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미술관을 찾아 다시 부암동으로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2-03 1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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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암동(2)
▲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 [문재원 기자]

 

다시, 부암동을 찾았다. 


지난번 부암동 산책에선 윤동주 문학관과 박노해 사진전을 둘러봤다. 두 군데 들렀을 뿐인데 네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할 수 없이 환기미술관 가는 걸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번엔 환기미술관을 먼저 들렀다가 석파정 서울미술관까지 걷는 코스를 잡았다. 


윤동주 문학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창의문 앞 삼거리까지 오르막길을 걸었다. 등에 내리쬐는 햇살은 따스한데 앞에서 부는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클럽에스프레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10m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동양방앗간 앞 자하문로40길을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 백석동길을 따라가면 특색있는 카페들이 많다. 

'소소한 풍경'을 지나자 바로 환기미술관이 보였다. 아트숍에서 티켓을 끊고 간단한 전시안내를 받았다. 본관에서는 '환기미술관 하이라이트', 별관에서는 아트판화 특별전 '판화의 묘미', '수향산방 특별기획전'으로 '해와 달과 별들의 얘기'가 열리고 있었다. 먼저 아트숍 2층에서 열리고 있는 '판화의 묘미'부터 관람했다. 
 

▲ 환기미술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들. [문재원 기자]

환기미술관은 처음이지만 전시된 그림들은 낯익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 많은 탓이다. 홍콩 경매시장에서 우리나라 화가 그림 중 가장 높은 가격에 낙찰되었다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도 있다. 얼마 전 송혜교, 박보검이 주인공인 드라마 '남자친구'의 한 장면에도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배경이었다. 푸른 물감으로 점을 찍은 면을 만들고, 푸른 면들이 모여 하나의 큰 무늬를 만든 그림 앞에 한참 서 있었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캔버스에 유채, 236cmX172cm, 1970 [김환기 作]

'환기미술관 하이라이트' 전시를 하는 본관에 들어서자 '환기재단 40주년 특별전'이라는 글씨 옆에 김환기와 김향안이 함께 찍은 사진이 보였다. 부인 김향안이 김환기의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파리 거리를 걷는 모습이다. 1957년 파리.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한 환기미술관은 그야말로 김환기의 그림을 위해 만들어진 듯 보였다. 흰 벽과 높은 천장, 자연 채광과 인공 조명이 적절히 어울린 실내, 인왕산의 먼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창, 둥근 중정으로 모아진 공간 배치 등은 관람객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곳에서는 더 많은 그림 속 점들을 만났다. 그림을 채운 색도 푸른색이 빨강이나 노랑으로, 초록으로 변주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천 위에서 번진 푸른 점을 자세히 보고, 뒤로 물러나 점들이 만든 큰 무늬를 보았다. 그 무늬가 만든 이야기를 엮어보려 했다. 화가가 사용한 푸른색은 자연스럽게 김환기의 고향 안좌도에서 바라보던 바다와 연결되었다.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내 고향이다. 겨울이면 소리 없이 함박눈이 쌓이고 여름이면 한 번씩 계절풍이 지나는 그런 섬인데 장광(長廣)이 비슷해서 끝에서 끝까지 하룻길이다.
 

친구들이 "자네 고향 섬이 얼만큼 크냐"고 물으면 "우리 섬에선 축구 놀음은 못한다"고 대답한다.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김환기, 「고향의 봄」 중에서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란 대목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본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조각보처럼 이어진 푸른 유리들을 만났다. 명도가 다른 반투명 유리들이 빛을 받아 선명했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건축가가 한번 더 김환기의 그림을 새겨주는 것 같았다.
 

▲ 김환기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수향사방 특별 기획전'. [문재원 기자]

'수향산방 특별기획전'은 1963년 뉴욕으로 떠난 김환기가 한국의 자연과 동양적 정서를 스케치북에 담아 부인 김향안에게 보낸 표지와 뉴욕 시기 작가의 드로잉북을 전시하고 있었다. '수향산방'은 김환기 아호 '수화(樹話)'와 김향안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것이란다. 작품 이면에 녹아있는 김환기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창의문로10길을 따라내려와 석파정 서울미술관으로 향했다. 바람 탓인지 산책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식당과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보였다. 서울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카페를 찾아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서울미술관은 꽤 큰 규모였다. '석파정'을 품고 있었고, 본관과 별관에 나뉘어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M2 개관을 기념하며 열린 <다색조선:폴 자쿨레>에서는 조선 후기 채색된 우리나라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 태생 폴 자쿨레는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을 포착해서 채색화를 그렸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그려진 그림들이다. 제목 '김씨와 이씨',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낯설다. 조선시대의 풍광을 화려한 색으로 표현해서 어색하고, 그림 속 사람들의 이목구비가 서양사람에 더 가깝기 때문인 듯했다. 


M2 전시실에서 나와 흥선대원군의 별서(別墅)로 사용되었던 석파정을 둘러봤다. 인왕산 계곡물이 얼어서 삼층탑이 있는 곳까지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왕이 사랑한 정원'이라는 별명을 붙은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산 쪽으로 조금 오르니 청나라 양식의 정자 '석파정'이 보였다. 석파정의 흥취는 계곡물이 흐를 때가 제격일 듯싶었다. 


석 달 주기로 기획전의 작품들이 바뀌는 환기미술관도, 얼어버린 계곡 때문에 다 구경하지 못한 석파정도 봄에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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