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따라가나

강혜영 / 기사승인 : 2019-11-17 08: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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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경제 전문가가 분석한 일본 장기침체 원인과 한국과의 유사성·차이점은?
주진형 "대기업 독과점이 효율성 저해하는 구조 유사…저출산 등 인구구조 문제는 더 심각"
최배근 "주요 산업인 제조업 둔화에 따른 신성장 동력 부재 닮아…북한이 돌파구 될 수 있어"
저성장·저물가 추세가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꺾인 경기를 부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본시장 버블이 터지면서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이 지속한 기간을 일컬어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일본 경제가 반등에 실패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바뀌어 부르게 됐다.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 원인이 무엇이며, 한국 경제도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인가.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지 금융· 경제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뉴시스]

수출→내수 중심 경제로의 구조개혁 실패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을 구조적 측면과 거시적 측면으로 나누어 진단했다. 구조적인 측면을 보면, 일본 경제가 수출 의존적인 체제에서 내수 위주 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구조개혁을 통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해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주 전 대표는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에 대해 "전 세계적인 경제 호황으로 세계 무역이 팽창하던 환경에서 대기업의 해외 수출을 통한 성장을 이루던 일본 경제가 내부 혁신이나 서비스 부문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 전체의 균형 발전으로 가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수출에 의존하던 일본 경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가 순식간에 두 배 가까이 급등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이 충격을 보완하기 위해 일본은 수출주도적인 경제에서 수출과 내수가 균형된 경제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관(官)이 주도한 경제이기 때문에 대기업과 관 사이의 유착관계로 인한 경직성을 지니고 있어 구조조정 및 개혁이 쉽지 않았다고 주 전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수출만 믿고 몰아가던, 지나치게 불균형한 경제가 꺾였을 때 새로운 경기 운용방식을 만들어가지 못했다"면서 "대기업과 관의 담합에 의해서 독과점 체제가 유지됨에 따라 신생기업이 새롭게 생겨나지 못했고,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 대신 기존 대기업의 경영개선 혁신에만 매달린 것이 일본경제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문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경제를 장기침체 수렁으로 끌어들인 자본시장 버블을 야기했다는 얘기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은행의 부실 대출로 인한 금융 경색이 침체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주 전 대표는 "수출이 막히니까 내수를 진작시키려고 내수 산업 대출을 급격하게 증대시키는 과정에서 은행이 적절한 신용 분석에 의해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담보를 맡고 대출했다"면서 "이에 따라 금융 버블이 형성됐고 이후 부동산 버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시장경제에 기반한 구조개혁 또는 시장 기능에 의한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못 한 상황에서 버블이 깨지게 된다"면서 "이 상황에서 지속해서 재정 확대에만 의존하면서 2000년대 초반이 될 때까지 부실 은행을 처리하지 못했고, 은행은 부실 채권 탓에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지면서 신용경색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구조개혁 타이밍을 놓친 상태에서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가 진행되면서 인구변화에 따른 풀링다운효과가 가시화됐고, 투자침체와 이에 따른 경제성장 침체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제조업 둔화 보완할 신산업 육성 실패 탓"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 장기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70년대의 제조업과 금융 충격을 꼽았다.

최 교수는 "일본의 성장률 추세를 보면 60년대까지는 10%대 성장을 지속하다가 70년대 들어오면서 성장률이 갑자기 절반 미만으로 떨어진다"면서 "성장률이 단계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잘못된 정책적 대응이 거품을 만들었고, 자산시장 붕괴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70년대에 성장률이 급감한 이유 중 하나로 제조업 성장 둔화를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 의존이 높은 산업 구조에서 제조업이 둔화하면서 일자리 창출 역할이 줄어든다"며 "제조업의 역할이 줄어들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산업재편이 필요한데 일본은 제조업 육성 방식으로 접근한 결과 신사업 육성에 처참하게 실패한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금융 충격을 꼽았다. 일본은 자본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정부가 은행을 통제한 상태에서 70년대부터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면서 도입된 변동환율제로 엔화 가치가 급등하게 된다.

