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공간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1-09 15:00:32
  • -
  • +
  • 인쇄
강남 고속터미널과 지하 상가
▲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의 통로 바닥 [정병혁 기자]

 

며칠 쨍하고 추웠다. 겨울이 산책하기 좋은 계절은 아니다. 겨울철에는 햇볕이 좋은 정오와 오후 2시 사이 걷는 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인의 삶이 그리 한가하지만은 않다. 꼭 그 시간이 아니라도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고 매섭게 바람이 불면 밖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하지만 도시 산책이 좋은 건 굳이 밖에서 걷는 걸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파리가 도시화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길은 ‘아케이드’라고 하는 공간이었다. 철제로 아치형 구조를 만들고 유리로 마감한 ‘아케이드’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고, 건물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는 특이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비 오는 날 사람들은 아케이드 안을 걸으며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했다. 으젠느 앗제의 사진들을 보면 쇼윈도 밖에서 안을 관찰한 시선이 자주 등장한다. 도시화는 어떤 것을 직접 향유하기 이전에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유리가 건축자재로 사용하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내를 돌아다닌다면 어디가 좋을까? 몇 군데 후보지를 적어놓고 몇 가지 조건을 찾다가 강남 고속터미널 상가를 선택했다. 한 해 마지막 날, 누군가는 서울을 떠나고 누군가는 서울로 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 미로와 작은 상가가 빽빽한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정병혁 기자]


고속터미널 주변 지하는 미로이다. 경부선, 호남선 터미널이 지어지면서 만들어진 지하 상가는 직선으로 상가가 길게 배치되어 있어서 단순하다. 그 이후 7호선, 9호선 지하철역이 연결되고 신세계 백화점, 센트럴 시티 등이 들어오면서 지하로 몇 개의 길이 새로 생기면서 복잡해졌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와 빵 굽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걸으니 ‘삼송빵집’ 앞이다. 고속터미널을 이용해서 어딘가 갈 때 가끔 단팥빵을 샀던 가게이다. 나처럼 지하 통로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일부러 어떤 가게를 찾는다는 게 힘들다. 우연히 가게 앞을 지나면 들어갈 수 있다. 


빵집 옆부터는 화장품 가게가 이어진다. 세일을 알리는 광고지도 모자라 빨간 풍선을 매달아 놓았다.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식당이 있다. 통영 굴국밥 집이다. 맞은편에는 전주콩나물국밥, 그 옆은 인사동 칼국수, 북창동 순두부, 코너에는 중국음식점이 있다. 제천의 덩실 찹쌀떡, 부산 막장 순대와 오뎅, 솜리 고기가 있는 밥 등 전국의 대표 음식이 몰려 있다. 가게 안내문을 보니 하나같이 전통있는 음식점이었고 그 지방에서 유명해서 서울까지 진출한 가게들이었다. 전국 유명한 먹거리가 나란히 있는 게 당연하다. 이곳은 전국 각처의 사람들이 오가는 버스터미널이 아닌가. 문구점을 끼고 돌아서 생활용품 파는 가게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나왔더니 처음 걷기 시작했던 지하철 개찰구가 나왔다. 한바퀴 빙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별 생각없이 걷다가는 계속 같은 곳만 구경할 것 같았다. 산책의 동선을 분명히 해야 했다. 원래 목표였던 강남고속터미널지하상가를 우선 걷고 그 다음은 그 이후 생각하기로 했다. 

 

 

▲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는 터미널 [정병혁 기자]

다시 삼송빵집까지 가서 두리번거리며 안내 표지를 살폈다. 반포지구대, 반포대교방면, 반포한강공원 출구 방향으로 걷는 길이 지하도상가라는 안내 표지를 발견했다.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니 좌우로 길게 이어진 지하도가 보였다. 작은 상가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가게 상호를 알리는 간판이 일정한 모양으로 일정한 위치에 붙어 있다. ‘결제수수료0% 제로페이서울’ 홍보 띠지가 통로 바닥에 일직선으로 부착되어 있다. 이제 구경하며 걷기만하면 된다. 


대부분 옷가게이다. 만원, 2만원 옷들을 모아 가게 앞 헹거에 내놓았다. 지나가다 옷을 들춰보면 주인도 가게 앞까지 나와서 손님을 응대한다. 가게 안에 있는 더 많은 물건을 보고 손님이 가게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쇼핑이 시작된다. 아주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대학생 때 몇 번 친구들과 와서 쇼핑을 한 적이 있다. 유행에 민감하고 멋내기 좋아하던 그때 터미널 상가는 그야말로 핫한 곳이었다. 옷 살 돈으로 옷도 사야 했지만 친구들과 떡볶이나 라면도 먹어야 했다. 흥정 잘하는 친구는 꼭 같이 가야 했다. 구경하고 옷 사고 그렇게 낄낄거리며 돌아다니다보면 배가 고팠고 분식집에서 이것저것 시켜서 나눠 먹었다. 


