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I 월드] "이대론 못살아" 반항의 '조커'들 지구촌 흔든다

임혜련 / 기사승인 : 2019-11-22 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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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레바논·칠레·볼리비아 등 전 대륙서 시위 열풍
부패·빈부격차에 분노…'공정한 세상' 한목소리 외쳐
세계 각국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홍콩 시위가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라크, 칠레 등 전 대륙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양극화된 경제와 기득권의 부패 등 부조리한 현실은 시민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 지난 4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민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나서고 있다. [AP 뉴시스]

홍콩·레바논·칠레 등 세계 각지에서 폭발한 분노

칠레와 레바논에서는 단돈 몇십 원에 시위가 시작됐다. 레바논 시위는 정부의 세금 부과로 시작됐다. 레바논 정부는 지난달 17일 레바논에서 많이 쓰는 왓츠앱 등 스마트폰 메신저에 하루 20센트(약 230원)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에 반발해 국민의 4분의 1이 거리로 나왔다. 레바논 시위의 배경에는 불평등과 부패로 수십 년간 누적된 국민의 분노가 있었다.

칠레 역시 지하철 요금 인상에 대한 저항으로 시위가 시작됐다. AFP에 따르면 지난 18일까지 무려 22명이 사망하고 2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의 고무탄에 맞아 시력을 잃은 부상자도 다수다. 시위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도 빚어졌다.

칠레 시위는 정부가 지난달 출퇴근 시간 지하철 요금을 약 50원가량 인상하며 시작됐다. 시위의 밑바탕에는 사회 양극화와 잦은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지하철 요금 인상은 그 도화선이 된 것이다. 학생을 필두로 시작된 시위는 점차 확산했고 수천 명이 연행되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칠레는 남미의 부유국에 속하지만 소득 불평등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요금 인상을 중단했지만, 수년 간 계속된 불평등에 항거하는 칠레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됐다.

칠레뿐 아니라 생활고와 양극화로 인한 시위가 중남미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남미 에콰도르에선 지난 10월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한 공공 지출 삭감의 일환으로 수십 년 된 연료 보조금을 폐지하며 기름값이 폭등했다.

분노한 빈곤층은 연료 보조금 부활을 외치며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의회를 습격했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금지령을 발령했으나 대규모 시위가 며칠간 이어졌고 이후 대통령이 유류 보조금 폐지 계획을 철회하고서야 시위가 끝났다.

볼리비아에서는 경제난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진 가운데 대선 개표 조작 의혹까지 불거지며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1차 투표에서 돌연 집계를 중단한 선거관리기관이 24시간 만에 아무런 설명 없이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10%포인트 이상 앞선 결과를 공개하며 부정 선거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 스페인 대법원이 카탈루냐 지방의 분리독립을 주도했던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지도자들에게 최고 징역 13년의 중형을 선고해 이로 인해 촉발된 시위가 닷새째 이어지는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바르셀로나 시내로 행진하고 있다. [AP 뉴시스]

부패한 정부에 대항해 중동의 반정부 시위도 속출했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의 정치 다툼이 벌어진 가운데 젊은이들이 부패 척결, 공공서비스 제공 등을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이라크 군경은 이에 실탄을 발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집트 전역에서는 군부의 부패를 지적하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는 시위가 발생한 지 3주 만에 약 3000명의 시민을 체포했다.

스페인과 홍콩에서는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해 자치정부를 추진하려는 시위가 진행 중이다. 스페인 대법원은 얼마 전 분리독립을 추진한 자치정부 전 지도부에 중형을 선고했다. 이에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분리 독립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도입'을 계기로 중국으로부터 자치 독립을 요구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지난 6월 시작된 홍콩 시위는 22주 차에 접어들었다. 최근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고 경찰이 실탄을 발포하며 강경 진압에 나서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 지난 4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조커' 차림의 남성들이 경찰의 물대포 속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뉴시스]

시위 아이콘으로 등장한 '조커'

사회 불평등과 부패한 정부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세계 시위 현장 곳곳에는 영화 '조커'이 주인공 분장을 한 참여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레바논, 볼리비아, 이라크 등에서는 화염병을 든 조커가 소셜미디어에 등장하는 등 조커 캐릭터가 시위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는 "우리는 모두 광대(we are all clowns)"라는 문구가 스프레이로 적혔다. 정부가 복면 착용을 금지한 홍콩에서는 참가자들이 저항의 표시로 조커 분장을 했다.

CNN은 '조커'는 사회가 취약한 국민들을 방치하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라고 분석했다. 세계 각국의 시위대가 조커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조커에서 이 같은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부패한 고담시의 모습이 현실과 다르지 않기에 조커에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마틴루터대학의 안드레아스 비어 연구원은 세계 각국의 시위자들이 공통으로 조커 분장을 한 이유에 대해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홍콩이나 레바논에서는 (시민들이) 정부에 '나는 지금 밑바닥에 있지만, 다음 행동에 주의하라'는 경고"라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이라크 수도의 반정부 시위대가 아라르 다리에서 장기 농성 시위를 하고 있다. [AP 뉴시스]


불평등·부패에 분노한 시민들
 


언뜻 보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시위들 사이에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특정한 패턴이 있다고 지적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이 깊어지고, 부패가 보이고, 엘리트 계급들이 부를 독차지하고 젊은이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세계 경제 둔화, 양극화, 젊은 세대의 좌절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시위가 급격하게 가속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을 멈췄으며, 좌절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가 행동하는 것만이 변화를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중동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영국처럼 선거 제도가 정착된 국가에서는 낡은 정치 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포퓰리즘, 민족주의, 반(反)이민 성향 등으로 분출된다고 했다. 반면 국민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국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BBC는 수천 마일이 떨어진 국가들이 비슷한 이유로 시위를 시작했고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발전시킬지 서로에게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표면적인 원인은 다르지만, 불평등과 부패라는 공통된 주제가 시위 배경에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레바논 시위는 자리와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한 정치인들 때문에 발생했으며 이처럼 부패는 불평등 이슈와도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80년대에도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으나, 최근 시위의 양상은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예외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세계의 불안이 '시위'라는 전략으로 표출되는 것 외에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홍콩과 이집트, 칠레, 레바논 시위는 분노한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진행됐으며 통제가 어려워진 만큼 정부의 과잉 진압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미 뉴욕포스트(NP)는 칠레와 아이티 시위 등을 언급하며 최근 시위 양상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립으로 정의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빚어진 한국의 시위도 함께 보도하며 양극화 사회를 세계 각국에서 시위가 발생한 이유로 지목했다.

U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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