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지구의 눈 '블루홀'에 마음 뺏겨

/ 기사승인 : 2019-06-24 09: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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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즈 벨리즈시티, 키코커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바다는 지구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한다. 얼핏 바다는 한없이 넓다는 생각만 들게 할 뿐 별다른 변화는 없는 듯하다. 밤과 낮의 모습이 다르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도 달라진다. 물론 물속에 사는 생물에 따라 색깔이 변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중앙아메리카 벨리즈가 마주하는 카리브해의 ‘그레이트 블루홀(Great Bluehole)’은 가장 신비로운 바다의 표정이 아닐까.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뚫어지라고 응시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던 그 광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 카리브해 ‘그레이트 블루홀’ [셔터스톡]


벨리즈, 영국 식민지에서 1981년 독립…영어 사용


벨리즈(Belize)는 중앙아메리카 유카탄반도 아래 한쪽에 있는 자그마한 나라다. 북쪽으로 멕시코, 서쪽으로 과테말라와 접해 있고, 동쪽 카리브해와 만나는 해안선의 길이는 280km에 이른다. 과테말라와는 오랫동안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벨리즈는 이런 해묵은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거쳐 해당 사안을 국제사법기구에 제소했다. 원인은 스페인이 18세기 말 해적을 퇴치한 대가로 당시 과테말라 영토였던 곳의 벌목권을 영국에 주었기 때문이다. 그 뒤 이곳은 영국령 온두라스를 거쳐 오늘날 벨리즈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과테말라는 이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만, 그 규모가 벨리즈 국토의 거의 절반에 달해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 


벨리즈공화국의 전체 면적은 대략 남한의 4분의 1 정도이며, 인구는 40만 명이 채 되지 않아 중앙아메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다.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쓰고 있지만,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영어를 공용어로 쓰며 영국문화의 영향도 많이 남아 있다. 


한때 수도였던 벨리즈시티는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주요 항구이자 경제·상업·무역의 중심지다. 원래는 마야인이 ‘홀주즈(Holzuz)’라고 불렀으나 1884년 자메이카에서 분리된 영국령 온두라스의 수도가 되었다. 1973년 벨리즈로 바꾸었고 1981년 정식으로 독립할 때 나라 이름이 되었다. 도시의 위치 탓에 허리케인의 피해는 물론 홍수 등 자연재해를 자주 겪었다. 특히 1961년 10월 허리케인 ‘해티’의 습격으로 도시 전체가 심각한 피해를 보자 내륙 쪽에 신도시 벨모판을 건설해 1970년 수도를 옮겼다.


벨리즈시티는 그다지 크지 않아 둘러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해안에 조성된 도시의 특성상 흩어진 여러 구역을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하고 있다. 스윙 브리지는 선착장 주변에 있는데, 부근에 식당이나 가게가 몰려 있어 배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선착장은 키코커섬과 산페드로섬으로 가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키코커까지는 워터 택시라고 부르는 배로 45분 정도 걸린다. 그곳에 도착한 뒤 손님을 내려놓고 다시 산페드로섬까지 간다.

키코커…‘고 슬로(Go Slow)’ 내세운 배낭여행자들 천국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마을 키코커(Caye Caulker). 벨리즈시티에서 북동쪽으로 32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길이가 남북 8km, 동서 1.6km밖에 되지 않는다. 북섬과 남섬으로 나위어 있는데, 북섬은 숲으로 이뤄져 있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주민이 사는 남섬은 한쪽에 비행장도 있어 거주 지역은 얼마 되지 않는다. 30분 정도면 충분히 한 바퀴 돌 수 있다. 


▲ 카리브해의 섬들을 갈라놓고 있는 바다 물길.


배에서 내리면 모래사장이 기다리고 있는 이곳은 배낭여행자의 천국으로 이름나 있다. 그냥 바다를 보고 해변에서 뒹굴뒹굴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곳의 슬로건 ‘고 슬로(Go Slow, 느리게 가자)’에 충실히 따르면 된다. 물론 세상일을 접어두라는 것이지 할 일이 없지는 않다. 바다에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하며 물고기와 즐기거나 스쿠버다이빙에 나서 물 밑 세상을 탐험하면 된다.
눈만 돌리면 들어오는 가없는 바다의 푸른 물빛은 마음마저 물들이며 설렘을 선사하기도 한다. 주민들도 바쁘게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동수단은 자전거와 골프 카트뿐이다.


