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46개국 8만km 대륙횡단 [창간특별기획]

UPI뉴스 / 기사승인 : 2018-11-17 17:46:35
  • -
  • +
  • 인쇄
[장감독의 대륙횡단] Episode#1
태초에 말썽이 있었다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무려 1년에 걸쳐 SUV 차량 하나로 46개국 79,365km에 이르도록 종횡무진 대륙을 달린 사나이가 있다. 장용우. '거지왕 김춘삼' '호텔리어' '행복합니다' 등 수십편의 MBC, SBS 간판 드라마는 물론 JTBC 'D데이' 등 대작 드라마로 유명한 드라마 감독이다. 그가 이번엔 평생 꿈꾸어 오던 드라마형 로드다큐를 제작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3테라바이트에 이르는 HD급 동영상과 수만장의 고화질 사진에다 기성 작가 수준을 넘어서는 그의 필력으로 UPI뉴스 온오프라인 채널에 '장감독의 대륙횡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럽과 아시아 대륙 곳곳의 현장에다 온몸을 던져 이를 담은 영상과 기사. 그 장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감동은 우리를 또다른 세계로 이끈다. [편집자주]   

 

못먹어도 고!   

 

▲ 호닝스버그. 작은마을이지만 여름철엔 관광객들이 엄청 모여든다. 비행장도 있다 

 

핀란드에서 노르웨이 국경을 넘어 계속 북으로 향했다. 

 

눈과 얼음으로 덮힌 E69도로를 따라 호닝스버그 Honningsvåg에 도착했을땐 오후 3시였지만 이미 마을은 어둠이 내려 한밤중이다. 목적지 노르카프 Nordkapp(North Cape)까지는 33km를 더 가야한다. 짧은 거리지만 통행량이 적어 도로사정이 어떨지 모른다. 구글맵의 지형도를 정확히 해석하기는 힘들지만 산을 넘는게 틀림없다. 트럭루트가 아니어서 제설차가 자주 다닐 것 같지도 않다. 관광시즌도 지났다. 마을을 한바퀴 돌며 기웃거리다보니 인포메이션센터도 문을 닫았다. 공짜 지도 얻기는 틀렸다. 좀 망설인다. 타운에서 머물렀다 해뜨면 올라가느냐 아니면 이 우울한 마을을 벗어나 조용한 캠핑사이트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북극의 고독을 녹이느냐. 나의 본능이 나즈막히 속삭였다. “못 먹어도 고”

노르웨이 북쪽 끝. 북위 71°10’ 21” 자동차로 갈수 있는 대륙의 최북단. 노르카프는 그렇게 멀고 외진 곳이다. 동쪽끝(동해항)에서 출발해서 북쪽끝인 노르카프를 방문하고 다음엔 서쪽끝인 포르투갈의 호까곶을 찍은 다음 남으로 지브롤터를 건너 갔다 집으로 돌아오면 유라시아 라운딩이 완성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동서남북으로 한바퀴 거하게 도는 셈이다.

이완 맥그리거의 ‘Long way round’는 런던에서 뉴욕까지이다(‘물랑 루즈’ ‘스타워즈)’ 등으로 유명한 영국배우. 바이크 광팬. 2004년 절친 찰리 부어맨과 BMW 오토바이를 타고 런던에서 뉴욕까지 총 31000km를 달렸다. 이를 ‘Long way round’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바이크 여행자들의 전설. 유튜브 https://youtu.be/4-0uBcnmE2M) 그런 여행은 점에서 점을 향하는 목적지향, 임무완수형의 편도여행이다. 바이크(오토바이)여행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은 질주한다. 두바퀴는 멈추면 쓰러진다. 자동차는 멈추어도 넘어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어디든 느긋하게 머물러도 된다는 은유로 받아들인다. 점과 점을 연결하면서 몇개의 거대한 면을 만든다. 각 면은 여행자가 부여한 주제와 싱크된다. 미술, 음악, 영화, 홀로코스트, 유네스코세계유산, 한인이민역사, 와이너리 등. 다양한 주제에 따라 면(aspect)을 구성할 수 있다. 점에서 점을 향하는 선의 여행이 목적지향이라면 면의 여행은 과정중심이다. 미술관을 찾아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고 가는 길에서 만나고 겪게 되는 일들이 여행을 풍요롭게 채운다. 치밀한 계획보다는 근거없는 육감에 의존하게 된다. 단, 고생을 각오해야 하고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홉살 아이의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다가올 사건을 기대해야 한다. 그것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 양고기 샤슬릭이건 몽골초원 한가운데서의 타이어 펑크건, 닥쳐올 행운과 고난을 모두 즐겨야 한다.

