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기획] 바이칼 호수-백조와 사냥꾼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2-02 19: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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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감독의 대륙횡단] Episode #10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년간 나홀로 SUV 차량을 타고 무려 46개국 7만9365km에 이르도록 종횡무진 대륙을 달린 사나이가 있다. 장용우. ‘왕초’ ‘호텔리어’ ‘행복합니다’ 등 수십편의 MBC, SBS 드라마와 JTBC ‘D데이’ 등 대작 드라마를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이번엔 평생 꿈꾸어 오던 드라마형 로드다큐를 만들었다. UPI뉴스 온ㆍ오프라인 채널에 ‘장 감독의 대륙횡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럽과 아시아 대륙 곳곳의 현장에다 온몸을 던져 이를 담은 영상과 기사. 그 장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감동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편집자] 

 

몽골에도 히틀러 신봉자가 있다니…


▲ 파룩과 동네 아줌마. 포즈를 취해달라는 이방인의 요구에 응해 주었다. 나의 부족한 소통능력을 체험한다


파룩 타리크(Farooq Tariq)는 파키스탄계 미국인이다. 뉴욕주의 빙엄턴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뉴욕에서 혼다 CRF 250CC를 배에다 싣고 일본으로 보낸 다음, 그 오토바이를 타고 일본을 한 바퀴 돌고 러시아로 건너오는 이스턴드림 페리에서 나를 만났다.

 

블라디보스톡 항구의 입구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호주에서 온 제임스 왈덕(James Walduck)과 셋이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다음날 블라디보스톡의 한 카페에서 도원결의를 하며 형제의 의를 나누었다. 결의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주고받은 이메일 주소로 가끔 연락을 하자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또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기원했을 수도 있다.

 

제임스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기로 했으니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오토바이를 몰고 초겨울의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파룩은 좀 걱정되었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울란우데까지 오면서 몇 차례 메시지를 받았는데 치타 직전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는 페리를 타고 오면서 겪었던 인종차별 경험을 이야기 해주었다. 어떤 러시아인이 술에 취해 거친 말을 하면서 자신을 무시하고 급기야는 장난을 빙자해 헤드록까지 걸어왔다는 거다.

 

우리는 분개하며 그 망할 자식이 올 겨울 시베리아에서 동상이나 팍 걸려야 한다고 성토했다. 근데 파룩이 이야기해주는 러시아 주정뱅이의 인상착의를 듣고 보니 기억이 나는 인물이었다. 동해항에서 배가 출발하고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는 금방 눈에 띄었다. 면도기로 밀었는지 한올씩 뽑아냈는지 머리에 털 한오라기 없는 스킨헤드였는데, 한손에 빈 보드카 병을 들고 갑판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 빡빡이는 겁도 없이 아줌마들이 고스톱에 열중하고 있는 단체 온돌방 방문을 벌컥 열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다행히 국제적 사교감각이 뛰어난 아줌마들이 “너 뭣이여 임마. 꺼져부려” 정도의 다정한 말투로 대했길래 망정이지 자칫하면 큰 말썽이 생길 뻔 했다. 한국 아줌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녀석은 다음날 배가 블라디보스톡 항에 들어가고 있을 때까지 비틀거리며 갑판을 오가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필귀정, 정의구현, 쌤통된통으로 러시아 경찰에 연행되었다.

 

제임스와 내가 분개하는 반면 정작 피해자인 파룩은 미국에서 수도 없이 겪은 그런 인종차별 행위에 덤덤하다고 했다. 러시아는 한때 악명 높은 스킨헤드 네오 나치들이 극성을 피웠던 나라이다. 축구장에서 훌리건이 난동을 부린다던지 소수 인종을 공격했다는 등의 뉴스를 종종 접한다. 여행자들의 입장에서 크게 겁 먹을 일은 아니지만 알고는 있어야 하고 위험한 장소를 미리 피하는 게 현명하다. 맥주집 옆자리에 온몸에 문신한 빡빡이에게 괜히 말 걸어 좋을 일 없다. 네오 나치는 러시아, 미국, 이탈리아, 독일, 일본 심지어 몽골에도 있다. 몽골에 히틀러 신봉자들이 있다니…. 할 말이 없다. 

