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택의 연예비사] 이미자, 데뷔 60년…자기주장 강한 '히트곡 제조기'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19-04-19 08: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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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부터 노래 데뷔부터 승승장구해 국민 가수로
자기주장 강한 ‘히트곡 제조기’ 개인사 곡절도

이미자는 어떤 사람인가.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엘레지의 여왕. 수많은 히트곡 제조기. 2000곡 이상 취입한 가수. 자기 주장이 강한 고집 센 여자. 재테크의 귀재 등등. 모든 평을 뒤로 하고 이미자는 타고 난 가수이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잘했다. 6~7살부터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떨림도 없이. 꼬마 이미자의 노래는 어른들의 시름을 달래줬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한 번 노래를 들으면 곧바로 따라 했다. 아주 똑같이 불렀다. 악보를 볼 줄도 모르며 노래를 불렀다. 어릴 때부터 천재 가수의 기질을 뽐냈다. 이미자는 1941년생. 한국 나이로 79살이다. 올해로 데뷔 60년이 됐다. 


이미자는 1959년 한국 최초의 TV인 RCA 대한방송 가수선발대회에서 장원으로 뽑혔다. 작곡가 황문평 씨가 심사위원장이었다. 이미자는 이전에도 지역선발 노래대회에 많이 나갔다. 나가기만 하면 1등이었다. 방송국 선발대회 출전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살 때였다. 이미자는 데뷔할 때 가명을 쓰려 했다. 미자라는 이름이 흔해서. 고민 끝에 본명을 쓰기로 했다. 

 

이런 결정이 오히려 성공을 부추겼다. 팬들에게 친근감을 줬다. 데뷔곡이 19살 순정이었다. 데뷔곡이 나오자마자 히트를 했다. 방송국에서 불이 났다. 신인가수 이미자를 출연시켜 달라고.

 

▲ 이미자 [이미자 힛트앨범, 산울림 칠 때마다 음반]


이미자는 정말 운이 좋은 가수이다. 때를 잘 타고 났다. 10년만 먼저 태어났으면 빛을 보지 못했을 거다. 기라성같은 선배들에 눌려서. 지금 같아도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노래 창법과 목소리가 현재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쟁 후 어려웠던 시절에 맞는 가수이다.

 

이미자의 곡이 히트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구성지게 노래를 잘한다. 이미자에게 맞는 가사와 곡이 주어졌다. 작곡가와 작사가들이 알아서 곡을 만들어 줬다. 부르기 쉬운 노래를 취입했다.


혼신의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 패티 김의 열정적 창법이 아니다. 그냥 힘 안 들이고 부르면 된다. 흥얼흥얼하면 된다.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쉽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1950~1960년대 생활상이다. 모두 먹고 살기 힘든 시대였다. 남존여비 사상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이 많았다. 가사도우미, 윤락녀, 기생 등 소외계층 여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미자의 구성진 목소리는 그녀들의 설움을 대신해 줬다. 슬픈 가락은 그녀들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미자의 노래는 고된 삶의 한을 씻어줬다. 그녀들에게 이미자는 우상이었다. 자신들의 딸이었고 이모였고 친구였고 동생이었고 언니였다. 카타르시스였다.


운도 타고난 자질과 노력이 있어야 따르는 법. 이미자의 목소리는 정말 타고 났다. 누구도 이미자의 음색을 따라가기 힘들다. 음색이 특이하다. 음식과 비교해 보자. 기름진 동시에 다시 한번 먹고 싶은 맛이다. 보통 기름진 음식은 한 번 먹고 나면 질리게 마련이다. 이미자의 음색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바로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축복받은 것이 더 있다. 목소리의 변함이 없다. 데뷔할 때나 지금이나 목소리가 똑같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목소리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다. 그래도 가수라는 직업은 다르다. 평소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이다. 목을 많이 쓰면 언제고 변할 수 있는 것이 목소리다. 다행히 이미자의 음색은 변함이 없다. 음색만 좋은 것이 아니다. 가수의 생명이 또 있다. 바로 호흡이다. 

 

이미자는 호흡이 길다. 젊었을 때는 정말 호흡이 길었다. 요즘은 약간 호흡이 부족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나이에 비춰볼 때 대단한 호흡이다. 이미자의 호흡에 감탄한 사례가 있다. ‘동백아가씨’를 취입할 때였다. 이미자는 동백아가씨로 한국 최고 가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 이미자는 만삭이었다. 출산을 얼마 안 남겼을 때다.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에서 녹음을 마쳤다. 평소와 다름없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웃으며 여유 있게 말했다. 힘이 들게 뭐 있냐고. 나중에 그때 일을 여배우들에게 말했다. 여배우들이 웬일이니 하며 모두 깜짝 놀랐다. 자신들은 그런 상황이면 누워있기도 힘들었다고. 왜 이미자인지 알겠다며 웃던 기억이 난다. 


여기에서 동백아가씨 비화를 말해야겠다. 동백아가씨는 곧 이미자이다. 이미자가 곧 동백아가씨다. 백영호 작곡 동백아가씨는 오늘의 이미자를 있게 해줬다. 지금도 이미자 하면 동백아가씨가 떠오르게 된다.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곡으로 대히트를 쳤다. 동백아가씨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당시 판매량만 30만 장을 기록했다. 현재로 따지면 1000만 장 정도의 판매량이다. 물론 영화도 흥행 만점을 기록했다. 

 

동백아가씨는 12인치 LP판으로 나왔다. 지구레코드사가 발매했다. 앞뒤 6곡씩 12곡이 수록됐다. 앞판에 황포돛대. 뒤판에 동백아가씨가 실렸다. 지구레코드사는 원래 황포돛대를 먼저 알리려 했다. 회사에서는 의외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계획을 급히 바꿨다. 회사의 모든 힘을 동백아가씨에 쏟아부었다. 지구레코드사는 돈을 쓸어모았다. 

 

동백아가씨는 방송금지곡에 지정되는 아픔도 겪었다. 이유는 왜색이 짙어서였다. 혹자들은 가사 중에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가 공산주의를 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소문은 그저 소문으로 끝냈으면 한다. 정치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확실히 밝힌다. 

 

지구레코드사는 동백아가씨 열풍이 완전 자리 잡은 뒤 황포돛대 홍보에 나섰다. 제2의 동백아가씨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황포돛대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구레코드사는 일거양득의 재미를 봤다. 동백아가씨를 취입할 때 이미자는 작곡가 백영호와 창법에 대해 많은 의견충돌이 있었다. 특히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의 창법을 놓고 크게 싸우기도 했다. 한 곡의 완성을 위해 큰 노력을 했는지 짐작케 한다. 

 

이미자는 가수 생활 60년 동안 수많은 곡을 취입했다. 아마도 2000곡 이상 취입한 걸로 예상된다. 본인도 가사가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이미자는 가수로 최정상에 올랐지만 개인사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UPI뉴스 / 정리=김병윤 기자 bykim7161@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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