▲ 비행장에서 경비행기를 타기 전 주의사항을 듣고 있는 탑승객들.


다만 물가는 대체로 비싼 편이어서 식당에서 계속 먹기엔 부담스럽다. 다행히 중국인이 많이 살아서인지 그들이 운영하는 비교적 싼 식당과 가게가 많다고 한다. 다만 현지인은 중국인이 상권을 독점하고 있어 불만이 많다고 한다. 일부 편의점에 붙은 ‘원주민이 운영하는 집’이라는 안내표지를 보면서 갈등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스노클링은 산호초 군락지인 홀챈 해상보호구역(Hol Chan Marine Reserve)에서 할 수 있다. 이곳은 수백 년 전 마야 부족이 뱃길로 쓰기 위해 산호초에 만든 좁은 틈(홀챈)을 일컫는다. 지금도 산호초 내부와 그 너머 바다를 오가는 해양생물을 위한 통로다. 특히 상어나 가오리 등 큰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어 투어에 참가하면 가이드가 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바다 밖으로 올라오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호초에 둘러싸인 검푸른 바다의 황홀한 정경 


이제 이곳을 방문한 가장 중요한 목적, 바로 ‘그레이트 블루홀’을 보러 가야 한다. 키코커에서 배로는 대략 2시간 걸리는데, 수영을 잘해서 블루홀 내부를 탐험하려는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면 쉽사리 나설 수 없다. 게다가 바다에서는 블루홀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자연의 불가사의한 신비를 직접 보기 위해선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오를 수밖에 없다. 


비행기가 이륙해 서서히 하늘을 가르자 카리브해의 드넓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간중간 흩어진 섬들 사이로 바다가 길을 내듯 구역을 이루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하게 펼쳐진 바다뿐이다. 그러다 저 멀리 주변보다 물빛이 짙은 한 공간이 나타난다. 동그란 원이다. 위에서 내려다 봐도 보일 정도로 원형은 뚜렷하다. 외부 테두리가 에메랄드빛 때문인지 내부는 더욱 짙어 검게 보인다. 둥근 주변 테두리는 둔덕처럼 느껴지는데 바로 산호초라고 한다. 이곳은 벨리즈의 국립공원이다. 산호초 보호지구이며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되었다. 그야말로 ‘지구의 눈’이라는 이름처럼 우리를 바라보면서 어서 오라고 부르는 듯하다. 순간 산호초 둔덕에 내려 한 순간 맨발로 걸어보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기도 했지만,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황홀함과 함께 갑자기 두려움이 느껴졌다. 자연의 힘에 압도당한 것일까. 

 

▲ 키코커섬의 해변 모습.


블루홀은 대략 6만 년 전에 해상의 침식작용으로 요즘 도로에 생기는 싱크홀처럼 생겨났다고 하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깊이 124m, 둘레 313m로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 구멍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롱아일랜드 바하마제도의 ‘딘 블루홀’이 크기는 작지만, 이곳보다 더 깊다고 한다. 


이곳의 블루홀은 스쿠버다이버한테는 버킷리스트 1위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텔레비전 방송국이 스쿠버다이빙 도전기를 내보내 알려졌다. 하지만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아 다이버의 무덤이라는 다소 끔찍한 이름도 붙어 있다. 막상 내부로 다이빙했을 때 내려갈 수 있는 깊이는 40m 정도라고 한다. 물속에서도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고. 어떤 사람은 종유석이 늘어진 캄캄한 동굴 속에 있는 듯했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바다거북과 놀고, 상어가 옆으로 지나가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물속 세계를 경험했다고도 한다. 직접 보지 못했으니 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하지만 바다 위에 그려진 듯 자리한 블루홀은 직접 봤으니 느낌은 말할 수 있다. 드넓은 바다를 캔버스 삼아 강렬한 색상의 물감을 뭉쳐서 뿌린 듯 뚜렷이 떠올라 있는 블루홀. 바다의 다양한 모습 중에서도 특히 신비로웠던 그 광경에 마음 한 자락 뺏기지 않을 순 없었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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