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기획] 비소츠키, 빅토르 초이, 엘비스

/ 기사승인 : 2019-02-26 09:40:44
  • -
  • +
  • 인쇄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년간 나홀로 SUV 차량을 타고 무려 46개국 7만9365km에 이르도록 종횡무진 대륙을 달린 사나이가 있다. 장용우. ‘왕초’ ‘호텔리어’ ‘행복합니다’ 등 수십편의 MBC, SBS 드라마와 JTBC ‘D데이’ 등 대작 드라마를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이번엔 평생 꿈꾸어 오던 드라마형 로드다큐를 만들었다. UPI뉴스 온ㆍ오프라인 채널에 ‘장 감독의 대륙횡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럽과 아시아 대륙 곳곳의 현장에다 온몸을 던져 이를 담은 영상과 기사. 그 장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감동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편집자] 

 

‘러시아의 밥 딜런’인 음유 시인 비소츠키


▲ 예카테린부르크 전경. 이곳에는 러시아 최고의 대중예술가였던 비소츠키의 이름을 딴 빌딩이 있다. 우측의 가장 높은 빌딩이 비소츠키 빌딩이다. [셔터스톡]


엘비스 프레슬리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그의 집 그레이스랜드에 잠들어 있다. 로큰롤의 황제를 추모하고 알현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그 중에는 놀랍게도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그가 사망한 8월 16일 밤에는 무덤까지 촛불행진을 하는데, 부모님 상을 당한 듯 펑펑 우는 틴에이저 소녀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엘비스는 여전히 나의 마음에 살아 있어요. 그는 나의 영원한 연인이고 영웅인거죠. 그가 너무 보고 싶어요. 흑흑.” 


니체의 말대로라면 신은 죽었지만 우상은 죽지 않는다. 입장료는 저택을 둘러보는 데 기본이 41달러, VIP 코스는 99달러인데 자가용 비행기 내부까지 보려면 5달러를 더 내야 하고 소규모 그룹을 위한 최고 VIP 코스는 1인당 174달러나 한다. 죽어서도 여전히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그는 1977년 마흔둘의 나이에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사망 원인은 약물 중독이 의심되었지만 금지 약물은 검출되지 않았고, 160kg에 이르는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심장병이 주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혹자는 도너츠를 너무 많이 먹은 게 문제라고 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80년 또 다른 가수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그 역시 마흔둘의 나이다. 그는 평시에 엄청 술을 즐겼다. 러시아인은 보드카를 마셔야 하는 이유가 일요일에 교회에 못 가는 이유보다 백배는 많은 것 같다. 알콜중독과 줄담배가 그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했다. 싱어송 라이터이자 배우라는 점에서 엘비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가 불렀던 노래는 달랐다. 엘비스가 인생의 밝고 화려한 양지와 신나는 청춘, 불타는 사랑을 노래했다면 후자는 삶의 어둡고 고통스런 음지와 체제 비판, 자유에 대한 열망을 질러대었다. 엘비스는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단 아래 위 하얀 무대복을 입고 현란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다리를 떨었지만 후자는 낡은 통기타를 메고 마이크 앞에 서서 얼굴을 찡그리며 노래를 불렀다. 엘비스의 목소리가 달콤했다면 후자는 가슴 저 안에 부글거리는 분노가 거칠게 소용돌이 쳐댔다. 그런 저항가요를 700곡 넘게 본인이 직접 만들어 불렀다. 평생 2000회가 넘는 콘서트나 공연을 했고 28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영화 ‘백야’ 통해 그의 음악 처음 들어


▲ 비소츠키 기념우표(위), 빅토르 초이 기념우표


블라디미르 세묘노비치 비소츠키는 여전히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중 예술가이다. 수많은 러시아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수이다. 스스로 가수보다는 시인을 자처했고, 음유시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미국의 밥 딜런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의 시와 노래가 해금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이다. 러시아에서 그의 존재는 언더그라운드 였으니 우리에게는 정말 '듣보잡'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냉전시대를 살아오면서 세상의 반쪽만 알고 있었다. 적과 우군으로 나뉜 세상에서 적들에 관한 모든 것은 나쁘고 금기였다. 비소츠키는 적진에 속했기 때문에 관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월북예술가들과 같은 취급을 받은 셈이다.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1986년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백야’에서이다. 설정이 매우 황당한 영화다. 소비에트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남자 댄서(극중 이름 니콜라이 로첸코) 가 탄 비행기가 ‘하필’ 러시아 상공에서 고장이 나서 불시착하게 되었다. 그는 신분이 드러날 경우 끌려갈까봐 숨어 지냈다. KGB에 쫓기다가 어찌어찌해서 피신하게 된 아파트에는 ‘하필’ 미국의 흑인 탭댄서가 살고 있었다.(그 흑인의 부인 역할을 한 배우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이사벨라 롯셀리니) 그 둘이 댄스 배틀을 펼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 중 하나. 망명 댄서는 예전 애인을 찾아가 그녀의 앞에서 현대무용과 발레를 융합한 댄스를 추는데 이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때 배경에 깔리는 노래가 비소츠키의 ‘Horses 야생마’이다. 이 역시 충격적이었다. 가사 내용은 전혀 몰랐지만 절규하듯 거칠고 힘있는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노래는 tvN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에서도 사용되었다. 주인공 로첸코를 연기한 바리시니코프는 실제로 1974년 캐나다 순회공연 중 도주한 망명 발레리나이다. 이후 미국에 정착해서 팝스타가 되어 ‘섹스 앤 시티’에도 출연했고 사업가로도 성공했다. 탭댄서 역할은 그레고리 하인즈가 직접 출연했었다.  

