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계란 대신 손팻말, 최루탄도 '멈춤'…홍콩은 지금 '비폭력·평화' 시위 중

임혜련 / 기사승인 : 2019-08-22 17: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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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한 투쟁"…170만명 모이며 활력 찾은 주말 집회
홍콩 시민들, 폭우에도 자리 지키며 질서정연하게 행진
홍콩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 시위대에 '지지와 연대' 보내
中 개입 가능성 낮아…미중무역협상·대만선거 등 현안 얽혀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시위가 11주차로 접어들며 시위 정국이 잠시 안정을 찾았다. 지난 18일 170만 명이 참여했던 대규모 집회가 '비폭력' 기조로 돌아서며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양새다.

▲ 18일(현지시간) 오후 대규모 송환법 반대 집회가 열린 빅토리아 공원에 집회 참가자들이 모였다. [홍콩=임혜련 기자]


앞서 중국이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번 주말 시위가 중국군 개입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었다. 우첸(吳謙)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홍콩 기본법 14조를 근거로 들며 홍콩 정부가 중앙정부에 인민해방군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인민해방국 산하 무장경찰도 홍콩 경계에서 10분 거리인 광둥성 선전(深圳)에 배치되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그러나 충돌 우려를 의식한 듯 홍콩 시위대는 18일로 예고됐던 주말 대규모 집회에서 '비폭력' 방식을 견지했고 경찰 역시 무력 진압에 나서지 않았다. 주말 집회가 평화롭게 마무리되며 중국의 개입 명분도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를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18일(현지시간) 오후 홍콩 정부청사 앞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홍콩=임혜련 기자]

4주 만에 충돌 없는 '평화시위'…구호 외치며 자리 지킨 시민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홍콩 반(反)송환법 시위에서는 수차례 극렬한 대치상황이 반복됐다. 경찰은 최루탄, 물대포 등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으며 고무탄도 등장했다. 시위대 역시 도로를 점거하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에게 물병과 계란을 던지는 등 등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시위에 참여한 여성이 경찰의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실명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그러나 주말을 하루 앞둔 16일부터 이어진 시위에서 이전과 같은 충돌은 찾아볼 수 없다. 16일 저녁 6000여 명의 대학생들은 차터가든에서 개최한 '홍콩을 지지하라, 시민에게 힘을'이라는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영국 유니언 잭과 미국 성조기를 흔들며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했고 비폭력 노선을 견지했다.


17일에는 '범죄인 송환법'을 규탄하는 시위와 친정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이날 오전에는 2만 여명(주최측 추산)의 교사들이 차터가든 공원에 모여 송환법 반대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연대를 표명했다. 참가자들은 '다음 세대의 양심을 지키자'는 손팻말을 들고 센트럴 차터가든에서 정부 청사로 거리행진을 했다. 오후 3시께 카오룽 반도 일대에서도 홍콩 시민 수천 명이 집회를 열었다. 일부 시위대는 집회 후 인근 몽콕 경찰서 건물을 둘러싸는 등 대치했지만 직접적 충돌은 없었다. 시위대는 오후 8시께 자진해산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센트럴 타마르 공원에서 친중단체인 '홍콩수호대연맹(香港守护大联盟)'도 맞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공원부터 센트럴 페리 선착장까지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행진했으며 오성홍기를 흔드는 참가자도 다수 보였다. 행진이 이뤄진 길가에는 '폭력을 반대하고 홍콩을 구한다'는 뜻의 '반폭력 구향항(反暴力 救香港)' 등이 적힌 손팻말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민간인권전선(民間人權陣線·Civil Human Rights Front·이하 민전)이 예고했던 대규모 집회는 18일 오후 2시께 코즈웨이베이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렸다. 그동안 홍콩 시위는 참가자 수가 점점 적어지며 동력을 잃는 듯 보였지만, 이날 170만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참여하며 활력을 되찾았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이므로 국민의 4분의 1이 참여한 셈이다. 이는 지난 6월 200만 명이 참여했던 시위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8일(현지시간)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 [홍콩=임혜련 기자]


시위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1시께부터 빅토리아 공원 인근의 지하철 역인 코즈웨이베이 역, 티엔하우 역 등에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10만 명 정도를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빅토리아 공원은 금세 포화상태가 됐고 공원 바깥 도로까지 시위대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민전 측은 이날 시위에 앞서 '비폭력·평화' 기조를 강조했다. 천쯔제(岑子杰) 민전 간사는 집회에 앞서 "오늘 하루 평화와 이성으로 비폭력 시위를 이루자"고 요구했고 시위대도 이에 협조해 질서정연한 모습을 유지했다. 집회 시작 전 한 중국인 참가자가 국기인 오성홍기를 들고 "하나의 중국"을 외쳐 시위대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참가자들은 연단에 오른 지미 샴 민간인권전선 의장의 구호에 맞춰 '프리 홍콩(free Hong kong)' '자유를 위한 투쟁(fight for freedom)'을 연호했다.

