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빈곤 가족 집단자살, 국가는 어디 있나

이원영 / 기사승인 : 2019-11-05 14: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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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영 사회에디터
이미 알려졌듯 지난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빚에 시달리며 생활고와 불안 속에서 나날을 버티던 70대 노모와 40대 딸 셋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월세와 수천 만원의 연체료가 밀린 점 등을 감안해 비관 자살로 보고 있다.

올해 7월에도 서울 관악구에서 텅 빈 냉장고를 남긴 채 탈북자 출신 모자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굶어죽은 것'으로 판단했다.

행정당국에서는 서민의 생활고 징후가 포착될 경우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최저 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소위 '복지사각지대'에 해당되었기에 당국에서 파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2014년 송파 3모녀 자살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 당시 밀린 집세와 공과금으로 낸다며 현금 70만원과 함께 "정말 죄송합니다"란 짤막한 유서를 남긴 그 사건은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이처럼 의지할 곳 없는 벼랑끝 삶들이 버려지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적인 소득 불균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최소한 생존권을 보살피지 않는 국가의 책임 방기 탓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명목 소득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극명한 현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소득 상위 20%는 전년 대비 소득이 10.4%가 늘어난 반면 하위층 20%는 무려 17.7%가 줄었다. 없는 사람들은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절벽으로 다가가는 심정을 느끼게 하는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성북구 네 모녀 사망과 관련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인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서 복지사각지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치인들은 5년 전 송파 사건 때도 똑같은 앵무새 발언을 내쏟고 법안 개정 등 민생 '시늉'을 보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공직자들이 정말이지 역지사지 하는 마음으로 빈곤층의 입장에 서서 촘촘한 대책을 마련했다면 지금같은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부분이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에 그 어떤 존립의 이유가 있을까. 생존권을 위협받는 국민을 방치하거나 그런 위험으로 몰아붙이는 국가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면모를 갖춰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이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족이 집단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대한민국은 과연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돈은 떨어졌고, 배는 곯고, 앞날은 보이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생존권만이라도 국가에서 배려했다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노인빈곤율 1위인 나라에 과연 국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겉으로만 화려한 수치에 취해 점점 가난해지는 하위 20%의 서민들을 나몰라라하는 경제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UPI뉴스 / 이원영 사회에디터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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