최 교수는 "이 같은 국면에서 일본 정부가 구조조정보다는 재정을 투자해서 경기 부양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것을 방치하고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금융완화 정책을 폈다는 설명이다. 그는 "돈이 제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육성에 투입된 것이 아니라 금융 시장 자산 시장으로 가면서 거품이 만들어졌고, 성장률이 둔화하는데 거품이 지속할 수 없어서 꺼지게 됨에 따라 90년대부터 사실상 경제성장이 멈췄다"고 부연했다.

구조개혁 타이밍 놓친 한국…제조업 위축 현상도 닮아


주진형 전 대표는 "한국과 일본은 대기업이 모노폴리(생산자 독점·Monopoly)와 플러스 모놉소니(수요자 독점·Monopsony) 형태를 띠면서, 이중구조의 경제인 점에서 유사하다"며 "양국은 대기업의 독과점에 따른 피해가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독과점과 효율적인 지배구조의 결핍이라는 측면에서 일본과 똑같은 숙제를 지닌 것"이라면서 "1인 총수가 돈을 빼먹어서 미운 게 아니라 효과적인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이루지 못함에 따라 생산성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독과점 때문에 신생기업에 의한 혁신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만 기존 업체가 하는 것에만 끌려가는 것 역시 경제 활력을 죽이는 것으로,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은 대기업의 착취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주요 과제인데, 주 전 대표는 "이미 구조개혁의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최배근 교수는 우리 경제하고 비교할 때 1992년부터 제조업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현상이 유사하다고 봤다. 실제로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는 전년 대비 8만1000명 줄어들면서 19개월째 제조업 취업자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일본하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비슷하다"면서 "그 결과 비슷한 패턴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업 재편에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에서는 임기 초기만 해도 제조업을 경기 순환적 침체로 받아들이다가 지난해부터 구조적 위기로 인식하면서 4차 산업 혁명 플랫폼 경제 육성에 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 이해가 부족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 위기를 모면하지 못할 경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의 산업적 측면의 유사성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인구 구조 등은 더 심각…분단 상황서 돌파구 찾을까

한국은 인구구조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주 전 대표는 "일본은 버블이 깨지면서 부동산 시장의 값이 많이 내려온 데 비해 한국은 정부가 부동산 버블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서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며 "일본이 출산률이 1.4%인데 비해 한국은 0.9%로, 1%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노령연금제도가 미비함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는 측면도 위험 요소라고 설명했다. 주 전 대표는 "한국 역시 일본보다 훨씬 더 노령연금제도가 취약하다"면서 "국민연금 제도를 뒤늦게 시작했지만, 퇴직 후 죽을 때까지 꾸준히 돈이 나오는 연금제도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베이비붐 세대가 저축을 늘리면서 전체적으로 소비가 부진해진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의 분단 상황이 긍정적인 요인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배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 등이 일본과 유사하지만, 북한이라는 출구가 있다"면서 "일본 경제는 지금도 더 나빠지고 있지만, 우리는 평화체제를 통한 북한경제 재건 특수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플라자 합의

1985
9 22일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G5)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외환시장에 개입해 미 달러를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해 절하시키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미 달러화가 강세를 지속하면서 화폐가치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한 것이다. 합의 이후 2년간 엔화와 마르크화는 달러화에 대해 각각 65.7% 57% 절상됐다.
 
*브레튼우즈 체제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서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전후의 국제통화질서를 규정하는 협정을 체결했고, 이에 따라 발족한 체제를 브레트우즈 체제라고 한다. 이 협정을 통해 미 달러화를 축으로 한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도'가 도입됐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가 설립됐다. 이후 1971년 주요 선진국 통화제도가 변동환율제도로 바뀌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U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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