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떻게 노벨상 강국이 됐나?

김문수 기자 / 기사승인 : 2018-11-05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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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도 책을 읽는 독서 강국
日 'OECD 사고능력 부문 세계 1위'
뛰어난 젊은 과학도 국가가 지원

일본은 전 세계를 통틀어 노벨상 강국이다.

 

첫 노벨상은 1949년 11월 3일(문화의 날).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아직 전후 점령기였던 당시 유카와 이데키가에게 낭보가 전해졌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에서 불과 4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묘하게도 원자 폭탄과 가까운 소립자 이론인 '중간자 이론'을 체계화한 공로로 수상, 유카와는 패전 직후 일본 국민에게 큰 자신감과 감동의 희망을 안겨줬다.

 

▲ 혼조 교수가 올해 면역학 분야에서 암 치료에 획기적인 성과를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탔다. [자료사진]


1901년 이후 반세기 만에 노벨상 쾌거를 이룩하면서 올해(2018년)까지 일본은 비(非)서양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27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중 3명은 수상 시점에서 외국 국적을 취득했다.

 

21세기 들어 자연과학부 부문에서 국가별로 따지자면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특히 2000년부터 해를 거의 거르지 않을 정도로 눈부신 업적을 내고 있다. 일본은 이제 경제학상을 제외한 모든 분야를 석권했다.

 

 

한국은 노벨상 수상자(평화상 제외)가 없다. 세계 인구 최대국인 13억 중국도 노벨상 수상자가 12명에 불과하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에 버금갈 정도의 학문 역량을 갖춘 두 나라(韓中)에 비하면 일본의 업적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여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노벨 강국 일본의 학문적 힘은 어디서 나올까?

역사적 배경(교육환경)

메이지 유신의 개혁

일본인의 교육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학교건립(게이오대학)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영웅 같은 인물이다. 가장 비싼 지폐 1만엔 권에도 올랐다. 후쿠자와 유키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탈아론(脫亞論)'이다. 후쿠자와는 서구 문명을 도입해 근대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제창했다. 바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열강들과 같은 노선을 걷자는 이론이다. 엄청난 파급력을 나타냈고 결국 메이지유신(1868년)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이 환골탈태한다.

메이지 정부는 '학제', '징병령', '지조개정' 등 개혁을 추진하면서 부국강병과 군사적 강화, 자본주의로의 진입이 시작된다. 이 중에서도 '학제'를 선진 유럽 문명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는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서양 학문을 받아들인 것이 일본의 구태 '봉건체제'를 근대 사회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현재 일본의 노벨상 학문적 기반은 유키치가 외친 '서구교육'과 '독서문화'의 발판에서 비롯된다.

일본 독서문화

훌륭한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좋은 두뇌와 풍부한 상상력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타고 나는 것만은 아니다. 독서는 두뇌계발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훌륭한 과학자 덕목이 상상력이라면 상상력을 길러주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 책을 통해 상상력을 기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명암(明暗)은 엄청난 과학적 발견을 했을 때 갈릴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엄청난 독서가였다. 이들 중에 독서광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책과 담을 쌓고 지낸 노벨 수상자가 거의 없다.

일본도 노벨상 강국이 된 데는 독서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인의 독서력은 대단하다. 지난 2003년 OECD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이 미국 6.6권 1위에 이어 일본이 6.1권으로 2위다. 다음 프랑스 5.9권, 독일, 영국, 중국(2.6권) 순이다. 우리는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이다. 이 데이터는 최근에도 변화가 없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은 연평균 8.3권으로 월간 0.69권의 책을 읽는다.

이 조사는 2000년 이후 노벨상 1, 2위인 미국과 일본의 독서량이 거의 일치한다. 독서문화가 노벨상 수상을 말해주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흔히 일본 사람은 넝마주이도 쓰레기통을 뒤지다 책을 발견하면 '먼저 읽고 폐품처리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서문화가 보편화해 있다.

국가 정책

'문자-활자문화진흥법' 제정

새 밀레니엄 들어 점차 독서량이 감소하고 출판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다. 일본은 급기야 독서문화 진흥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문자-활자문화진흥법(2005년 7월)'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독서량 감소에 위기감을 느낀 국회의원 286명이 당파를 초월해 '활자문화의원연맹'을 결성해 법 제정을 추진한 결과다.