▲ 18일(현지시간) 오후 대규모 송환법 반대 집회가 열린 빅토리아 공원 인근 도로가 '우산 행렬'로 가득찼다. [홍콩=임혜련 기자]


'송환법 완전 철폐' 등 5대 요구사항 수용을 의미하는 '오대소구(五大訴求)'와 '홍콩인은 단념하지 않는다'는 뜻의 '홍콩인 심불사(心不死)'가 적힌 손팻말도 눈에 띄었다. 집회 도중 비가 쏟아졌지만 시민들은 우산을 꺼내 들고 자리를 지켰다. 집회가 끝난 후 우산 행렬은 질서를 지키며 코즈웨이베이, 완차이, 애드머럴티, 센트럴 방향으로 가두행진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위 참가자는 이날 도로가 인파로 가득 차며 도보 30분 거리인 빅토리아 공원에서 완차이 역까지 4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 18일(현지시간) 오후 홍콩 애드머럴티 지역에 있는 정부청사 건물 앞에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임혜련 기자]

에드머럴티의 정부 청사까지 행진한 일부 시위대는 하코트 로드를 봉쇄했다. 이들은 정부청사와 경찰 본부 외벽에 레이저 포인터를 쏘고 바리케이드 앞에서 소리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경찰은 간간이 불법행동을 멈추고 해산하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냈지만 시위대가 자정을 넘어 자진 해산할 때까지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집회에는 3000여 명의 경찰과 100며 명의 폭동 진압 경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의 강제 진압은 없었다.

최루탄 없는 주말 밤에 이어 평일에도 평화 분위기가 지속됐다. 19일 오전으로 예고됐던 출근길 지하철 운행 저지 운동은 취소됐으며 삼수이포 역에서만 'MTR 청소 퍼포먼스(MTR carriage cleaning operation)'가 있었다. 소수의 자원봉사자들은 삼수이포 역에 모여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 가루가 묻은 자동발매기 등을 물티슈로 닦았다.


집회가 일어났던 빅토리아 공원과 인근 번화가는 일상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차량 운행이 중지됐던 일부 도로도 이날 오전 통행을 재개했다. 이후 현재까지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소규모 시위들이 있었지만 경찰과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은 멈췄다는 평가다.

▲ 주말 대규모 집회가 끝난 다음날인 19일(현지시간) 홍콩 최대 쇼핑몰이자 대표적인 관광명소 하버시티(Harbour City) 앞 스타페리 부두 근처에서 홍콩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홍콩=임혜련 기자]

"홍콩 시위 지지한다"…홍콩 시민·관광객 응원의 목소리 ↑

주말 집회가 평화롭게 마무리된 데 대해 홍콩 시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리나(47·여) 씨는 "시위대에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평화 시위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마리나 씨는 "시위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됐다. 어제는 학생과 교사들이 센트럴 역까지 행진했다"며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전했다.


홍콩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리낭탁(53·남) 씨는 "최근 홍콩 시위는 혼란(Chaos) 그 자체며 홍콩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면서도 "그렇지만 정부가 시위대를 너무 강하게 억압해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학생 키프 (22·남) 씨는 "홍콩은 평화를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시위를 적극 응원하면서도 '5대 요구사항'과 관련,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이 중 일부만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민전이 주장하는 5대 요구사항은 △ 경찰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 △ 보통 선거 실시 △ 송환법 완전 철폐 △ 시위대 체포 철회·석방 △ 시위대 폭도 명명 철회 등이다. 그는 "나는 '경찰 조사기구 설치'엔 동의하지만, '시위대 석방' 조항에는 반대한다. 시위대 역시 홍콩법 아래 통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콩 사태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려있는 가운데 홍콩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18일 반(反)송환법 평화 시위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파키스탄에서 온 제임스(19·남) 씨는 "홍콩 시위를 좋게 본다"며 "평화 시위는 다른 방법들보다 좋다. 이번 주말 시위에서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는 "홍콩 사회가 중국이 아닌 영국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편견일지 모르지만 영국이 사회 체계 등 여러 면에서 중국보다 낫다"는 의견도 밝혔다.

