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바다, 사막 그리고 평원이 만든 자연 3중주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7-06 11: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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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 피스코, 이카, 나스카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이제 남쪽으로 길을 나선다. 닿는 곳마다 달라지는 자연이 마치 변주곡을 들려주듯이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새들의 군무, 모래언덕으로 이어진 사막의 장관, 그리고 드넓은 나스카 평원의 거대한 그림과 마주하면서 무어라 표현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감탄하기에도 지치고, 신비로움을 느끼는 감각도 무뎌지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자연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잠시 질리는 듯했던 마음을 다시 부추겨 다가올 광경이 못내 궁금해 또 걸음을 옮기게 만드니 말이다. 


▲ 바예스타섬 절벽 위에 서 있는 펭귄과 펠리컨들.


동물 낙원 바예스타섬...배설물 ‘구아노’는 비료


피스코(Pisco)는 페루 남서부, 태평양 연안 이카 주에 있는 항구도시로 파라카스(Paracas) 문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파라카스 문명은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전 100년 무렵까지 파라카스 반도 지역에서 번성했다. 발굴한 각종 유물로 미루어 볼 때 직물과 의술 분야에서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의 볼거리는 ‘파라카스 해상공원’에 있는 바예스타섬(Isla Ballesta)이다. 파라카스 항구에서 배를 타고 가다 보면 주변 모래언덕에 그려진 촛대 모양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칸델라브라(candelabra)’라는 이 그림은 폭 70m, 길이 181m의 크기로 꽤 떨어진 바다에서도 잘 보인다. 모래언덕에 그려져 있어 바람이 심하게 불면 금방 지워질 것 같은데, 기원전 200년 무렵에 만든 것이라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과학적으론 훔볼트 해류가 몰고 오는 안개에 있는 염분이 모래를 굳혀 그림이 남아 있게 했다고 한다.


바예스타섬으로 서서히 다가가자 이상한 냄새가 난다. 멀리서 바라보자니 바위의 색도 여느 것과는 달리 하얗다. 무슨 이끼가 낀 듯도 하고, 해조류가 널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까이 갈수록 꿈틀거리는 동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에는 갈매기를 비롯한 물새가 떼 지어 날고, 바위 곳곳에는 물개와 바다사자 등이 자는 듯 게으름을 한껏 부리면서 사람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다. 절벽 위에는 펭귄과 펠리컨이 먼 곳에 나간 누구를 기다리는 듯 까치발로 서 있는 것 같다. 이곳에는 귀가 작은 오타리아물개, 각종 바닷새, 훔볼트 펭귄 뿐만아니라 온갖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어 ‘리틀 갈라파고스’라고도 부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새들의 배설물이 쌓여 굳은 구아노(Guano)이다. 일종의 광물질로 인광석이라고도 부른다. 이상한 냄새로 사람들의 머리를 아프게 한 것도, 바위 색깔이 하얗게 변한 것도 모두 구아노 때문이다. 인과 질산염을 포함한 구아노는 천연비료로 유기농이나 친환경 농법을 채택하는 농부에게 인기가 높다. 합성 암모니아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화약의 원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구아노의 경제 가치에 주목한 유럽인이 들어오면서 갈등도 생겨 19세기말에는 페루, 칠레, 볼리비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아노를 채취하는 노동자는 방독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다.

와카치나 사막 달리는 부기카 투어 재미 

  
1563년에 세워진 이카(Ica)는 이카 주의 주도로 와카치나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곳은 와인 찌꺼기나 와인을 증류해 만드는 브랜디 ‘피스코’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피스코의 도수는 35~43도 정도로 센 편이어서 보통 ‘피스코 샤워’라는 칵테일로 마시는데, 어디서나 눈에 띄는 대표 음료다. 술을 빚을 때 와인처럼 오크통을 쓰지 않고 우리나라의 옹기 같은 토기에 넣어서 숙성한다. 무색에 향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와카치나 오아시스 마을.[셔터스톡]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Huacachina)’에 잠시 머문 뒤 와카치나 사막을 달리는 부기(buggy)카에 오른다. 가도 가도 모래만 보이는 사막, 차량은 덮개 없이 그냥 가름대만 몇 개 얼기설기 엮어 놓았다. 시키지 않아도 안전벨트를 매게 된다. 부드럽지만 작은 모래 알갱이가 들어갈까 봐 휴대폰과 카메라는 내놓기도 조심스럽다. 언덕 모양을 따라 달리다 보니 자연히 몸은 자동안마기에 올라탄 듯 들까불려지고 모래바닥으로 떨어질까 요즘말로 ‘숨멎’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막에서 뉘엿뉘엿 떨어지는 멋진 석양을 보는 호사도 누린다. 샌드 보드는 상당히 가파른 비탈을 달려 내려가야 해 나이든 사람은 선뜻 나서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내지르는 환호에 맞장구치며 기분만 함께한다. 


