 이제니가 참가했다. 중국의 젊은 시인 두뤼뤼는 "그 어떤 사고도 반드시 진실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면서 "성실하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한 글쓰기도 무용할뿐더러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이날 토론을 맺었다.

UPI뉴스 / 청송=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핫이슈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