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시작 안했으면 이번 유치원 사건 없었다"

김이현 기자 / 기사승인 : 2018-10-24 18: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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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인터뷰
"지금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유치원은 왕국"

"남성 밑에 여성, 그리고 그 밑에 엄마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엄마는 여성이 아니라 그 이하다. 마치 화장실 가서 일 보고 오는 것처럼,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사회생활 하지 않으면 못 한다. 잔인한 국가다. 그러나 엄마들이 시작하지 않았으면 이번 유치원 사건의 보도도, 국감도 없었다."

 

▲ 24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정병혁 기자]


지난 11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공개한 '전국 유치원 감사 결과'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게 아니다. 국고 지원금을 횡령하고 아이들 밥값을 유용해도 당당한 유치원, 이러한 유치원을 보고도 눈 감은 교육당국 등과 1년 넘게 싸워온 이들이 있다. 보통 엄마들이 일상의 정치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정치하는 엄마들'이다.

19대 국회의원이자 '정치하는 엄마들'의 공동대표인 장하나씨가 지금까지 없었던 비영리 시민단체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어보니 정치적으로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 그는 "국회의원이든 아니든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아이를 낳은 엄마가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4일 오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온 그를 만났다. 

 

- '정치하는 엄마들'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


"지난 6월 창립한 '정치하는 엄마들'은 '보노보노', 즉 보육과 노동 문제에 천착한다. 아이들이 잘 자라나게 하기 위한 보육 활동을 하고, 여성(엄마)들의 노동권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이는 서로 맞물려 있다. 여성이 출산하고 나면 직장인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민간기업의 여성의 2명 중 1명은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다. 출산 후 경력단절은 사실상 사회적인 해고인 셈이다. 따라서 여성이 아이를 낳고 마음 편히 보육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아이들이 받는 차별과 피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아울러 우리 올바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정치·사회·환경 등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 '정치하는 엄마들'이 먼저 비리 유치원 명단에 대한 정보공개를 놓고 정부와 교육청 등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한 바 있는데. 

 

"지난해 2월 국무조정실에서 특정감사를 시행한 보도자료를 냈는데 정작 기관 명단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곳이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학부모의 알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결정이 내려졌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5호, 6호(감사 과정에 있어 공개될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 초래, 개인에 관한 정보 공개가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 침해할 우려)가 근거였다.

 

그러나 몇몇 기관은 공개를 하고 있었고, 다른 기관은 비공개로 되는 등 기준이 모호했다. 기관마다 위법을 따지는 상황이 웃겼다. 올해 5월, 행정소송을 하고 갈 데까지 가보자 생각했다. 국무조정실과 인천시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들을 상대로 소장을 접수하고 지난 5월30일 기자회견을 열었더니 국무조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국가기관이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자료인데 착오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며 95곳의 유치원·어린이집에 대해 벌인 감사 결과와 적발된 91곳의 명단을 7월20일 넘겨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국 시·도 교육청의 유치원 합동점검 담당자들은 이미 지난 7월5일 모여 '공개가 맞다'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공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 것이다. 다음 주에 감사원 감사청구를 통해 악의적으로 숨긴 것을 따져볼 예정이다."

 

▲ 24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정병혁 기자]


- 이번 감사에 드러나지 않은 비리 유치원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굉장히 많다. 가족들이 다 교직원으로 등록해서 많은 경우 교직원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고액의 급여만 가져간다. 심지어는 자기 가족이나 사촌을 조리사로 등록해놓고 월급만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또 교재나 식자재, 특별활동 수업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받을 때 가족, 친인척, 유령회사를 만들어 독점 계약을 한다. 리스회사나 캐피탈회사를 껴서 교구비를 담합하고, 페이백한 뒤 회사와 원장이 차액을 나눠먹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감사 조사에는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 11일 공개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2013년∼2017년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1878곳에서 비리 5951건이 적발됐다. 적발 금액은 총 269억원이다. 전수조사가 아니라 시·도교육청들이 선별조사를 했는데 이 정도 수치다.

-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사립유치원은 엄연한 사유재산이다. 감사리스트에는 사소한 행정 실수도 많은데 전체를 비리집단인 양 매도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주장하는데.

