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삼청동천 물길 따라가며 만난 갤러리들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4-13 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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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삼청동으로 길에는 갤러리가 밀집되어 있다. 삼청로 입구에 있는 ‘갤러리 현대’ 본관 앞에 ‘한국화의 두 거장 청전(靑田)·소정(小亭)’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전시준비 중인 화랑 안을 들여다 봤다. 법련사 옆에서는 알타이 유목민 의약품 지원을 위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복대여점을 지나자 다시 갤러리다. 아트큐브와 갤러리 현대 별관, 금호미술관이 이어진다. 인사동 갤러리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삼청동까지 확장된 게 아닐까.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개조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013년 12월에 개관했으니 이제 미술관 나들이를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삼청동을 떠올려야 한다.  

 

▲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전경 [정병혁 기자]


전시가 하루밖에 남지 않은 ‘뒤샹전’ 때문인지 국립현대미술관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도슨트 해설을 따라가며 듣다가 전시물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혼자 천천히 전시를 둘러봤다. 

 

뒤샹 하면 연상되는 것이 소변기 작품이다. ‘샘’이라는 작품명이 붙은 이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는 흥미롭다. 당시 미국 독립예술가협회 이사였던 뒤샹은 조지프 스텔라, 아렌스버그와 함께 모트 철강 제품 소변기를 맨해튼 쇼룸에서 구매한다. 그리고 오프닝 이틀 전에 전시장으로 옮겨놓는다. 전시회 감독들은 샘을 두고 논쟁을 했고, 결국 조각 전시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뒤샹을 옹호하는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는 작품 샘을 잡지에 싣고, 무엇이 예술인지 결정하는 것은 예술가임을 천명한다. 

 

뒤샹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에탕 도네’ 영상물이었다. 에탕 도네는 뒤샹이 예술가로서 삶이 끝났다고 선언한 이후 20년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만든 작품이다. 1968년 그가 사망한 뒤 에탕 도네가 공개되었다. 폐쇄된 작은 방에 설치된 디오라마 작품은 1969년 7월 7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 이번 뒤샹전 ‘에탕 도네’ 영상에는 처음으로 당시 작품을 관람한 사람들의 반응과 표정도 담고 있었다. 

 

▲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정병혁 기자]

미술관에서 뒤샹의 도록을 사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 도시 산책 중 우연히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 바람이 현실이 되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뒤샹과 그의 삶을 얘기했다. 카페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시 혼자 삼청동천 상류를 향해 걸었다. 아리리오 갤러리를 지나 학고재 안으로 들어갔다. 김호득 ‘문득, 일필휘지로 돌아오다’는 큰 붓을 과감하고 거침없이 휘두른 작품들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쫀득쫀득한 찰떡 같은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선승(禪僧)의 깨달음 같다. 


한양 도성이 그려진 옛 지도를 보면, 경복궁 뒤로 백악산(북악산)이 보인다. 백악산은 세 개의 골짜기로 나뉘는데 서쪽 사면에서 경복궁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백운동천이고, 동쪽 사면에서 경복궁 왼쪽으로 흐르는 것이 삼청동천이고, 백악산의 북서쪽 사면을 돌아 흐르는 것이 백석동천이다. 삼청동천은 경복궁 동쪽 담을 따라 동십자각, 혜정교를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 들어갔다. 골짜기에 흐르던 물을 기준으로 궁궐과 관가가 나뉘었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청동’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주요 골짜기 중 하나인 ‘삼청동천’의 중류를 말한다.

 

▲삼천동 전경 [정병혁 기자]

삼청동이라는 지명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온다. 산과 물이 맑아 사람의 마음도 맑아진다고 해서 ‘삼청(三淸)’이라는 것과 도교의 삼위를 모시는 삼청정(三淸殿)이 있어 붙여졌다는 것이다. 


‘바라캇서울’을 끼고 삼청공원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작은 가게가 이어진다. 삼청문화거리.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북촌이다. 카페와 액세서리 가게, 옷가게를 지나자 어디선가 빵 굽는 냄새가 난다. 

 

삼청파출소 근처에서 ‘소격서 터’라고 적힌 안내판을 발견했다. 소격서는 조선 시대 도교의 의례를 거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조선이 유교 이념으로 건국됐지만, 초기 왕실에서는 기복이나 국가의 흥망과 관련된 제사는 도교적 의례로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중종 때 사림파들의 요구로 폐지되었다가 조광조 실각 이후 다시 만들어지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기차 박물관.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다니. 반갑고 놀라서 선뜻 들어섰다. 다양한 기차 모형이 전시되어 있고, 실제 증기기관차의 종이 있다. 묵직한 기차 모형을 가지고 놀 수도 있고 진동의자에 앉으면 기차의 진동과 소리를 체험할 수도 있다. 기차 모형을 수출하는 회사가 운영하는 이 박물관은 기차 마니아에게는 더 흥미로운 공간일 것 같았다. 


삼청공원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 내려오며 ‘과학책방 갈다’를 찾아갔다. 골목 입구에 안내 표지가 없어서 찾기 쉽지 않았다. 책방을 열고 첫 번째 오프라인 프로젝트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강독하는 모임을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과학책을 팔고 있었지만, 책방보다는 과학을 좋아하는, 과학을 알고 싶은 사람들의 살롱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학이 문화가 되는 책방’이라는 슬로건과 딱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한 시간 전쯤 강의가 끝났다는 지하 1층 강의장을 내려가 보았다. 휴일 오후에 뭔가를 배우겠다고 모였던 사람들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평소 갖고 싶었던 과학책 한 권을 사 들고 문을 나서는데 굵은 빗방울 하나가 머리 위로 툭 떨어졌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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