 

54층짜리 그의 이름 딴 빌딩도 있어


▲ 비소츠키의 세번째 아내(왼쪽부터)와 비소츠키의 동상. 그의 팬인 엘라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마다 7월 24일이 되면 비소츠키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러시아 곳곳에서 열린다. 그의 동상이나 기념비도 만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 그리고 예카테린부르크에 가면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는데 모두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다. 예카테린부르크에는 아예 그의 이름을 딴 빌딩이 있다. 비소츠키 빌딩 또는 비소츠키 호텔은 모스크바 밖에 건설된 빌딩으로서는 가장 높은 54층짜리 마천루이다. 전망대에 올라가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350루블, 약 6000원)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비소츠키 박물관은 공짜다.(모스크바에 있는 비소츠키 박물관은 300루블) 여전히 엘비스에 비해 돈을 못벌고 있다.

 

빌딩의 뒷골목에는 그의 세번째 아내인 블라디 마리나와 함께 기타를 치고 있는 그의 동상이 있다. 좀 자세히 보면 기타줄을 감는 너트가 7개로 되어 있다. 보통의 기타는 6현이다. 조작가가 무식해서 실수한 게 아니다. 비소츠키는 러시아의 7현기타를 즐겨 연주했고 이는 그것을 제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는 생전에 단 한장의 앨범도 내지 못했다. 그의 수많은 곡들은 모두 불법복제(당시에는 불법이라는 개념도 없었겠지만) 카세트 테이프로 소비에트를 비롯한 동구권에 퍼져나갔다. 그가 죽은 1980년 7월 24일은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일이기도 해서 당국에서는 그의 죽음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지만. 슬픔을 참지 못한 라디오 진행자 한명이 소식을 전했고 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수많은 추모객이 장례식장을 찾았다고 한다. 미국의 멤피스처럼 돈을 버는 지역에 안장되지는 않았고 모스크바의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젊어서 세상을 뜬 또 다른 러시아 가수가 있다. 러시아 현대 록의 선구자이고 그 역시 독재체제에서 신음하던 젊은 영혼들에게 혜성처럼 나타난 우상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의 새 아침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했다. 검고 긴 머리에 잘 생긴 동양인 얼굴의 그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고 외치며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빅토르 초이는 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되었던 그의 할아버지 최승준 옹의 아들, 즉 빅토르의 아버지가 우크라이나계 러시아 여성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의 노래는 자유를 갈구하는 러시아 청년들 사이에 삽 시간에 퍼졌지만 비소츠키와 마찬가지로 전부 불법 복제한 카세트로 음악을 듣는 바람에 돈은 거의 벌지 못해서 평생 보일러실에서 살았다고 한다. 평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인생이었다.

 

그는 199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가 28살일 때다.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고려인이기에 특별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모스크바에 가면 그를 추모하는 장소 ‘초이의 벽’이 있다. 추모의 벽은 그의 사진과 무질서한 낙서로 자유분방했던 젊은 뮤지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윤도현이 그의 노래를 번안해서 불렀지만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한 것 같다. 비교해서 들어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의 이야기는 언뜻 강렬하고 드라마틱해 보여서 화화의 소재로 구미가 당기는 듯 하다. 실제로 한때 선배 감독이 화제작을 준비했었는데 주인공으로 신성우를 염두에 두었다 한다. 나 역시 미니시리즈로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빅토르 최 역할에 는 최민수가 최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외모도 그렇지만 내재된 저항의 에너지가 더 닮아보였다. 최민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동의도 얻었었다. 그는 실제로 웬만한 락커 못지 않은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기타 연주도 가능했다. 드라마 제작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는 시베리아 끝자락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했다는 것은 이제 시베리아를 거의 다 빠져나왔다는 걸 의미한다. 인구 140만명의 러시아 네번째 큰 도시는 우랄의 동쪽 기슭에 있으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서쪽으로 모스코브스키 고속도로를 따라 17km쯤 가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나타내는 오벨리스크가 서있다. 고속도록 E22에서 북서쪽으로 빠져나가야 하고, 도로변의 휴식장소에 있어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56.86793N, 60.045086E) 검은 인조 대리석 바탕에 흰색 러시아어로 ‘ЕВРОПА, АЗИЯ 유럽, 아시아’라고 적혀 있는 게 전부 인데 이스탄불처럼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확연히 갈리는 것은 아니어서 무슨 근거로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었는지는 애매하다.

 

시베리아의 끝, 유럽의 시작을 알리는 경계에서 잠시 멈춘다. 여기서부터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까지는 겨우 1800km 밖에 남지 않았다.

 

UPI뉴스 / 글·사진 장용우 감독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핫이슈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