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유해진에게서 김윤석을 보았다

홍종선 기자 / 기사승인 : 2018-11-06 09: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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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염정아와 부부 호흡
관객의 몰입·이해 위해 장면과 상황을 만드는 남자
"이름 앞에 붙는 배우, 어색하지 않은 배우 되고파"
▲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변호사 태수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타짜'(2006, 감독 최동훈)에서 유해진은 고광렬이었고 김윤석은 아귀였다. 고광렬은 아귀에게 팔이 잘렸다. 그때 둘은 앙숙이고 서로 다른 쪽에 선 적이었다. 12년이 지난 오늘, 영화 '완벽한 타인'으로 만난 유해진에게서 김윤석을 보았다.

느낌과 생각은 선명한데 문장이 따라줄지 겁부터 나지만 설명해 보면 이렇다. 김윤석을 만나 인터뷰해 보면 이 사람이 현장에서 배우였던 건지 감독이었던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결코 감독의 자리를 넘봐 선을 넘었다는 게 아니다. 배우 몫, 내 캐릭터만 챙기는 게 아니라 작품 전체에 대한 깊은 책임감으로 한 장면 한 장면 공을 들이고 장면과 장면의 연결에 무엇이 빠졌는지, 무엇이 들어가면 앞뒤 장면 모두 빛나는지를 기막히게 안다는 얘기다. 그리고 앎에서 끝내지 않고, 작품을 살리는 길이 나를 살리고 동료 배우와 제작진의 노력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하며 정중한 논의 속에 장면들을 살려나간다. 지치지도 않는지 최근 개봉한 '암수살인' 때도 같은 작업을 반복했음을 함께 연기한 배우 주지훈의 인터뷰에서 들었다.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영화(Perfect Strange)가 원작인 영화다. 한국적 상황으로 연착륙시키지 못하면 블랙코미디의 백미라 할 허를 찌르는 공감과 멀어질 수 있다. 더군다나, 이따금 베란다로 나가고 침실 내 욕실로도 가지만 주로 7인의 주인공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얘기하는 형식이 기본 틀이기에 상황과 상황, 사연과 사연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게 중요한 작품이다. 동시에 관객이 절대로, 주인공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이야기한다고 느끼거나 왜 저 주인공들에겐 죄다 사건이 일어나느냐고 의구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지만 평범해선 안 되고, 관객의 혼을 쏙 뺄 만큼 흥미로워야 하지만 인위적으로 번잡해서도 안 된다.

유해진은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일등공신으로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과 각본을 쓴 배세영 작가를 꼽았고, 대단한 표현력과 찰떡호흡으로 라이브 연극을 방불케 하는 연기를 해 낸 배우들이 이를 현실화했다고 설명했다. 그것뿐이었을까. 앞선 이서진의 인터뷰에서 그는 썰렁하다고도 할 수 있는 유머로 상황과 상황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파급효과를 키워가는 재능이 유해진에게 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유해진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자칫 감독과 작가, 동료배우들의 공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일이 될까봐, 스스로 행하는 지나친 자랑으로 비출까봐 경계했다. 한 편의 연극 무대와도 같은 영화 촬영장에서 즉흥적 애드리브를 얼마나 했는지 묻고 또 묻자 그제서야 "애드리브는 아니고요"라며 "미리 상황을 만든 거죠, 관객들이 수긍하실 만한 상황을요"라고 답한다. 그 납득할 만한 그러면서도 영화적으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도 "아휴, 자랑하는 것 같아서"라고 말하며 부끄럼을 탔다.  

 

▲ 염정아와 함께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부부를 리얼하게 연기한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독자와 관객의 이해를 도와 달라며 구체적 예를 졸랐다. "(인터뷰 테이블 인근에 앉아 있는 홍보사 직원의 의견을 확인하듯) 이런 거 얘기해도 되나, 그거 연상. 스포일러가 되나?" 아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낸다. 먼저 태수에 대한 설명부터.

"태수(유해진 분)를 고압적 인물로만 생각했는데 그런 인물에게 빈 구석도 있고 그런 것 때문에 웃을 여지도 있고. 완전히 고압적인 것만 나오는 게 아니라 간혹 아내나 친구를 챙기려고 하는 모습도 있어요.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 아내에게는 '물곰탕, 왜 안 먹어?'. 게이 친구한테는 '가만있어' 지켜주려는 모습도 있고요. 여러 가지 모습이 합쳐져서 태수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단면만 보여줬으면 정은 안 가겠죠, 많은 사람의 모습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이 나쁜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변호사라는 직업도 날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직업 정도인 거지 그 직업 자체가 중요하진 않고요. 여러 모습 중에 태수에게는 사진을 보내오는 여자가 있는 것도 그 하나인 거죠."

