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기다리던 여름방학, 이번에는 '채움'보다 '비움'을

/ 기사승인 : 2019-07-10 1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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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방의 한 민속자연사박물관에 들러 관람을 마치고 그 옆 건물의 나비 특별전을 보았다. 가족과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동아리 활동으로 시청각관에서 영상을 보는 고등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집 아이들은 다양한 나비전시에 푹 빠져 구경하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포토존 앞에서 단체 인증사진을 찍다가 울어버렸다. 배경의 나비 사진이 너무 실감이 나서 곧 나비 떼가 자기에게 달려들 것으로 착각한듯했다. 어린이의 생동감 넘치는 감성과 호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몇몇 중학생은 음료수 자판기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루함을 이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비움'과 '쉼'이 필요할 때라고 말하는 듯했다. 
 

▲ 자녀의 귀한 휴가시간을 가치있게 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좋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대를 찾은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학교마다 여름방학 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사일정에 따라 숨차게 달리던 일과를 떠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밀린 공부를 보완하거나 남보다 더 뛰어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특강시간표를 짜 놓은 가정도 있다. 그런 경우 방학에 오히려 더 빡빡한 일과에 허덕일 수도 있겠다.


'어정칠월'이라는 말처럼 더운 계절은 우물쭈물하다 지나가기 십상이다. 본격적인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부모는 자녀의 귀한 휴가를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대비하는 게 좋다.


어떤 부모들은 방학만 되면 자녀가 늦잠을 잔다며 갑갑하고 초조해한다. 보통 방학 때 꽤 많은 청소년이 새벽 세 시에 자고 낮 열두 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다른 나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봐도 그 시기의 생체리듬이 그렇다고 한다. '왜 우리 애는 잠이 유독 많을까?' 하고 의문을 갖는 부모에게는 퍽 단순한 답이다. 늦잠 자는 게 비정상이 아니라면 깨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는 게 낫다. 어른의 시각으로 청소년 자녀를 바라보면 염려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웃과 이야기해보면 어느 집이나 사정은 비슷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청소년들이 맘껏 방학을 지내게끔 해보자.


가끔 내게 지금 성인이 된 자녀가 "어떻게 그 순수하고 좋은 10대를 그렇게 보내게 하셨어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이 가끔 너무나 아쉬워요"고 얘기한다. 스스로 방학 생활을 계획하고 자유롭게 지내지 못해 삶에 대한 열정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럴 땐 부모의 조바심 때문에 힘들게 공부를 시킨 듯해서 미안해진다. 그러면서도 "부모 탓만 하니? 먼저 할 일을 하고 놀았으면 얼마든지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라고 대꾸하고 싶어진다. 부모·자식이 행복하려면 결국 서로 대화로 소통하는 관계가 먼저 형성되었어야 했다.


'부모인 내가 옳다'거나 '자녀는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녀교육의 진정한 성공은 자녀가 세상에 지적인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성적에만 가치를 두는 예민한 자녀라면 무슨 일에든 행복하게 도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느 방송국 PD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후배가 제시한 프로그램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신선하고 일을 즐기는 듯해서 물어보았다고 한다.

"넌 학교 다닐 때 주로 뭐 하고 지냈니?"/ "전 맨날 동생과 만화보고 게임을 하며 지냈죠."
"설마, 양아치?"/ "선배님, 무슨 말씀을요?, 저 공부도 웬만큼 했어요. 그런데 만화 보며 낄낄거렸던 그 캐릭터들이 방송하면서 아주 많이 도움이 돼요. 사람은 다양하잖아요. 저마다 기묘한 부분들이 있고요. 사람이 흥미로워요."


그 말에 선배는 무릎을 쳤다고 한다. 이처럼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두는 듯해도 자녀가 경험한 모든 일은 후일 어딘가에 귀히 쓰인다.

자녀의 방학 스케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이번 방학에는 '채움'보다 '비움'을 택해보면 어떨까. 학창 시절 맞이하는 많은 방학 중 한두 번만이라도 실험하듯 단순하게 살아보면 큰 변화와 성장을 겪을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시간을 잘 투자한다.


방학 때는 좋아하는 일, 꼭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단순한 일과가 좋다. 어느 과학 선생님은 고1 때 방학을 도서관에서 지냈다고 한다. 연필이 닳아져서 몽당연필이 되는 즐거움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대체로 공부를 재미있어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다 보니 생활이 단순해졌다'고 말한다.


시인은 연필로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하면서 지우개 가루가 쌓이는 동안 시심이 두터워지고 느낌이 오는 순간을 맞는다. 가수는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악상을 다듬고 작곡한다. 앨범을 만들고 연주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한 자세로 집중하는 힘이 명곡을 만드는 비결이라고 한다. 예술적인 '끼'로만 승부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은 방학 때 너무 빽빽한 일과에 시달린 학생은 개학하고 나서 여유를 부리며 논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반대로 방학을 적절히 즐겁게 보낸 아이들은 개학 후 마음이 안정되어 의욕적으로 생활한다.


방학 동안 진정한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특별 조치는 없을까. 우선 많은 현자는 "아이들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두라. 스스로 길을 찾게 하라"고 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침 일찍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지금 한국의 교육제도는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산업화 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교육도 바뀌어야 하며 학교마다 각기 다른 특성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각 가정에서도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방학에는 특히 더 그렇다.


■ 학교에서 방학 중 레포츠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을 2~3주 시행한다. 좋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맞벌이 가정을 위해 마련된 특별 프로그램들을 알아본다.


■ 어느 나라든 방학에는 대부분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다. 방학 무렵이면 "어디에서 휴가를 보내느냐?", "아이에게 무슨 운동을 시키느냐", "어느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느냐?"라는 말들이 오간다. 부모가 일로 바쁜 경우에는 여러 캠프를 활용해 본다.

■ 1학기에 성적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거나 저조하다면 부모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단순히 수업을 어려워해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마무리하지 못한 결과다. 시간 관리를 도와주고 자기 조절력을 길러야 한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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