세계 제3의 경제 대국이자 세계를 이끄는 G7의 유일한 아시아 국가. 아시아에서는 부동의 원 탑이라고 봐도 무방한 국가. 수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의 개발도상 국에게 그 롤모델이 된 국가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른다. 지금의 한국도 일본을 철저히 벤치마킹한 결과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해 열강이 된 비서구권 국가로 유일하게 그 열강들과 겨루는 강국이다. 일본 정부는 근대화 이후 독서문화로 축적된 기술력과 경험이 힘의 원동력이라 믿는다.

일본 정부의 독서문화 장려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OECD가 24개국 성인(16~66세) 16만6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의 조사 끝에 지난 2013년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언어능력', '수리능력', '컴퓨터 기반 문제해결 능력'에서 전 부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 교육 전문가들은 사고력 전반에 관해 우위를 차지한 것은 정부의 대범한 ‘문자-활자문화진흥법’ 정책에 기반 한다고 분석했다.

노벨 겨냥한 과학자 육성

일본 정부는 '과학기술기본계획'에 노벨상 수상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2001~2005년)은 향후 50년 내(2050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30명 이상 배출한다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토대로 국제적 평가가 높은 논문비율을 증가시켜 노벨상 및 국제과학상 수상자를 미국만큼 배출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지(知)를 창조하고 활용해 세계에 공헌하는 일본'의 슬로건이 국가 미래상이다.

테뉴어 트랙(tenure track) 보급 및 정착사업

일본 문부과학성은 2006년부터 종신재직이 인정되는 ‘테뉴어트랙(tenure track)’을 도입했다. 뛰어난 젊은이의 자립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문부과학성이 자체적으로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전 세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분석한 결과 노벨과학상 수상의 결정적 계기가 된 연구업적은 대부분 30대에 이뤄졌음을 주목했다.  

 

하지만 일본 내 30대 젊은 연구자들은 대부분 박사연구원 또는 조교로서 자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사람이 드물었다. 젊은 연구자 양성이 시급함을 인식했다. ‘테뉴어트랙’을 통해 이들이 자립적 연구환경 구비 및 안정적인 진로 확보가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대학 연구문화 특성

일본 이공계 대학원 연구실은 대개 도제 시스템 방식으로 구성된다. 교수 이름을 딴 연구실에 주임교수 산하에 준교수를 두고 준교수 아래 다시 조교와 강사, 박사연구원, 석사를 배치하는 구도다. 이는 연구실 지휘부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연구 지속성을 통해 학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구도다.

연구실에서 양성된 뛰어난 후임 교수가 연구실을 물려받아 축적된 연구자원을 꾸준히 계승-발전시켜 노벨상에 도전하는 최적화된 구도를 이룬다. 뛰어난 박사학위 취득자가 자신의 연구실에 조교로 임용되고, 조교 중에서도 연구실적이 우수한 자가 다시 준교수로 승진한다. 이 구도로 구성된 도제 방식은 전문기술, 노하우 등 학문 업적이 승계돼 해외 진학률이 낮다. 굳이 구미유학을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자국 교육계 전반에 학업 성취도와 만족도가 높다.

자연과학 연구에 좋은 자연환경

지난 100여 년간 세계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될 수 있는 데는 ‘자연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냉대기후부터 열대기후까지 다양한 기후대가 존재한다.

 

게다가 열도로 이뤄져 해양 생태계에 생물군이 폭넓게 서식한다. 활발한 화산활동과 지진도 지질 및 화학 실험연구에 좋은 기반이 된다. 학자들은 일본의 다양한 자연환경이 자연과학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노벨과학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는 일본의 자연환경이 큰 몫을 한다.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

일본의 노벨상 강국은 거저 된 것이 아니다. 후쿠자와 이후 150년 이상 지속해온 독서문화 진흥정책이 강국의 역량을 키웠다. 노벨상 연구와 관련한 창의성과 사고력 증진을 위한 기초를 다듬은 것이 우리와 대비된다.

 

또 이공계 분야의 학생들에게도 철학과 문학, 역사 등 인문학 분야까지 두루 섭렵하도록 지도하는 교육방식도 구미(歐美)와 흡사하다. 특히 국가가 정책적으로 노벨과학상을 뒷받침, 엘리트 박사들이 자국 내에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시스템을 구축한 점이 우리와 다르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혼조 다스쿠(本庶佑·76세) 교토대 특별교수는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대학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이 큰 힘이 됐다"며 "근원적으로는 노벨상 수상과 관련된 창의성이 폭넓은 독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혼조 교수는 올해 '면역학' 분야에서 '암 치료에 획기적인 성과를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탔다.

 

UPI뉴스 / 김문수 기자 moonsu44@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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