‘전품목 정리세일’이라고 유리에 붙여놓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두툼한 스웨터가 3만9000원, 겨울 외투는 4만9000원이다. 이곳에서 6년째 그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단골 손님 위주로 장사하는 가게들은 버티지만 뜨내기 손님을 주로 상대하는 가게는 힘들다고 한다. 2, 3년에 한번씩 업종이 변경을 바꾸거나 폐업하는 가게도 많다고 했다. 걷다보니 ‘폐업정리’ 안내문을 붙인 가게도 몇 군데 있었다. 옷가게가 많지만 그 사이사이 다양한 가게들이 섞여 있었다. 가방, 액세서리, 휴대폰, 그릇, 이불, 인테리어 소품, 신발, 생화, 조화, 화장품. 가발, 바구니, 조명, 시계 등. 터미널상가는 2011년부터 상가 리모델링을 거쳐 2012년 ‘고투몰(GOTOMALL)'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1km의 지하도를 따라 700여 개의 상가가 밀집해 있으니 아이쇼핑만해도 몇 시간 걸린다. 


터미널 상가를 걸으니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눈이 군데군데 쌓여있었고 꽤 추운 겨울이었다. 광주 J대학에 나니던 친구는 오후 버스를 타고 출발한다고 했다. 편지로 그 소식을 전해왔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후 서너시쯤부터 친구를 기다렸다. 타고 온다고 했던 버스가 도착했지만 승객 중 친구는 없었다. 표를 끊지 못해서 다음 버스를 탔으리라 짐작했고 광주에서 오는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다음 버스에도 친구는 없었다. 혹시, 그 다음 버스를 탔을지도…. 대합실에서만 기다릴 수 없어서 광주에서 올라오는 버스가 도착하면 버스 앞까지 가서 내리는 승객들을 확인하고 쓸 데 없이 운전기사에게 광주에서 몇 시에 출발한 버스인지 확인했다. 이렇게 기다리다 결국 광주에서 오는 마지막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터미널 주변을 서성거렸다. 편지 속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도 그날이 틀림 없었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입원을 해서 친구는 그날 고향에 내려갔었고 내가 자취하던 주인집에 전화를 했지만 나랑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간 나는 터미널에서 광주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휴대폰이 일상이 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버스는 고향으로, 여행지로 사람들을 실어다 나른다. [정병혁 기자]

 

2018년 마지막 날, 대합실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떠나는 사람들과 오는 사람들, 지나가는 올해와 다가오는 내년. 이번 산책은 어쩐지 적절한 장소를 선택한 듯하다. 백팩을 맨 젊은 남자가 뛰어가 ‘순천’행 버스에 오른 것이 보인다.


지금 저 버스를 타면 나도 고향에 갈 수 있을 텐데.

 

강진 소설가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인물

+

만평

+

스포츠

+

'비선수 출신' LG 한선태, 1군 데뷔 프로야구 새 역사

비선수 출신의 LG 트윈스 투수 한선태(25)가 프로 데뷔전을 치러 한국 야구사에 새 역사를 썼다.한선태는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3-7로 지고 있던 8회초 팀의 세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이날 그는 17개의 공을 던져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해 성공적인 데...

임효준, 성희롱으로 '대표팀 전원 선수촌 퇴촌'

쇼트트랙 대표팀이 또다시 성희롱 파문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동성 선수간 성희롱 논란이다. 이에 따라 남녀 국가대표팀 전원이 모두 진천선수촌에서 퇴촌을 당했다. 25일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충북 진천에 있는 진천선수촌에서 쇼트트랙 남녀 대표팀이 동반 암벽 등반 훈련을 하던 중임효준(23·고양시청)이 동료황대헌(20·한국체대)의 바지를 벗겼다.수...

류현진, 기자들이 뽑은 가장 유력한 사이영상 후보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보이고 있는 LA 다저스의 류현진(32)이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 후보 1순위로 선정됐다. ​25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엠엘비닷컴은 메이저리그 담당 기자 35명이 뽑은 사이영상 후보를 공개했다. 기자들은 각 리그 3순위까지 투표하고 1위에 5점, 2위에 3점, 3위에 1점을 부여했다. 투표 결과 류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