"애드리브보다는 상황을 만들었어요, 감독님과 상의해서요. 관객으로부터 다행히 좋은 반응 나오면 좋은 것이고요. (기자: 예를 들면요?). 윤경호 씨(영배 역)랑 베란다에서 얘기하잖아요, 여자가 있어, 열두 살 차이(태수), 서른셋?(영배), 아니 오십칠(태수). 여자가 연상인 건 제가 생각한 거예요. 흔히 남자 쪽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걸 깨는 재미가 있는 거죠.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 깨는 걸 좋아해요. 여자가 연하인 원래 버전대로 찍고 연상으로 하나 더 찍었어요, 선택은 감독님께서 편집실에서 하세요, 했고요. 연상을 택하셨더라고요. 그럼으로 해서 파생되는 게 많아요. 태수가 여자가 키티 잠옷을 입는다고 말하잖아요. 오십대 여성이 키티 무늬 잠옷을 입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이 풍성해져요. 여자가 연상인 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 왜 연하여야만 되느냐 말하게 되는 거죠."

혹시 이런 저런 장면도 그러하느냐 자꾸 찌르니 몇몇 장면에 녹아든 유해진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도 "애드리브 아니고 감독님과 배우들과 다 미리 상의한 거예요,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재미있게 느끼실 만한 상황들을요"라고 말하며 "(기사로) 쓰진 않는 거죠? 또 스포일러랑도 관련이 되니까 아직 안 보신 관객들께 예의가 아니다 보니"라고 말하며 손사래를 친다. 이제 영화를 볼 관객을 위해 장면들에 대한 설명을 옮길 순 없지만, 관람 시 참고하시라는 의미로 간단히 적자면 "네 거면 깨져도 돼?", "누나가 더 포근해", "왜 그만둬. 넌 그게 문제야, 새끼야" 등의 대사와 관련된 장면에 유해진의 생각과 고민이 녹아 있다. 

 

▲ 영화 안뿐 아니라 밖에서도 주연 역할을 톡톡히 하는 배우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주지훈이 선배 김윤석에 대해 말했던 표현, "어떤 장면이나 연기가 이 결이 아닌 것 같다, 영화 흐름과 맞지 않다고 생각할 때 고집이 아니고 우직하게, 시간을 내고 쉬는 시간을 빼서 감독님과 제작진과 회의를 하는 우직함을 닮고 싶어요. 전혀 무례하거나 매너 없거나 그러지 않고,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정중하게 말해요". 그런 우직함과 정중함이 유해진에게서 보였다.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했던 작업이에요. 그래야 한국에서 더 이해가 되죠. 외국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맞지 않을 수 있어서 '우리화' 하는 게 필요했어요. '쟤네는 왜 계속 말도 안 되는 휴대전화 게임을 하면서도 계속 저렇게 앉아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니까 주인공들이 식탁을 못 떠나게끔 하는 장치도 있어야 할 것이고, 근본적으로 기본적인 게 우리 정서에서 (밖으로) 나가 있는 게 있지만 어쨌든 눈치 못 채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게 중요했죠. 다 이해시키진 못해도 양해를 구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게 중요했죠. '소소해 보이지만 이것부터 해결하고 가야하지 않느냐'라는 저의 의견에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진심을 다해 연기하고, 작품 전체를 생각하며 촬영에 임한 배우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작품에 대한 애착, 그리고 만족감이 크다는 것이다.

"숨어 있는 말들이 많아요, 슬쩍슬쩍 지나가는 말들 중에 의미 있는 말들이 있어요. 또 자칫하면 한 공간에서의 답답함이 있을 수 있는데 조진웅(석호 분) 부부의 욕실에서의 대화, 베란다로 나가서의 환기를 보태 적절하게 구성이 잘된 영화예요. 배우들이 한 달을 함께 지내며 저녁이면 찍었던 것, 내일 찍을 것을 얘기하며 준비했던 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잘하면 좋은 작품 나올 것 같다, 이런 작품 잘돼야 하는데' 이런 얘기도 상당히 서로 많이 했고요."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작품이에요. 배우에게도 이런 일이 자주는 아녜요. 이런 종류의 웃음을 좋아해요, 블랙코미디. 그런데 거기에 짠한 것도 들어 있어서 더 좋고요." 

