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발생 이후 석 달, 아물지 않은 강원의 상처

이민재 / 기사승인 : 2019-07-04 1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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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호언장담은 어디로
"인재가 아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세요"

화마가 강원도 속초·고성 지역을 할퀴고 지난 지 석 달이 지났다. 상처는 겉으로만 아문 것처럼 보였다. 마을에 날리던 잿가루는 사라지고 신록에는 푸르름이 넘쳤다. 하지만 주민들의 타고, 그을린 마음은 그대로였다.


▲ 지난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로 집이 전소된 장천마을 주민이 임시 컨테이너 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하루아침에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지난달 5일에야 속초시 장천마을로 돌아왔다. 7평짜리 임시주택이 마련된 이후였다.

탁주만(70) 씨의 임시주택 문을 열자 냉장고, 세탁기, TV, 장롱 등 세간살이가 보였다. 꼭 있어야 하는 것들만 단출하게 들여놨는데도 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탁 씨와 마을 이장, 그리고 취재진까지 성인 4명이 들어가자 자유롭게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피해를 본 장천마을 16세대가 이런 임시주택에 입주해 있다. 탁 씨는 화재 직후에는 20평 농협 수련원에서 지냈다. 그는 "지내기엔 거기(농협 수련원)가 나았죠. 여긴 비좁으니까"라고 말했다. 불이 나기 전 30평대 오래된 한옥에서 살았다는 그의 공간은 점점 줄어드는 중이다.

장천마을 어두훈(61) 이장은 "(정부의 산불피해 복구대책에) 한마디로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피해 지역을 방문한 정부 관계자 등 정치권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걱정 말라"며 호언장담했지만, 대부분 말뿐이었다고 했다. 이제까지 정부의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향후 지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조차 발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 이장은 현재까지 정부 지원금 1350만 원, 성금으로 받은 3000만 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유통업체 등에서 받은 수백만 원어치의 상품권 정도를 지원받았다. 그러나 정부가 약속했던 주택복구 지원금(1평당 약 500만 원, 30평 기준 약 1억5000만 원)은 아직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어 이장은 "주민들이 제일 걱정하는 건 무엇 하나 확정된 게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식적인 지원 시간표와 로드맵을 발표해달라고 요구했다.


▲ 지난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장천마을 이장 어두훈 씨가 6월 19일 오후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에서 만난 김재수(40) 사무국장 역시 정부의 지원 약속이 단순히 말에 그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대위 측 요구사항은 더도 덜도 말고 피해 본 것만큼만 원상복구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내려와서 모든 피해를 원상복구 해주겠다고 했고, 이낙연 총리도 모든 피해를 복구해주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실행으로 옮겨진 것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별재난지역 선포 이후 완파된 주택에 대해 1300만 원, 반파된 주택에 650만 원, 세입자의 경우 500만 원이 지급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지원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마저도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은 미비했다고 덧붙였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 지원뿐 아니라 성금 교부 및 경찰 조사 결과 발표 지연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5월 7일에 국민 성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나온 게 없다"며 "5월 중순경 발표하기로 했던 경찰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가 6월 19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한국전력 앞 비대위 천막 앞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물론 당국도 할 말은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성금의 경우 정부가 아닌 ‘재해구호협회’라는 민간단체가 지급 규모와 시기를 결정한다"며 "현재 성금 지급에 대해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더불어 경찰 조사의 경우 세부 내용을 알긴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며 "피해 금액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약 500만 원 정도가 지원됐다"고 밝혔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이번 사고가 '인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일부에서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주민들은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 내내 말을 아끼던 어두훈 장천마을 이장은 "경찰 조사로 확정된 건 아니지만 블랙박스 등 모든 정황을 고려하면 한전 전주에서 튄 불꽃이 화재의 원인임을 알 수 있다"며 "인재가 아니라는 일부 주장은 피해주민을 두 번 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도민도 있었다. 화재로 피해를 본 진성폐차장의 김재진(56) 사장은 이번 사고가 인재가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에 "말 같은 말을 하라"며 화를 냈다. 영동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폐차장을 운영하던 그의 삶은 화마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 지난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폐차장 사장 김재진 씨가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그는 이제까지 몇 번의 지원을 받았다. 폐차장 마당에 있던 차량 400대 이상을 지자체가 지원해 치울 수 있었다. 6월 14일엔 지원금 1000만 원을 받았다. 5월 10일엔 신세계 이마트 상품권 100만 원을 받았고 6월 13일에 다시 1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화재로 잃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가 운영해오던 30억여 원, 4000평 규모의 폐차장은 화재로 전소됐다. 운영하던 폐차장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 8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자연스레 수입은 끊겼다. 그는 최근 깊은 잠에 들지 못한 채 자꾸 잠에서 깬다고 했다. 몇 번에 걸친 불면과의 사투를 벌이고 나서야 아침을 맞는다. 화재 발생 석 달여가 지난 지금 강원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UPI뉴스 / 고성=이민재 기자 lmj@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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