호닝스버그에서 맥주와 연어를 실었다. 수퍼에서 만난 울히 아줌마가 백곰표 캔맥주(Isbjørn, Polar Bear)를 추천해 주었다. 그녀는 이민자의 언어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이다. 도대체 오후 2시부터 깜깜한 동네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예상문제의 답은 예상되는 대로이다. “우리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들뜬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단다. 삶은 어디나 마찬가지 아니겠니” 상뜨 뻬쩨르부르그 이후 핀란드를 거쳐 오면서 닷새동안 묵언수행 한 탓에 혀가 굳지 않았는지 궁금해서 말 걸어 본거다.
 

▲ 노르카프 Nordkapp


마을을 떠나기 전 캠프사이트 두군데를 구글맵에서 찾아 두었다. ‘노르카프 캠핑’(Nordkapp Camping, 71.027667, 25.888666)에 도착하니 입구엔 아무도 없다. 기웃거리니 픽업트럭이 다가오고 매니저가 안내를 해준다. 날이 추워 물이 얼기때문에 텐트장은 폐쇄되었고 캐빈을 이용해야 한다는데 그나마 1인실은 없단다. 여기가 어디인가. 노르웨이는 비싸다. 산유국임에도 휘발유값이 유럽에서 제일 비싼, 러시아의 3배인 신비한 나라다. 그 신비함에 혹하면 거지된다. 나는 가난한 여행자 아닌가. 하룻밤 200달러가 넘는 돈을 내고 오두막집에서 혼자 잠만 자기는 억울하다. 아직 초저녁이라 좀 더 노르카프쪽으로 접근하기로 한다. 어차피 1주일은 머물 각오니까. 한적한 곳에 텐트 치고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오는 오지탐험가처럼 지내리라 마음 먹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평생 한번도 못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퍼에서 만난 울히도 행운을 빌어주었다. 태양풍이 알맞게 불어주어야 하고 밤하늘에 구름도 없어야 한다. 국경을 넘어 호닝스버그까지 오는 동안 내내 흐린 날씨였다. 멀리 북극해의 수평선 위로 시커먼 폭풍우가 쏟아지는 것도 목격했다.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용이 금방이라도 검은 바다를 뚫고 솟아오를 모양이었다. 일주일을 버티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운칠기삼으로 살아온 인생이니 이번에도 운에 맡기자 마음 먹었다. 


오로라, 오로지 오로라였다


오로라, 오로지 오로라였다. 그 먼길을 달려 이곳에 온 명백하고 단순하며 불가역적인 이유이다. 아주 어릴적부터 책에서 읽었던 신비한 자연현상. 초록의 커튼이 북구의 하늘에서 춤추면 늑대들이 우짖고 공주는 잠에서 깨어난다. 신화에도 등장하고 영화에서도 보았던,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볼 수 없는 비밀의 향연. 적어도 나의 친구나 지인들 중에선 단 한명의 목격자도 없다. 서양친구들은 노던라이츠(Nothern Lights)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런 형이하학적인 네이밍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건 그냥 불빛이 아니라 자연 속에 스며있는 영혼의 아름다운 행위예술이다. 거대한 우주로부터 나약한 인간에게 보내는 간절한 메시지이다. 발음부터 신비하지 않은가. 오로~라. 로의 발음에 주의해야 한다. 혀끝이 입천장을 잔잔히 때리며 트레몰로 하는 설전음이 신비를 더한다. 무려 갈릴레오 선생의 작명이다.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획득하고자 하는 아이템이다. 내 인생의 훈장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오로라를 보면 나는 성공한 인생이 되는거다. 그러니까 캄캄한 밤에 노르웨이의 눈덮인 산길을 홀로 가는 위험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을 넘어 두번째 캠핑사이트를 찾아가는 길은 좀 무시무시했다. 약간의 후회가 스멀거리기 시작했지만 콱 눌러버렸다.

그런데, 두번째 캠핑사이트(Midnattsol Camping)에 도착하고 오르막 바리케이트 앞에 차를 멈추고 ‘closed’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보면서 눌려 있던 후회가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친 그 불친절한 널판지 안내판을 보고 한동안 얼어 붙었다. 선택은 많지 않다. 되돌아 가느냐, 전진하느냐. 몇백미터 떨어진 ‘카라반&캠핑’ 건물들도 어둠에 묻혀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되돌아 나가서 다시 타운쪽으로 가든지(노르카프 캠핑의 매니저는 금방 퇴근한다고 했으니 이미 종 쳤다. 2000달러를 준다고 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용맹하고 무모하게 더 북쪽 노르카프쪽으로 가든지 인데 더 이상 캠핑사이트나 숙박업소는 없다. 잠시 묵상에 드니 눈앞에 인터넷기사가 어른거렸다. “한국의 자동차여행자 노르웨이의 북쪽끝에서 동사체로 발견. 무모한 밤운전의 참혹한 결과” “혼자 그런 오지를 방문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 “차에서 맥주캔 발견, 음주운전으로 추정”


