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바이오 유령사업'으로 제일모직 가치 3조 부풀렸나

류순열 / 기사승인 : 2019-05-23 1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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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이재용 부회장 위한 합병비율 정당화, 실체 드러나"
삼성 "전혀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 무차별 보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 점점 베일을 벗고 있다. 둘은 별개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승계라는 '빅픽처'의 퍼즐조각으로 서로 연결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2015년 합병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대주주였지만 삼성물산엔 지분이 없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는 누르는 것.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극대화하는 합병 방법은 자명했다.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교환하는 합병비율이 큰 논란을 부른 이유다.

아직까지는 추론이지만 베일에 싸였던 의혹의 윤곽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23일 새로운 사실이 또 하나 밝혀졌다. 삼성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에버랜드 동식물을 이용한 바이오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처럼 꾸며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3조 원 가량 부풀렸다는 것이다.


평가액으로 따지면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콜옵션 부채 누락액(1조8000억 원)보다 더 큰 규모다. 두 사안에서만 제일모직의 가치는 4조8000억 원 가량 과대평가된 셈이다. 2015년 합병 당시 제일모직이 고평가될수록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강화되는 구조였다.


이 같은 사실은 <한겨레>가 단독 입수해 보도한 딜로이트안진(안진)과 삼정KPMG 2015년 5월 작성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검토보고서'에 담겨 있다. 여기엔 각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편에 서서 두 회사의 기업가치를 평가한 뒤 적정 합병비율을 계산한 내용이 담겼다.

 

▲ 삼성물산 사옥. [뉴시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물산을 대리한 안진은 당시 제일모직의 총가치를 21조3000억 원으로 평가하면서 이 중 '바이오사업부'(제일모직바이오)의 영업가치를 2조9000억 원(삼정은 3조 원)으로 산정했다. 사업 시작 첫해인 2016년 매출 839억 원을 올린 뒤 2024년에 4조 원까지 증가한다고 가정했다. 제일모직바이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전혀 별개의 사업이다.


보고서에는 '바이오사업부(신수종사업)'이라는 표현만 등장할 뿐 아무런 설명이 없다. 나중에야 "에버랜드가 보유한 동식물을 이용해 바이오 소재와 헬스케어에 활용한다"는 구상만 존재하는 사업임이 알려졌음에도 당시 제일모직의 주력사업인 건설(1조5000억 원), 패션(1조3000억 원), 식음료(2조5000억 원)보다 높은 가치를 매겼다.


그러나 제일모직바이오 사업은 합병 전 제일모직이나 현 삼성물산의 사업보고서 등 공개된 자료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합병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실체가 없는 '유령사업'인 것이다.

회계 전문가들은 안진과 삼정의 보고서가 삼성 쪽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보고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안진은 보고서에 "대상 회사(제일모직)가 제시한 개략적인 수준의 사업계획과 외부에서 작성한 자료에만 근거해 산정했다. 세부적인 자료의 입수 및 검토나 인터뷰 등 절차는 수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의 정확성이나 신뢰성,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도 했다. 삼성 관련 수사를 담당했던 한 인사는 "삼성 쪽이 안진의 담당 회계사에게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라고 강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합병 과정에서 매우 공신력 있는 자료로 활용됐다. 삼성물산은 그해 6월 이 보고서를 근거로 주주들에게 '안진의 회계 및 세무 실사' 등 상세한 평가작업을 마친 결과 합병에 찬성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합병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국민연금 역시 합병 찬성 결정을 내리는 데 이 보고서가 영향을 끼쳤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015년 6월 중순께 이 보고서를 삼성 쪽에서 전달받은 뒤 합병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이 이뤄진 투자위원회에 제출했다. '합병관련 분석보고서' 실무를 담당한 국민연금 직원은 "회계법인에서 작성한 검토보고서라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 부회장을 위한 합병 비율 정당화를 목적으로 한 안진·삼정 보고서의 경악스러운 실체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제까지 언론보도 등을 통해 밝혀진 안진·삼정 보고서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반영하여 새로운 적정 합병비율을 추정한 결과를 조만간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이날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전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보도되고 있다"면서 이 같이 요청했다.


특히 "이런 추측성 보도가 다수 게재되면서 아직 진실규명의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유죄라는 단정이 확산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관련 임직원과 회사는 물론 투자자와 고객들도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저희는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에 성실히 응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삼성이 최근 수사나 언론 보도와 관련해 보도자료 형식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아닌 삼성전자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을 놓고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다.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이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로 그룹 개념이 사라진 상황이지만 최근 검찰 수사가 총수인 삼성전자 이 부회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대응이 불가피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U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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