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이성봉 기자 / 기사승인 : 2018-10-29 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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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흙수저도 재산이다'
방송PD에서 예술기관장으로

예술의전당 고학찬(71) 사장은 내년 3월까지가 임기다. 최근 안팎에서 거취에 대한 수런거림이 많지만 자신은 정해진 기간 동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동안 준비해온 기획서들이 책상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후임자에게 전달할 자료다. 물론 후임자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고 사장을 만나 최근의 심경을 들어보았다.  

 

▲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문재원 기자]


-그동안 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극단 신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뒤 TBC에 입사해 라디오 PD를 했다. 당시는 라디오 드라마 전성기였는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손오공'을 만들었다. 효과음을 자연음으로 사용할 때였는데, '손오공'에서는 키보드를 이용해 전자음을 만들어 사용했다.

라디오를 거쳐 TV로 옮긴 뒤 ‘좋았군 좋았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게 됐다. 그러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뒤 언론통폐합이 있었다. 그때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고, 15년 간 그야말로 고생길이었다. 하지만 고생 경험도 지나고 보니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어디서나 하고 다닌다.

뉴욕에 있을 때 시청에 가서 "다른 커뮤니티는 자국어 방송이 있는데 왜 한국어 방송은 없냐"고 따졌다. 그래서 WNYE 라디오에서 2시간 동안 한국어 프로그램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 얻은 라디오 제작 경험은 뉴욕 WNYE에서 이민 1세대를 위한 한국어 방송을 하는 데 큰 자산이 됐다. 별다른 장비도 없이 집에서 아내와 둘이서 녹음해 가며 방송을 만들었다. 방송은 한인 커뮤니티의 라디오 복덕방이자 벼룩시장이었다. 구인, 구직부터 거처를 구하고 물건을 나누는 모든 정보를 알리는 일은 정말 보람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경험을 쌓아 브로드웨이 37번가에 '케빈'이란 상호의 의류가게도 차리면서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에 왔는데 어머니가 나를 전혀 몰라봤다. 그래서 49세에 귀국했다. 케이블TV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제일기획의 Q채널에 국장으로 스카우트됐다. TBC 시절 경험과 미국에서 케이블TV 시대를 경험한 것을 높이 산 것이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한 것이 도움이 되고 있다. 이곳에는 식당, 카페 등 많은 시설이 있는데 어떤 부분이 잘 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능력도 자연스레 경험을 통해 얻었다."

-지난해 비정규직 200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정부 시책이고 방침이다. 기관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200명가량이 정규직이 됐지만 그간 용역에서 가져가던 이익 부분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예산이 약간 늘어나는 정도에서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공연장마다 몸살을 겪고 있는 기술직 직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공기관의 한계가 있다. 특히 예술 관련 업종은 특수성을 인정하는 선에서 접근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지키지 않으면 사장이 고발당한다. 업종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 그의 책상에는 새로운 일의 기획서가 넘친다. 후임자에게 그간 못한 일들과 자료도 넘겨줄 생각이다. [문재원 기자]

-대관과 기획 공연 시스템에 대해서는? 

"현재 대관과 기획은 8대 2 정도 비율이다. 30년 동안 이 시스템이 고착된 것이다. 그런데 80%나 차지하는 대관도 우리 공연이고 전시라고 생각한다. 대관을 심의위원회에서 충실하게 심의하고 이후 관련 부서에서 기획안대로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관리한다. 끝까지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이곳의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재정자립도는 어느 정도고, 적정 수준은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재정 규모는 연간 500억~520억원 수준이다. 이 중 20~25%인 100억~120억원 정도 정부 지원에 그치고 있다. 75~80% 수준의 자립도는 아무리 해도 높이기 어렵다. 30년이 되다 보니 시설도 낙후되기 시작했다. 고장 나기 전에 바꿔야 할 게 많다."

