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엉덩이 무겁게 공부만? 손수 하는 행동이 머리를 깨운다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11-01 15: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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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일상의 일을 반복할 때 자유롭게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 [셔터스톡]

 

간혹 동네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담벼락에 문구가 크게 쓰여 있다.


'담배 연기가 교실로 들어와요!'

학생들이 부탁하는 내용이다. 근처의 회사에서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 나와 담배를 피우곤 한다. 담배 피운 그 자리에 꽁초가 그대로 버려져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골목 모퉁이를 돌면 자그마한 빌라 주택 단지 벽에 쓰여 있는 글씨는 이렇다.

'여기는 임산부와 아기가 살고 있습니다.'

역시 금연을 당부하는 주민들의 호소다. 그런데도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몇 걸음만 걸으면 흡연 가능 장소도 있고 꽁초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습관대로 계속 '호소문'을 무시한다. 어른들의 이런 행동을 보고 교실 안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청소년들은 작은 데서부터 보고 배운다.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한 이들은 아마 사회에 대한 신뢰를 싹틔우기 어렵지 않을까. 젊은 세대일수록 자기 몸을 움직여 이웃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데 둔감해진 듯하다.

그래서인지 학교 내에서도 학생들이 자기 생활공간을 청소하는 일을 기꺼이 하지 않으려 한다. 일과 중 청소 시간이 있고 당번을 정하지만 책임 있게 정성껏 하는 모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학원에 얼른 가야 한다. 방과후 수업에 간다.' 등 여러 이유를 댄다. 교사가 직접 청소하는 날도 많다. 요즘 가정에서도 자녀들에게 가사 일을 잘 분담시키지 않는다. 자녀가 자기 공간을 스스로 치우려는 책임감이 거의 없어졌다. 손수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경험이 드물다. 책상 위에 먹던 음료수병이며 쓰다 만 휴지를 그대로 두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지적인 부분만 강조해 학습 위주로 키우다 보니 자녀들이 대부분 일을 싫어한다. 요즘 아빠들은 폐지와 플라스틱, 음식물쓰레기까지 들고 분리수거를 한 후 출근하곤 한다. 그러나 자녀들은 늘 가방 메고 급히 어디론가 뛰어가기 일쑤다. 부모가 기사처럼 자녀가 나오기를 대기하고 있다가 공부 장소로 데려가는 게 풍속이 되었다. 차 속에서 끼니를 때우게 하는 모습도 적지 않다. 이렇게 길들여져 청소년기에 공부에만 신경을 쓰다 덜컥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당연히 몸을 움직여서 하는 모든 일에 낯설어하고 서툴다. 손수 몸을 움직이는 일을 권하는 직장 상사나 선배들이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을 관찰해보면 일상적인 노동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헐리우드의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언제 떠오르는지 물었더니 대부분 이렇게 답했다.

"운전 중이나 샤워 중에, 욕조에 몸을 담그고 쉬는 중에 또는 면도, 화장, 요리, 정원 가꾸기처럼 손수 하는 모든 활동 중에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산책하거나 수영, 조깅과 같은 운동 중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도 답했다. 즉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일상의 일을 반복할 때 자유롭게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고 한다. 이처럼 몸을 쓰는 일이 정신의 활동을 돕는다.

지금 공부를 강조하는 가정의 자녀들은 어릴 때 손수 작은 일부터 배우기보다 지적인 학습을 우선하도록 양육된다. 어린이들이 머리를 쓰는 활동이 많다 보니 소아비만과 소아 당뇨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손수 하는 일'들이 동식물이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있다. 부모 자식 간에 끈끈한 유대감을 키울 수 있었던 집안일들도 점차 전문가의 영역으로 혹은 기계의 역할로 넘어가고 있다.

부모 세대는 자랄 때 부친을 따라 지붕 위에 올라가 비 새는 공간이 없나 살펴보기도 했다.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조부모와 감을 따던 추억도 있을 법하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물건들을 연신 갖다 대령하는 심부름은 귀찮을 정도였다. 화단 가장자리를 장식할 돌들을 골라 오라면 뒷산에 가야 했다. 내친김에 양철통에 흙까지 파오던 일들이 흔했다.

최근 뒤늦게 학교에서 노작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해서 '텃밭 가꾸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일본의 교육자 사또 마나부가 운영하는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협동해서 작은 건물을 지어보도록 한다. 함께 여러 달 공력을 들여 집을 지으면서 성장하는 교과 공부의 일환이다.

영국에서는 '메이크 유어 퓨쳐'라는 공예품 제작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직접 제작하는 기쁨, 창작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직조를 가르쳐서 디자인을 컴퓨터에 프린팅하여 직조를 만들어내도록 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통나무집을 직접 만들어 거주하는 프로젝트가 국민들에게 인기다. 헝가리의 명품도자기 헤렌드는 백퍼센트 핸드메이드로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나라는 도자기 학교를 운영해 젊은 후예들을 양성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곧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미래에는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비전 아래 각 분야에서 크래프트 교육을 하고 있다.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은 손수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가끔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이 샤워를 너무 오래 한다고 불평한다. 가뜩이나 일과가 바쁜데 목욕탕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자녀의 행동에 애가 탄다고 한다. 그럴 때면 아인슈타인이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전한다.

"샤워에 익숙해져라.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른다면, 당신을 위한 아이디어가 그 노래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매일 아침 글을 쓰기 전 일할 분위기에 젖기 위해 스무 개의 연필을 깎았다고 한다.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이들도 그처럼 손수 몸을 움직이는 일에서 에너지를 얻고 불안감을 해소했다. 지금 자라는 자녀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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