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윤동주, 박노해와 한나절을 보내다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1-18 20: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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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암동(1)
▲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산책길 주변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 [정병혁 기자]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말이다. 영혼의 압력을 높여주는 장소라니. 직관적으로 뜻풀이를 했지만 왜 이런 말이 문학관에 있는지 짐작되지 않았다. 몇 번 문학관 앞을 지나다녔지만 들어가 볼 생각은 못했다.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고 그 중 몇 개는 줄줄 외울 수 있기에, 시인의 삶을 익히 잘 알고 있기에 굳이 문학관까지 갈 이유가 없었던 걸까. 그런데 문학관을 들어서자마자 만난 '영혼의 가압장'이라는 낯선 말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제1전시실은 사진과 육필원고를 전시하고 있었다. 어린시절을 보낸 명동에서부터 중학교시절, 연희전문학교 시절, 일본 유학, 후쿠오카 감옥, 시인의 죽음까지. 시기마다 시를 한 편씩 배치한 전시는 간결했다. 전시실 한가운데엔 낡은 우물 목판이 놓여 있다. 윤동주 생가 우물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목재 널 유구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놀란 것은 제2전시실로 들어가려고 문을 연 순간부터였다. 낡고 육중한 철문을 열자 사방이 막힌 직사각형의 텅 빈 공간이었다. 이제 막 닫힌 철문 앞에 나는 잠시 멈춰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런 전시실일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폭이 1m쯤 된 콘크리트 내리막 길은 뒤집힌 기역자 모양으로 제3전시실로 이어져 있고, 콘크리트 길을 제외한 나머지 바닥은 볏짚 엮은 것들로 덮혀 있었다. 고개를 드니 사각의 조각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빈 하늘에 겨울 나뭇가지 몇 개가 보일 뿐이다. 


시 '자화상'이 생각났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닭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들여다본 우물 속 풍경을 문학관에 들어선 사람들은 누구나 사방이 닫힌 전시실에서 고개를 들어 자기를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다. 제2전시실의 이름이 '열린 우물'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좁은 콘크리트 길을 따라 제3전시실로 들어갔다. 컴컴한 실내에 익숙해지자 낮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윤동주의 삶과 시를 엮은 영상이 10여분 정면 벽에 상영되었다. 영상을 다 보고 일어서서 출구를 찾는데 천장 가장자리 네모난 곳에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깊은 우물, 혹은 감옥을 연상시킨 그곳은 '닫힌 우물'이었다. 

 

▲ 윤동주 문학관 이정표 [정병혁 기자]


종로구와 윤동주의 인연은 시인이 연희전문 4학년 졸업반이었던 1941년 종로구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4개월 가량 살았던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시기에 윤동주는 가장 왕성하게 시를 썼다고 한다. 종로구는 청운아파트가 철거되고 나서 방치된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 두 개를 활용해 자하문 근처 언덕에 윤동주 문학관을 개관한 것이 2012년 7월이다. 물탱크 두 개 중 지붕을 걷어낸 물탱크는 '열린 우물'이 되었고, 다른 하나의 물탱크는 '닫힌 우물'이 되었다. 작지만 시인의 삶과 시를 증폭시킨 놀라운 공간이었다. 

 

 

▲ '시인의 언덕'·'서시' 표석 [정병혁 기자]


문학관 옆 '시인의 언덕'에 올라 길게 뻗은 인왕산로만 보고 다시 부암동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세검정 쪽 길가 높이 2m 가량의 바위에 돌을 붙이면 옥동자를 얻는다는 전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 돌을 붙여놓고 절을 했다고 해서 '부암'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바위는 없어졌다. 

 

▲ 무계원 [정병혁 기자]


'창의문 앞 삼거리'에서 부암동주민센터 방향으로 내려갔다. 언덕 쪽으로 향한 골목 양쪽에 집들이 빼곡하다. 모양이 같은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집터와 경사에 맞게 각기 다른 집들이 들어서 있다. 창의문로5길로 접어들어 무계원을 찾아갔다. 문인화, 서당교실 등 무계원에서 열릴 강좌 현수막이 걸려있다. 무계원 건물은 종로구 익선동에 있었던 오진암의 기와, 서까래, 기둥 등을 사용해 지은 한옥이다. 한옥체험, 전통문화체험, 강연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 부암동주민센터로 돌아와 길을 건넜다. 좁은 골목 앞에 '저집'이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궁금해서 계단을 내려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작은 공간에 다양한 젓가락들이 전시돼 있었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색을 입힌 젓가락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사용하는 젓가락을 모양과 색과 크기를 맞춰 놓으니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젓가락과 수저받침을 판매하기도 하고, 젓가락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었다. 

 

▲ 박노해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카페 라' [정병혁 기자]


창의문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백석동길로 접어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카페 라'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안내 포스터를 봤지만 전시가 열리는 '카페 라'를 가보진 못했다.

 

'카페 라'는 초록색 실내의 작은 카페였다. 늦은 오후였지만 카페 안은 제법 북적거렸다. 봄에 경복궁역 근처로 이사를 앞둔 '카페 라'는 지금 장소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그동안 전시했던 박노해의 사진 중 몇 작품을 '안녕, 그리고'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과 사진 옆에 붙은 짧을 이야기를 꼼꼼하게 읽었다. 내겐 여전히 '노동의 새벽' 시인인 박노해를 사진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 '카페 라'에서는 박노해의 사진 중 몇 작품을 '안녕, 그리고'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시인과 사진 작가를 관통한 단어는 여전히 '인간'이었다. 박노해의 사진은, 사진에 얽힌 이야기는, 과격하지만 아름다웠다. 그의 시가 그랬듯이. 부암동 시대를 곧 마감할 '카페 라'에서 이 글을 쓴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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