 
▲ 가장 아쉬운 일은 서예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이 부족한 점을 들었다. 스스로 한글과 한자로 된 서예 글씨뿐 아니라 영어와 라틴어로 된 서예에도 직접 도전했다. [문재원 기자]

-그동안 일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서예 분야의 지원이 절실하다. 최근 서예박물관을 개수했다. 서예는 1600년 이상 된 장르다. 그런데 최근 모든 대학에서 서예학과가 전부 폐지됐다. 서예는 국가가 지원하고 시대적 사명을 가져야 하는 분야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아시아 문화교류의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죽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에게 서예라는 장르를 일깨우도록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술단체를 비롯한 기관장의 인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100% 정부 주도의 문화정책은 잘못된 방식이다. 문화는 민간에서 제작하고, 협찬을 유치해 만들어야 한다. 민간기업은 이런 예술기관을 지원해주고 정부는 예술을 도와주는 기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문화가 민간주도로 바뀌어야 블랙리스트 같은 문제들이 사라진다."

▲ "그동안 12명의 문체부 차관이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왔었다. 정치적인 입김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는 문화는 민간주도로 바뀌어야 한다." [문재원 기자]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유일하게 연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재부에서 조사하는 대표적 지표 중 하나가 고객만족도다. 관람객들과 전당을 이용하는 기획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다. 7년 연속 우수(A등급)를 받았다. 이런 기관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친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영상화사업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예술의전당의 문턱을 낮추는 일들도 많이 했다고 알려졌는데?

"무료 사업으로 가곡 공연 4회와 동요 공연 3회를 실시하고 있다. 언젠가 나이지리아문화원에서 가곡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교포뿐 아니라 현지 나이지리아인들도 감동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마 그들과 정서적 공감을 이루었으리라 본다. 이렇듯 새로운 가곡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11시 마티네 공연, 토요 콘서트, 문화햇살콘서트 등도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노블회원과 싹틔우미회원은 노인층과 젊은층의 미래관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 고사장은 때로는 청소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휘자, 해설자로 무대에 서기도 한다. 합창, 기악, 국악을 하는 아이들로 어린이예술단을 만들어 공연을 다니는 일도 가곡의 밤이나 동요콘서트에 해설자로 지휘자로 나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상화사업은 대표적으로 예술의전당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고, 획기적으로 문화소외계층으로 찾아가는 일이었다. [문재원 기자]


-'SAC on screen(영상화 사업)’에 대한 열의가 큰 데?

 

"일부 지방에서는 아이들이 클래식을 경험해 보지 못한 곳도 있다. 오페라 한 편에 10억원 정도 투입되는데 3일 간 5천명 정도가 본다. 클래식에 대한 문턱이 높은 것이다. 이런 문화 갈증을 풀어 주는 일이 ‘SAC on screen(예술의전당 영상화 사업)’이다. 매년 6억원 정도 예산을 들이는데, 지금까지 약 200회에 걸쳐 36만명이 혜택을 받았다. 연간 8만명 정도가 관람한 결과다. 지역 문예회관, 군부대, 군민회관 등에 발레, 오페라, 뮤지컬 등을 무상으로 상영했다. 


직접 보는 것보다는 감동이 덜하겠지만 영상의 장점이 있다. 15개 카메라를 사용해 다각도로 찍는 화면은 최고의 좌석에서 다 보지 못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클로즈업 장면은 배우의 눈물까지 드러낼 정도로 섬세하게 보여준다. 현재 해외 저작물 외에는 거의 모든 작품에 대해 시행하고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유니버설 발레단 '심청', 서울예술단 '윤동주의 달을 쏘다'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오는 11월초 뮤지컬 '웃는 남자'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음 예술의전당 사장은 누가 맡게 될까.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수 있는 적임자가 자리를 맡음으로써 민간 주도로 자율성을 갖고 운영되는 바람직한 문화기관이 되길 기대한다. 

 

U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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