 

여행자는 어디든 좋은 사마라아인 만난나


▲ 파키스탄계 미국인 파룩이 뉴욕에서 가져 온 250CC 오토바이. 몽골, 중앙아시아를 거쳐 파키스탄까지 달린다.


울란우데의 마지막 날 파룩과 연락이 닿았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약속했고 레닌광장 맞은 편의 체인형 뷔페 애피타이트에서 만났다. 그는 블라디보스톡을 떠난 지 겨우 이틀 만에 극심한 눈보라를 만났고 눈보라 속에서 미끄러져서 바이크도 고장 나고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았는데 러시아 트럭 운전수가 구해 주어서 살았다고 한다. 그 운전수들은 파룩의 바이크를 트럭에 싣고(다행히 블라디보스톡에 짐을 내리고 오는 길이라 트럭 짐칸이 비어 있었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같이 자고 같이 먹는 길동무의 예를 베풀었다.

 

파룩은 울란우데에 도착하면서 감사의 표시로 약간의 돈을 주려고 했으나 러시아 친구들은 다시 한번 돈을 들이밀면 손목을 비틀어 버리겠다고 해서 얼른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러시아 트럭운전수 만세! 페리의 빡빡이도 러시아인이고 눈 속의 트럭 운전수도 러시아인이다. 일반화의 오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여행자는 어디서나 좋은 사마리아인을 만난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같이 길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 하나됨의 동질성을 확보한다.

 

인종주의자들, 네오 나치는 적이 나와 같은 아리아인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몽골의 순혈이 아니기 때문에, 섬기는 신이 다르기 때문에(같은 기독교인이라 해도 너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은 다르다. 그러니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하나님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게 무슨 하나님인가 여러님이지) 등등 말도 안되는 이유로 외국인을 공격한다. 그 멍청한 머리로는 도무지 히틀러와 너와 나의 염색체가 똑 같이 마흔 여섯개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제의 적, 오늘의 동지, 내일의 적, 옆집 아저씨, 슈퍼 아줌마, 동생 학교친구 관계없이 공격한다. 역사적으로 증오와 분노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 광기와 어리석음, 미친 짓은 결코 정당한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아칼에도 ‘선녀와 나무꾼’ 설화 있어


▲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을 여전히 소중히 간직한 부랴트 사람들.


파룩은 신이 나서 러시아 트럭 운전수와 함께 시베리아 도로를 달려온 경험을 이야기 했다. 상당히 흥분한 파룩이 혹시 러시아로 이민 오겠다고 할까봐 걱정될 지경이었다. 우리는 식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지나가는 울란우데 아줌마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파룩과 함께 포즈를 취해서 그냥 찍었다.

 

여행을 하며 우연히 만난 길동무를 다시 보게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파룩과의 재회가 더욱 감격적이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오버랜더들의 일상이다. 그는 수리를 마친 바이크의 액셀을 힘차게 감고 쏜살같이 개선문을 지나 남쪽으로 사라졌다.

 

파룩은 남하하여 울란바토르를 거쳐 몽골 초원으로 들어간 다음 중앙아시아 고원을 넘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탈거라고 했다. 그의 고향, 어머니가 계시는 파키스탄이 최종 목적지이다. 뉴욕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그의 국적, 인종, 언어, 그 모든 것이 이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을 증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잘 웃고 낙천적이며 상냥한 이 친구가 사랑스러웠다. 달려라 파룩!

“아주아주 오랜 옛날 바이칼 호수 주위에 사는 사냥꾼 총각이 있었다. 어느날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들이 깃털을 벗어놓고 호수에서 목욕을 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백조들의 깃털 중 하나를 감췄다. 그 깃털은 백조들 중 가장 어린 막내 백조의 날개였다. 목욕을 마친 백조들이 하늘로 돌아갈 때 막내 백조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절도범 총각과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아닌가. 우리의 설화 ‘선녀와 나뭇꾼’의 바이칼 버전이다. 후반부가 좀 다르다.

“어느날 백조는 사냥꾼에게 언니들이 보고 싶다고 간청하여, 사냥꾼은 깃털을 내주었는데 그 백조는 하늘로 날아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서낭당 주위에는 보드카 병 나돌고


▲ 우리의 성황당(서낭당)과 비슷하다. 부랴트도 샤먼(무당)이 굿하고 점도 본다.