와카치나 마을은 주변의 모래언덕 사이 움푹 팬 곳에 오아시스와 함께 있어 그림엽서처럼 예쁘다. 식당과 숙박시설도 있어 하룻밤 쯤 자고 가고 싶지만 사람이 너무 몰리는 곳이라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단다. 하긴 이런 곳에서 그냥 잠만 잔다면 풍광을 제대로 즐기는 것은 아니라 하겠다.

나스카 평원의 불가사의…거대 지상화와 만남


이제 또 다른 불가사의,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나스카 지상화(Nazca Lines)’와 마주할 시간이다. 나스카 문명은 파라카스 문명에 이어 기원전 100년에서 서기 800년 무렵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문명이 해안가에서 80km 떨어진 안데스 산맥 쪽 건조지대에 남긴 나스카 지상화가 바로 수수께끼 가득한 그림이다. 왜, 누가, 어떻게, 언제 그렸을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10~30m에 이르는 기하학적 그림들은 일 년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기후 덕에 지금까지 남아서 찾는 이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나스카 지상화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독일 여성 수학자이자 고고학자인 마리아 레이헤(Maria Reiche)다. 그는 29세 때인 1903년 페루에 와서 1998년 95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나스카 지상화 연구에 몰두했다. 1949년에 펴낸 ‘사막의 수수께끼(The Mystery on the Desert)’라는 책에서 새의 문양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나스카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지상화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천문학과 관련된 상징’, ‘제례와 연관된 그림’, 또는 이곳에 머물렀던 ‘외계인에 대한 숭배’의 의미라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정확한 학설로 밝혀진 건 없다.


▲ 사막의 부기카.


나스카 전망대는 레이헤가 지상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세운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 바로 옆에 20m 높이로 서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나무’와 ‘손’ 그림 두 가지만 볼 수 있는데, 오래된 탓에 안전 문제로 한번에 10명만 함께 오를 수 있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경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행기를 탈 때는 몸무게를 먼저 잰 뒤 전체 무게를 고려해 인원을 배치한다. 하늘에서 보는 나스카 지대의 색상은 보통 평원과 사뭇 다르다. 옅은 녹색의 땅은 딱딱한 느낌이어서 쉽게 그려질 것 같지 않았고, 곳곳에 있는 물길 같은 자국이 더욱 진하게 보여 그림이 눈에 덜 띄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찬찬히 보니 땅에 그려진 그림이 뚜렷해진다. 콘도르도 있고, 거인도 있고, 원숭이도 보인다. 그 커다란 그림을 한참 보자니 문득 현대인이 자랑스레 내세우는 고도의 지식이란 게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스카 지상화. 한가운데 벌새가 보인다.


나스카 문명이 남긴 또 다른 유적지는 ‘수로’를 뜻하는 아쿠에둑토(Acueducto)다. 물이 부족한 건조 지대였기에 농경을 위한 지하수로와 관개시설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지하수 수맥을 찾아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의 모양을 보면 달팽이처럼 돌돌 감겨드는 나선형으로 생겼다. P자 머리 부분을 동심원으로 그려놓은 페루 문양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나스카 평원 북서쪽에는 기원전 300년에서 서기 100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차우치야(Chauchilla) 묘지’가 있다. 지하를 파고 돌로 벽을 두른 묘지에는 쪼그리고 앉은 채 백골이 된 미라와 두개골, 뼈들과 토기, 직물 등이 남아 있다. 무덤 주위도 건조한 지역이라 미라의 머리카락, 옷가지 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죽어서도 바깥사람의 눈길에 시달리는 미라의 남루한 모습에 갑자기 우울한 맘도 들었다. 이럴 땐 신속한 국면 전환이 필요한 법. 환하다 못해 열기를 내뿜는 한낮의 밝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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