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국회'로 시작해 '동물국회'로 끝난 두 얼굴의 '헐크국회'

김광호 / 기사승인 : 2019-05-07 09: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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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 놓고 극한 대결…'동물국회' 회귀
몸싸움·회의장 점거, 의원 감금까지…국회의장, 33년만에 경호권 발동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식물국회'로 변모…법안가결률 16%→11%
박지원 "'동물국회' 된 것 대단히 잘못된 일…선진화법 또한 개선해야"

최근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20대 국회가 폭력 사태로 얼룩지면서 몸살을 앓았다. 이로 인해 지난 2012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변모했던 국회가 다시 '동물국회'로 돌아온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난달 26일 새벽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관련 법안을 제출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자유한국당이 강하게 충돌하며 '동물국회'가 시작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다가 한국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였고, 양당 보좌진·당직자들이 뒤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잠긴 문을 부수기 위해 일명 '빠루(노루발못뽑이)'와 해머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한국당이 의안과뿐만 아니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실도 점거하면서 국회 곳곳에서 밤새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다.


'동물국회'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도입됐던 국회 선진화법으로도 이번 막장 폭력 사태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막말과 고성, 몸싸움이 난무했던 과거로 시계를 되돌린 모양새다. 이에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전 국회의 폭력 사태를 돌아보고, 선진화법 도입 과정과 그 이후 국회의 변화를 재조명해봤다.

▲ 지난달 29일 저녁 국회 사개특위 회의가 예정된 220호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로 변경돼 열리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유승민, 오신환 의원 등이 급히 달려와 회의장으로 입장하려 하며 국회 경위들과 충돌하고 있다. [뉴시스]


공중부양부터 최루탄 사건까지…'동물국회' 막으려 국회 선진화법 제정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되기 전인 제18대 국회(2008년 6월∼2012년 5월)는 '동물국회'로 악명을 떨쳤던 시기다.


국회 의사당을 전쟁터로 만든 대표적 사건은 2008년 12월 18일에 터졌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문을 잠근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상정하려 하자 통합민주당(민주당 전신)은 쇠망치와 빠루, 전기톱 등을 가져와 회의장 문을 부수고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


▲ 2009년 1월 5일 오전 국회 사무총장실을 들어선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앞서 경위들이 최고위원회의를 훼방하고 플래카드를 제거한 것에 대해 항의하면서 책상을 오르고 있다. [뉴시스]


이번 한국당의 국회 회의실 점거와 유사한 사례로는 2009년 강기갑 전 의원의 일명 '공중부양 사건'이 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민주노동당 대표였던 강기갑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실에 찾아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책상 위에 올라가 뛰는 장면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찍혀 유명세를 탔다.


▲ 한나라당이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 단독처리를 시도하는 가운데 2010년 12월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주먹다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급기야 2010년 12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유혈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번에도 한나라당이 4대강 사업비가 포함된 6조원 규모의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려고 하면서 민주당과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은 강기정 민주당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달려가 펀치를 날렸고, 느닷없이 얻어맞은 강 의원은 입술이 터져 피를 흘려야 했다.


▲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한 2011년 11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정의화 국회부의장에게 최루가루를 뿌리자 경위들이 정 부의장을 보호하고 있다. 아래는 최루탄을 뿌린 김선동 민노당 의원. [뉴시스]


2011년에는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반대한다며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해 11월 22일 한나라당 의원 150명 가량이 오후 3시쯤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해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 처리하려고 하자,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준비해간 캔 모양의 최루탄을 터트리면서 '펑' 소리와 함께 최루가루가 국회 본회의장에 퍼졌다.


'최루탄 사건'을 계기로 정치문화 개선이 의제가 돼 국회 선진화법이 처리됐다. 이 법안은 당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공동 대표발의해 만들어진 국회법의 일부 개정안을 말한다.


국회법 148조에 해당하는 '의장석 점거 금지', '회의장 출입 방해 금지'가 이때 생겼으며, 국회법 165조와 166조에서는 국회에서 폭력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위협 또는 재물 손괴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안 개정안은 2012년 5월 2일 본회의 안건에 올랐고, 18대 국회의원 192명 참석해 127명 찬성, 찬성률 66.1%로 통과됐다.


국회 선진화법 통과 당시 국회법의 폭력 행위만을 개정한 것은 아니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제한되고 '필리버스터'라고 불리는 무제한 토론에 관한 조항 역시 신설됐다.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기 전 국회법에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한조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직권상정'이라는 권한만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직권상정 처리된 법안은 본회의에서 과반수만 찬성하면 법안 개정 발의가 완료됐다.


국회의장의 권한은 실로 막강해 16, 17, 18대 국회를 거치면서 직권상정의 수는 각각 6건, 29건, 99건으로 증가했다. 이런 문제점을 공감해 2012년 당시 여야 원내대표가 통과시킨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으로 천재지변, 전시 등 국가비상사태, 원내 교섭단체 간 합의라는 구체적 제한을 설정했다.