"성인용품 구매나 벤츠차량 리스 비용을 가지고 억울하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힌다. 엄연히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번 감사에서 명단만 적발됐다면 그것도 문제였겠지만, 비리 내용은 무엇이고 금액은 얼마인지 등이 세세하게 나온다. 만천하에 공개된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자승자박이다. 상식적으로 본다고 해도 비리가 일어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 그렇다면 보다 투명한 회계시스템이 도입돼야 할 텐데, 한유총은 왜 자체회계시스템을 주장하는가.

"돈 버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보단 이윤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사립유치원들이 그 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던 것 같다. 교육당국이 손 놓고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적어도 교육당국은 유아교육이 이렇게 심각하다는 걸 감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겠다고 이야기한다. 모르는 사람만 바보 취급당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알권리를 토대로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것이다."

국공립 유치원은 사립 초·중·고교와 함께 국가관리 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통해 회계를 상세히 공개하지만 사립유치원은 예외다. 수기로 장부에 기록하거나 민간 회계시스템을 들여와 입력하는 등 유치원마다 다른 방법을 고수한다. 한유총은 정부와 이견이 있을 때 '집단 휴업'이라는 배수진을 친 바 있다.

 

2017년 2월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사립유치원 회계시스템인 '유아교육종합정보시스템'을 발표했지만 한유총의 집단 휴업 압박에 폐기된 것도, 지난해 정부가 '국공립유치원 확대'와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 방침을 밝히자 다시 집단 휴업 카드를 꺼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 25일 발표되는 교육당국의 '비리유치원 근절 종합대책'을 두고, 장하나 공동대표는 "쓸모없는 대책이 나올 것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유는?

"유아교육을 망친 사람들이 주축이 돼 다시 대책을 만든다고 하는데, 신뢰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너무나 밀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미 큰 세력으로 연결돼 있는 한유총 관련자들과 논의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책 입안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학부모와 평교사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정책입안 과정에서 배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학부모나 평교사들의 제보에 의하면 유치원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마치 설립자나 원장이 왕으로 있는 왕국이라는 소리가 많다. 이러한 적폐를 제대로 뿌리 뽑으려면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참여해야 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동탄센트럴파크에서 열린 '엄마들이 뿔났다! 사립유치원 개혁과 믿을 수 있는 유아교육을 위한 집회'에서 동탄유치원비상대책위원회 학부모들이 사립유치원 비리근절과 유아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병혁 기자]

- 정부 종합대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고, 유치원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지금까지 거론된 에듀파인이나 이른바 '박용진 3법'도 좋다. 다만 가장 중요한 건 교사들의 고용안전이다. 어떤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불이익당하지 않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얼마 전 교육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사립유치원 비리신고센터'를 보고 다들 실소했다. 그것은 단순히 온라인 배너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 비리 제보를 할 때 휴대폰번호를 적어야 하는데, 그럼 교육청에서 유치원으로 바로 연락이 간다. 그전에도 제보를 하면, 지역교육청에서는 이러한 제보 사실을 유치원 원장에게 알리고, 그러면 유치원에서 색출하는 등 익명성 보장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익명이 보장되는 비리신고센터를 만들어 확실한 신변보장을 하고, 해당 유치원을 처벌해야 하며, 비리수법 등을 공유해서 정부와 학부모에 제공해야 한다."

'박용진 3법'은 유치원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해 유용 시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게 바꾸는 내용과 회계프로그램 의무사용, 폐쇄명령 후 10년간 재개원 불가 등이 포함된 유아교육법 개정안, 유치원만 운영하는 설립자가 원장을 겸직하지 못하게 한 사립학교법 개정안, 유치원도 학교급식법에 따라 관리하게 만든 학교급식법 개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명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3법'을 당론으로 채택해 발의했다.

장하나 공동대표는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문제들이 '정치하는 엄마들'에게는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목소리를 내지 않아 사회 이슈가 되지 못했던 것이 많은데,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목소리를 증폭시켜 나갈 것"이라며 웃었다.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다음으로, 이들은 비리 어린이집 명단 정보공개를 청구해둔 상태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만들어낸 작은 균열이 '사립 유치원 비리'를 넘어 또 다시 사회를 뒤흔들 준비를 하고 있다.

 

U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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