바이칼의 선녀는 한반도의 선녀에 비해 모성애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설화의 원형이 같은 건 틀림없어 보인다. 바이칼 일대는 부랴트인들의 발원지이면서 동시에 한민족의 시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빙하기에 바이칼에 갇혀 있던 몽골로이드 중 일부가 날씨가 풀리면서 먹거리가 풍부한 한반도로 진출했다는 거다.

 

미토콘드리아 DNA 변이에 대한 분자계통학적 분석이라는 과학의 방법을 통해 상당한 근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물론 가설이다. 3만~4만년 또는 그 이전부터 살던 사람들이 기원전 8000년 쯤에 세계 최초의 국가를 바이칼 부근에 세웠고 그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생김새와 언어, 문화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닮은 것이 샤머니즘이다. 부랴트 공화국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길가에 혹은 마을 어귀에 돌무덤이나 사당에 해당하는 샤머니즘 상징물을 쉽게 만난다. 울긋불긋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청백적녹황의 오색깃발 ‘탈초’가 휘감고 있는 샤먼 바위, 샤먼 말뚝(서낭당 또는 솟대와 비슷하다)을 본다. 우리네 사당에 해당한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을 향해 가다가 올조니라는 작은 마을을 눈앞에 두고 새하얀 석회가루를 뒤집어쓴 순록상을 만난다. 그 옆에 샤먼 말뚝에 누군가가 두고 간 보드카 병이 뒹군다. 털털거리는 라다 승용차 한대가 와서 서더니 남자 한명, 여자 둘이 내린다. 그들도 제를 올린다. 내게도 권해서 사양했더니 짐짓 화난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위협한다. 부부와 처제 셋이 두서없이 내게 떠드는 내용은 구글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곳은 부랴트의 정령들이 다스리는 땅이다. 너는 우리 부랴트와 같은 뿌리를 가진 족속인데 여기 고향 땅에 왔으면 당연히 신께 감사드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바이칼을 건너가다가 물에 풍덩 빠져죽게 될지도 몰라. 어서 술 따르고 한잔 마셔. 좋게 말할 때.” 이미 취해서 눈이 발개진 드미트리는 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병을 내밀었다.

 

갑자기 내 몸 깊숙이 감추어진 고생 인류의 알콜 친화 DNA가 벌떡 일어섰다. 보드카를 샤먼 말뚝 주위에 뿌리고 절을 한다. 막강한 보드카 냄새를 풍기는 세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음주가무에 능한 몽골로이드의 유전적 친화력이 살아나 나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그들은 러시아어와 부랴트 합성어로, 나는 한국어와 짤막한 러시아어로 천신과 지신이 우리를 지켜달라고 빌었다.

 

그들은 특히 낮술을 좀 마셨으니 안전운전을 위해서도 신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무엇 하나 낯설지가 않았다. 황량한 시베리아 저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목장의 말들이 조금 동요하는 듯했지만 이내 진정하고 풀을 뜯어먹었다.

 

순록 사당에서 30km 쯤 북상한 다음, 바얀다이의 53.0533514N 105.5246687E 지점에서 90도 우회전을 하면 거대한 장벽같은 언덕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바이칼의 올혼섬을 향하는 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천지신명이 감응하신 덕분인지 갑자기 눈이 쏟아졌다. 아직도 체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위기감이 밀려왔지만 달리 선택할 길이 없어서 조심스럽게 돌진. 역시 보드카 굿이 효험을 발휘했나보다.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눈은 그치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부랴트 샤먼들이 인정하는 세상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올혼섬의 샤먼록, 삼형제 바위를 찾아가서 또 보드카를 뿌려야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부랴트인들은 종종 샤먼을 찾아가 의례를 지낸다고 한다. 특히 새 집이나 새 자동차를 사면 반드시 제를 올린다고 한다. 일종의 정화의례이다. 또 먼길 떠날 때나 사업상 고민이 있을 때도 샤먼을 찾아가 의논하고 복채를 주고 온다. 심지어 49제도 올린다. 한반도에서 까마득 멀어 보이는 시베리아의 심장부에 우리와 비슷하게 생기고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현생하고 있는 것이다. 

 

UPI뉴스 / 글·사진 장용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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