이틀 전 이탈리에서 홍콩으로 왔다는 안토니오(38·남) 씨는 "이번 시위엔 아주 좋은 명분(reason)이 있었다"며 "이제는 홍콩과 중국 간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 홍콩 사회를 많이 바꿨지만 두 국가의 '라이프 스타일'은 여전히 다르다"면서 "홍콩 시민들은 100% 중국인도, 100% 홍콩인도 될 수 없다. 중간지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평화 시위 방식을 선호하지만, 내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강경한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관광객 디에고(22·남) 씨는 "홍콩 집회는 정말 대단하다. 유럽에서는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 누구나 말을 하지만 모두가 행동하며 시위에 나서지는 않는다"며 "그 누구도 아닌 시민들이 주도하는 시위 방식이 멋지다"고 찬사했다. 그는 "평화 시위를 지지하지만 홍콩 시위 같은 경우는 시민들을 위한 더 좋은 법, 권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이든 이해한다"며 "나는 홍콩에 살고 있지 않지만 홍콩의 독립을 간절히 바란다”"거듭 강조했다.

일본에서 온 오조라(25·남) 씨는 "홍콩과 중국은 다르다"며 "중국은 홍콩에 간섭하면 안 된다. (시위는) 홍콩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폭력이 아닌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관광객 중 시위를 지지하지 않은 이는 중국에서 온 안젤리나(22·여) 씨뿐이었다. 그는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홍콩 학생들이다. 진실은 잘 모른 채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시위를 하는 게 이상하다(weird)"고 비판했다. 안젤리나 씨는 "홍콩의 진짜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며 "홍콩에서 부동산 업계를 지배하는 '4대 부호(리카싱 홍콩 청쿵그룹 회장 등)' 같은 부자는 극소수고 나머지는 가난한다. 사회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시위를 이용해 이득을 보려한다. 일부 정치인은 시위를 이용해 대중 앞에서 연설하며 지지기반을 얻고 경제계 사람들도 기회를 이용해 이득을 본다"며 "이러한 사람들이 뭉치면서 홍콩 사태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있었던 비폭력·평화 시위에 대해선 "홍콩 시민들은 규칙을 어겼다. 집회는 경찰에게 허가받은 장소, 허가받은 시간 내에서만 해야 한다"며 "시위대는 빅토리아 공원 밖 도로까지 나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일부 강경 시위대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지난주 경찰의 빈백건에 맞아 실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또한 경찰의 소행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젤리나 씨는 "진실은 모르지만 시위대 중 한 명의 실수로 일어난 일을 경찰 책임으로 돌려 이용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홍콩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대규모 집회를 벌인 18일 밤 일부 참가자들은 홍콩 정부청사까지 행진을 한 후 도로를 점거했다. [홍콩=임혜련 기자]

중국군 개입 가능성은 낮아…국면 전환될까

주말 시위가 충돌 없이 일단락되며 당분간 중국군이 투입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국제사회의 비판과 중국의 경제 상황 등 여러 현안이 얽힌 만큼 중국 정부가 홍콩에 쉽게 개입하지는 못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홍콩 시위와 무역 협상을 연계하려는 의도를 보이며 이미 여러 차례 중국에 경고를 보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이 천안문 사태 때처럼 홍콩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 무역협상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고 압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장관도 20일 CNBC에 출연해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대를 무력을 탄압한다면 무역 협상이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내년 1월 11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도 변수다. 홍콩 사태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대만의 거부감이 높아지며 '대만 독립'을 내세우는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이 재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만은 과거에도 중국에 반발해 반중 성향인 민주진보당(민전당) 후보를 뽑아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민해방군을 투입하면 친중국 성향인 중국국민당의 당선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아울러 세계 금융허브의 중심인 홍콩에서 갈등이 악화되면 금융회사가 철수하고 해외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란 비판도 거세다. 홍콩을 발판 삼아 미국을 뛰어넘는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에게 이 역시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 18일(현지시간) 오후 대규모 송환법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폭우를 뚫고 빅토리아 공원 인근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 [ Photo by Thomas Maresca/UPI]

 

이런 가운데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31일 또 한 번 대규모 도심 집회를 예고했다. 이날은 홍콩이 행정장관의 간접선거제를 결정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민전은 31일 시위와 관련해 '비폭력'을 강조했지만, 가두행진에서 경찰과의 충돌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홍콩 시위가 '평화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UPI뉴스 / 홍콩=임혜련 기자 ihr@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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