 

▲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 머리를 맞대 상황과 장면을 만든  배우들을 극찬한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해진은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이재규 감독이 서있었다고 강조했다.

"감독이 날도 추운데 모니터 보고 있는 게 짠해서 '고생했다'고 말했더니 문자가 왔어요, '선배님도 고생하셨다'고요. 좀 있다 다시 문자가 오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 하고 울고 있다고요. 되게 똑똑한 친구인데 그 정도 말에 눈물이라니, 그 뒤로 마음이 확 가더라고요. 감독의 인간적 모습이 참 좋았어요."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이서진에게는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깔끔함이 있어요. 끈적이지 않은 인간미가 있어요. 어떤 선행을 하더라도 생색내거나 하지 않아요. 누구에게 뭘 주면서도 '집에 있어서 가져왔어' 이런 식이죠. 이슈화 되는 걸 싫어해요. 그분이 입는 것이나 뭐나 허세가 있지 않더라고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것, 솔직히 이번에 알았어요."

"조진웅도 처음 작품 함께한 건데, 잘 따라오고 편안함이 있고. 연기하는 거 보면 '참, 역시 조진웅이구나' 하는 대단한 게 있고. 석호의 대사가 재미없는 말일 수 있는데 '저렇게 설득력 있게 하네' 싶게 잘해요. 영화 보면서 더 느꼈는데, 찍을 때도 '말맛이 없는 말들을 어떻게 저렇게 잘해낼까, 설득력 있게 잘할까' 생각했죠. 홍보를 위해 인터넷 중계방송 출연했을 때도 '참 말 잘하네' 싶었죠. 비유나 이런 게 참 적합해요, 멋있죠.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배우인 것 같아요."

"염정아 씨는 원체 예전부터 많이 봤는데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더 편한 사람이구나'를 이번에 느꼈어요. 서로 연기를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하는 것도 없고, '이거 먹어 봐' 뭐 하나라도 비타민 알약이라도 주려 하고. 약간 차갑게 생긴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세월이 가면서 더 그런 게 있겠죠." 

 

▲ 잘 늙기 위해, 꼰대가 되지 않으려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배우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멋진 배우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배우고자 하기에 이토록 열심히, 함께 한 이서진의 표현을 빌면 그토록 예민하게 힘을 들여 연기하나요?

"잘 늙어간다는 게 쉽지 않아요. 꼰대가 되어 가는 것 같고, 스스로 조심하고 체크하며 사는 거죠".

 

영화 '레슬러'만 봐도 유해진은 배우로서 '따뜻한 어른'으로 나이 들고 있다. 딸뻘의 젊은이가 프러포즈 공세를 해도 청춘의 흔들림은 이해하되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되레 인생 선배로서 격려를 안긴다. "그러려고 하는데 그렇게 비쳐지는 게 있다면 다행이고요".

거듭 묻는다. 어떤 배우이고 싶나요.

"잘 'fade-out'(페이드 아웃) 되는 배우이고자 합니다. 배우라는 게 이름 앞에 붙었을 때 어색하지 않을 정도…."

나타나는(fade-in) 걸 업으로 삼는 배우가 배우로서의 전성기에 아름답게 사라질 일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남달라 보였다. 이름 앞에 '배우'를 붙였을 때 이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배우 유해진의 내일이 오늘보다 기대되는 이유다. 떠나보내지 않고 곁에 두고 싶은 까닭이다. 

 

▲ 배우라는 표현이 수식어가 아니라 이름처럼 느껴지는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인터뷰를 한참 전에 써놓고도 출고를 못 했다. 이런 좋은 배우의 이야기를 내가 잘 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멈추질 않았다. 이 두려움의 크기가 배우 유해진이 주는 무게감이고 유해진 '내면의 방'의 크기가 아닐까 또 감히 짐작해 본다. 인터뷰 출고에 앞서 영화 '완벽한 타인'을 한 번 더 봤다. 평일 오전인데 제법 객석이 빼곡하다. 이 화려하지 않은 영화가 개봉 후 6일 동안 184만명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실이 살갗으로 느껴져 반가웠다.

 

U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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