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택의 연예비사] '1970년대 가요계의 다이아' 펄 시스터즈

김병윤 / 기사승인 : 2019-05-10 09: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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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계에 이런 듀엣은 없었다…열정적 춤, 빼어난 노래실력
뛰어난 미모와 늘씬한 몸매까지…1970년대 뭇 남성들 혼 빼앗아

펄 시스터즈. 그리운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남성들의 로망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설레었다. 행여 얼굴을 보았다면. 상사병에 걸렸을 수도 있었다. 한국 가요계에 이런 듀엣은 없었다. 1970년대 가요계를 휩쓸었다. 뛰어난 미모였다. 늘씬한 몸매는 뭇 남성들의 혼을 빼앗았다. 노래 실력도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열정적 춤은 압권이었다. 

 

▲ 펄시스터즈 [뉴시스]

펄 시스터즈는 필자와 인연이 깊다. 데뷔시킬 때 깊게 관여를 했다. 펄 시스터즈는 고인이 된 전낙원 씨가 데뷔를 시켰다. 전낙원 씨가 누구인가. 카지노 제왕 아닌가. 워커힐 호텔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개설했다. 외국에도 많은 사업장을 갖고 있었다. 해외에서도 명성이 알려졌다.

 

어느 날 전낙원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깐 보자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늘씬한 여인 2명이 있었다. 자신이 키우고 있는 신인가수라 했다. 첫 눈에 대형 스타의 기질이 보였다. 전낙원 씨가 말했다. 펄 시스터즈를 국제적으로 키워보자고. 대형 가수로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조건을 달았다. 일본의 '핑크 레이디'를 꺾어 보자고. '핑크 레이디'는 1960~70년대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잠시 후 작곡가 신중현 씨가 들어왔다. 본인이 신경 쓰는 가수라 했다. 신중현이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실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다. 이때 나온 곡들이 커피 한 잔, 님아!, 미인 등이었다. '미인'은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신중현에게는 일본 팬클럽 모임도 있었다. 오로지 신중현을 존경해서 만들어졌다. 그 중에는 '곱창전골' 밴드가 있었다. '곱창전골' 밴드는 '미인'이 전 세계 최고의 음악이라 칭송하며 경의를 표했다. '곱창전골' 밴드는 한국에 와서 공연도 했다. 여하튼 전낙원 씨 부탁으로 펄 시스터즈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적었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방송국에서 불이 났다. 몸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었다. 상상 못 할 정도였다. 펄 시스터즈 데뷔는 기획 전낙원. 연출 신중현. 홍보 정홍택 모습이 됐다.

 

펄 시스터즈의 이런 인기는 본인들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전낙원 씨는 펄 시스터즈의 출연을 자제시켰다. 그리고는 라스베이거스로 진출시켰다. 펄 시스터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동양의 요정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핑크레이디는 설 무대가 없어졌다. 시쳇말로 완전 죽었다. 전낙원 씨의 목표가 이뤄졌다.


펄 시스터즈의 인기를 확인한 전낙원 씨는 매니저를 붙여줬다. 본인의 사업이 워낙 바빠서.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매니저와 펄 시스터즈 사이에 불화가 깊어졌다. 펄 시스터즈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자유롭고 싶어 했다. 매니저는 철저하게 관리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펄 시스터즈와 신중현의 사이도 벌어졌다. 신중현은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다. 음악을 하는 데 조금의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장인정신이 대단한 작곡가다. 신중현의 분노가 매우 컸다. 좌절감을 느꼈다. 펄 시스터즈에 대한 기대와 계획이 있었다. 신중현이 곡을 안 줬다. 사실 펄 시스터즈는 노래를 더 배워야 했다. 춤도 더 연습해야 했다. 뮤지컬 배우로 대성할 소질이 있었다. 

 
펄 시스터즈는 가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노력해야 할 때 자유스러움을 선택했다. 땀 흘려야 할 때 편안함을 찾았다. 펄 시스터즈는 아주 좋은 자질을 갖고 있었다. 훌륭한 원석이었다. 다이아몬드를 깎는 도중에 이탈했다. 다이아몬드는 전문가의 손이 닿아야 빛을 발한다. 그래야만 플로리스 다이아몬드(흠이 없는 다이아몬드)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펄 시스터즈는 그런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했다. 부와 물거품 같은 인기에 겸손한 자세를 잃어버렸다. 한국은 지하자원이 없다. 대신 인재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는 민족이다. 근면성도 따를 민족이 없다. 펄 시스터즈는 모든 재능이 뛰어났다. 여기까지는 한민족이었다. 근면성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마디로 펄 시스터즈는 아깝다. 펄 시스터즈는 언니 배인순의 결혼과 함께 해체됐다. 뛰어난 음악성을 잠깐만 보여준 채. 

 
필자는 펄 시스터즈의 해체를 보며 평생 아쉬움으로 남는 일을 되새겼다. 현역 시절 필자는 리 클리닉(Re-Clinic) 센터를 만들었다. 기존 연예인들 인성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본격적 활동을 앞두고 필자가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무산됐다. 지금도 후회스럽다. 그때 중단 없이 센터가 운영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최근 봇물처럼 터지는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짙게 깔린다. 연예인은 인기만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인기에 보답해야 되는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 옛날 선배들은 배고픔을 참아가며 오늘의 한류를 만들어 냈다. 쌀이 없어 끼니를 걸렀다. 돈이 없어 구멍 뚫린 지붕에서 빗물을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젊은 연예인 후배들에게 부탁한다. 이런 선배들의 눈물 어린 고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정홍택의 연에비사는 이번 호로 일단 막을 내린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아직도 못다 한 얘기를 정겹게 들려줄 것이다.

 

UPI뉴스 / 정리=김병윤 기자 bykim7161@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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