후퇴하기로 했다. 기어를 R위치에 넣고 천천히 액셀을 밟는데 갑자기 매우 듣기 불편한 소음이 뒤에서 들려왔다. 그윽그윽 하며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차가 제대로 후진이 되지 않았다. 얼른 브레이크를 밟고 뛰어 내렸다. 뭔가가 차 뒤에 걸린 걸까? 늑대 시체라도 보게 되면 어쩌나 조심스레 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뒷바퀴 안쪽을 살피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뒷바퀴에 걸린 것도 없다. 그렇다면 기나긴 여정을 견디지 못한 이 국산 SUV가 마침내 고장을 일으킨 건가. 하필 이 노르웨이의 산속, 깜깜한 밤, 아무도 없는, 스마트폰 신호도 안잡히는, 어디선가 북극곰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름도 1/4 밖에 안남은, 저녁을 굶어 배도 고픈, 자동차정비라고는 태어나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건가.

그리고...집에서 쫓겨났다

불안이 공포로 변하는 시간은 3초면 충분하다. 패닉이 오려는걸 참느라 애쓰면서 나는 어디선가 읽었던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종종 사용한다는 비상조치법을 생각해냈다. 운전석쪽 뒷바퀴를 힘껏 걷어찼다. 소련의 스푸트니크에 대한 컴플렉스로 탄생한 NASA의 비참한 응급처치가 제발 승리하기를 바라면서 세차례나 걷어차고 다시 차에 올라 천천히 후진시켰다. 긁는 소리가 더 커졌다. 젠장. 망했다. 차에서 내려 아무리 살펴도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차축이(그런게 있는지, 그게 있다면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아주 중요하고 길다랗고 빙빙 돌아가면서 차바퀴를 돌려주는 역할을 하는 어떤 기계장치라고 정의하자) 부러져 어긋나면서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소리를 내는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어떤 부분이 떨어져 차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는 것은 틀림없다. 중고는 이래서 문제야. 새차를 사올걸. 돈 아끼려다 봉변 당하는건 사필귀정이야. 억울해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억울하다. 출발전 정비소 두군데에서 MRI를 제외한 온갖 검사 다하고 갈수 있는 부품이란 부품은 다 갈았다. 타이어 네개도 새걸로 바꾸고 각종 오일도 새로 넣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맞아 아까 노르카프 캠핑의 오두막에 체크인을 했어야 했다. 이 비싼 나라에서 겨우 200달러를 아까와 하다니 한심한 판단이었다. 물론 매니저 여자가 좀 쌀쌀 맞고 건방지긴 했다. 하지만 금발이 원래 좀 그렇지 하고 봐주면 될 것을. 다시 한번 엎드려 차 아래를 쳐다보지만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늑대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밤이 깊어 갔다. 해결이 어려운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이 여행의 시작도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단이었다. 어느 날 이완 맥그리거의 유튜브 다큐를 보고 저거다 싶은 생각에 오토바이를 타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곧바로 면허를 땄다. 모터스쿨의 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고 강도높은 개인훈련까지 마친 후 연습용 오토바이도 하나 장만해서 이른 새벽 서울 시내와 근교에서 실전 연습도 했다. 온몸을 바람으로 맞으며 ‘자유’라는 단어의 새로운 느낌에 전율했다. 그렇게 ’Long way round’를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는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단한번도 아내와 상의하거나 통보한 바가 없는 거였다. 어느 날 드디어 작심하고 나의 이 야심차고 역동적인 계획을 아내에게 브리핑했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났다. 어려서부터 선생님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소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국민교육헌장을 죽어라 외웠지만 그 내용은 단 한가지도 동의하거나 실천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어떠한 역사적 사명같은 걸 가지고 태어난 적이 없다.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소한 문제가 내 존재의 발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 태초에 말썽이 있었다.

UPI뉴스 / 글 · 사진 = 장용우 감독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인물

+

카드뉴스

+

스포츠

+

챔스 불발…17세 이강인, 아직 시간은 있다

17살 공격수 이강인(발렌시아)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데뷔를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이강인은 13일(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 경기장에서 열린 발렌시아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 H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교체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그러나 발렌시아는전반에 먼저 2골을 넣고 리드하자 승리를 지키기...

토트넘, 챔스 16강 간다…바르셀로나와 1-1 무승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가 극적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성공했다.토트넘은 12일 오전 5시(한국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에서 열린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B조 최종전에서 FC바르셀로나와 만나 1-1로 비겼다.2승 2무 2패 승점 8로 조별리그를 마친 토트넘은 승점 동률을 이...

박항서호, 말레이시아 원정 무승부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가 동남아 국가대항전인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의 정상 탈환에한 걸음 다가섰다.베트남은 지난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베트남은 말레이시아의 거친 플레이에 굴하지않았다. 응우옌후이흥과 판반득이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