선진화법, 폭력 줄였지만 '식물국회' 원인이란 비판도…법안가결율 급락


의결정족수를 과반에서 60%로 올린 선진화법 덕분인지 폭력으로 얼룩졌던 '동물국회'가 19대 국회부터는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진화법 이후 국회 폭력 사태는 줄었으나 법안가결률이 떨어지는 이른바 '식물국회' 현상이 나타났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법안가결률은 18대 국회 16.9%였으나 19대 국회 들어 15.7%로 떨어졌고, 20대 국회에선 11%대까지 급락했다. 또한 법안이 발의된 뒤 처리되기까지 소요 기간도 한 달가량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탓에 '끼워팔기' 방식도 횡행했다. 이런 극도의 비효율과 낮은 생산성이 문제가 되면서 "차라리 동물국회가 낫다"는 비판의 목소리마저 터져 나왔다.


생산성은 극도로 낮고 파행은 잦은 '식물국회' 논란 속에 여야 의원들이 공동으로 지난 2월 20일 '국회 선진화법 개정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여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국회 파행이 길어지고 쟁점법안 의결이 어려워져 입법지연이 심화되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사라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지만, 국회 파행과 입법 지연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 국회선진화법 재정비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국회선진화법 통과 전인 18대 국회 때 16.9%에 달했던 법안 가결률이 19대 국회 15.7%, 20대 국회 11.3%로 떨어졌고, 법안이 발의된 뒤 처리되기까지 소요된 기간도 18대 국회 약 486일에서 19대 국회 약 517일로 한 달가량 길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예산안 등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 본회의 자동부의 등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예산안의 처리 기한을 준수하지 못하는 등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향후 예산안 처리 과정 지연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쟁점사항 외에 합의된 부분을 먼저 통과시키고 쟁점을 합의해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법안 평균 처리기간이 길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신속처리 기한을 줄이는 등 입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방안도 요구된다"고 부연했다.

▲ 선거제 개편안과 사법제도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국회 관계자들이 패스트트랙 지정안건 법안제출을 위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빠루·망치 재등장하며 '동물국회' 재연…국민들 분노 들끓어


'식물국회' 지적(?)을 의식한 탓일까? 여야는 다시 국회를 점거하고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예전과 상황이 바뀐 것은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여당이었고 민주당이 야당이었다는 것 정도다. 당시 민주당은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막고자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지만, 지금 한국당은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안건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 점거, 감금 등을 불사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간의 처지만 바뀌었을 뿐 물리적 충돌이나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거의 똑같다.


여야 4당이 처음으로 패스트트랙 지정을 시도한 지난 4월 25일부터 처리에 성공한 29일까지 닷새간 여야는 극한 대치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고성과 막말, 거친 몸싸움이 오갔고, 국회 선진화법은 무용지물이 됐다.


▲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달 25일 국회 사개특위 위원인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의 사보임을 허가한 가운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사개특위 위원으로 새로 보임된 채이배 의원실을 점거하자 채 의원이 창문을 통해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25일 바른미래당이 국회 사개특위 간사였던 오신환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하자 채 의원을 6시간 동안이나 감금했다. 채 의원은 결국 경찰과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는 등 외신의 해외토픽 감이 되었다. 앞서 야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에 집단 난입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문희상 국회의장은 급기야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26일 새벽에는 급기야 빠루와 장도리, 망치 등이 대거 등장했다. 국회 경위들은 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점거된 의안과 문을 열기 위해 빠루를 사용했고, 이 과정에서 국회의장은 33년 만에 의장 경호권을 발동했다. 새벽 내내 이어진 대치는 26일 오전 5시가 가까워져서야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한국당 의원들은 각 회의실을 철통방어하는 데 총력전을 펼쳤다.


이후 여야는 물리적 충돌은 자제한 가운데, 서로의 동태를 살폈다. 결국 회의실 앞을 점거하고 있던 한국당 의원들을 피하기로 한 민주당은 29일 자정에 임박해서야 사개특위 회의실을 바꾼 뒤 개회를 선언해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법,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등 4가지 법안을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했다. 이어 30일 새벽 정개특위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패스트트랙으로 태우면서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 절차를 시작하게 됐다.


▲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뉴시스]


하지만 국회 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폭력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여야의 충돌을 곁에서 지켜본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의 주도하에 국회 선진화법이 제정된 이후 식물국회가 됐었지만 최근 국회에서 볼썽사나운 몸싸움이 재연됐다"면서 "국회 선진화법을 무시하고 동물국회가 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며, 법에 의거해서 상응한 사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번에 국회 사무처를 비롯해 민주당, 한국당, 정의당 등에서 고소·고발 조치를 하면서 검찰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며 "민주당이나 정의당의 경우 소송취하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될 때 내가 제일 반대했던 사람"이라면서 "선진화법 이후 식물국회가 된 것도 또한 문제다. 선진화법을 개선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며 선진화법 문제도 꼬집었다. 또한 박 의원은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장외투쟁에 나선 한국당에 대해 "장외투쟁은 결코 국민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한다"면서 "결국 한국당은 한 달 정도 돌아다니다가 제풀에 꺾여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문희상 의장이 패스스트랙 법안 접수를 위해 국회 의안과에 경호권을 발동한 가운데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비롯한 당직자들과 국회 직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말 국회에서 여야가 벌인 '1차전'은 감금, 점거, 폭행 등의 치열한 혈투 끝에 패스트트랙 지정에 성공한 범여권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에 절치부심한 한국당이 국회 일정 거부와 의원들 집단 삭발, 대규모 장외투쟁 등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2차전'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당 정당 해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한 인원이 6일 179만명, 민주당 해산 청원도 31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비춰볼 때, 여야의 '막장 승부'가 계속될수록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더 들끓게 될 전망이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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