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학교에선 모범생, 집에선 폭군…자녀의 괴로운 감정 어떻게 도울까?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6-27 08: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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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자녀는 괴로움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출한다. [픽사베이]


성장기의 자녀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고 얌전한 듯해도 집에서는 부모에게 폭군처럼 굴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마음을 둘 데가 없어 여러모로 노력한다. 부모교육 관련 책을 읽으며 명상을 해도 뾰족한 해법이 안 보인다. 이 시기의 자녀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시원한 결론을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주 학부모 대상의 강연을 하고 나오는데 어떤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네 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참 행복했어요. 지금 아이와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드네요. 예전에 해맑았던 아이 사진을 승용차 앞에 붙여 놓고 바라보곤 해요. 언제 또 그런 표정이 다시 찾아올까요?"
 

순간 "걱정 마세요. 아이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죠. 믿으세요"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다시 찾아온다고 해서 이전의 그 파도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자녀는 성장 과정에 있고 새로운 항해지점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다.
 

"어머니,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 때 쓴 어버이날 편지를 차에 붙여 놓고 그랬어요. 그런데 예전 모습으로는 안 돌아와요. 대신 더 멋진 모습으로 변화돼요. 어머니의 든든한 후원군이 된답니다. 이제 어머니 손을 떠났어요. 응원하며 보내주어야 해요.”


특히 사춘기에 자녀는 괴로움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출한다. 방문을 닫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거나 아무 말도 안 하고 틀어박혀 있기 일쑤다. 계속 부모에게 자기감정을 쓰레기 버리듯 쏟아 놓고선 휙 나가버리곤 한다. 자녀가 자신의 괴로운 감정을 부모 탓이라고 덮어씌우기도 하니 부모의 감정은 시소를 타는듯하게 된다.


때로 부모는 자녀보다 아프고 힘들어진다. 그러나 자녀의 말을 들어주되 그 감정에 같이 휩싸이게 되면 문제는 더 해결되기 어렵다. 하루쯤 무반응으로 말을 아껴 볼 필요가 있다. 자녀는 괴로운 감정의 부담을 덜어보려고 집에서 그렇게 행동한다. 속으로는 갑자기 찾아든 괴로운 감정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부모는 부모대로 막막하고 화도 나게 마련이다. 공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시로 감정이 격해지는 자식이 염려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 못지않게 사는 데 필요한 안테나와 나침반 역할을 한다. 감정이 평안해지지 않으면 공부를 시작하기 어렵다. 어쩌면 청소년기에 지적인 발달보다 감정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다스리는 일이 더 기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 시기는 감정의 뇌를 발달시키는 뉴런(신경세포)이 정교하게 활동하는 시기라고 한다. '괴로운 감정의 극복' 또한 자녀에게 성숙해지는 데에 필요한 경험이고 자극이다.


"OO이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어. 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걔한테 말했거든. 그런데 어느새 온 반에 다 퍼졌더라고. 내 앞에서는 안 그런 척하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젠 아무도 못 믿겠어. 다 소문났으니 어떻게 사느냐고!"


"수학 시간만 되면 괜히 배가 아프고 아무것도 집중이 안 돼요. 내가 잘하려 해도 자꾸 선생님이 나를 지적한다니까. 도무지 궁리해 볼 시간을 안 줘. 무조건 빨리 답을 내라 해. 뭐라는 줄 알아? 글쎄 초등학생도 그 정도는 순식간에 푼다네. 자만하지 말고 더 잘하라나. 내가 지난번 시험을 좀 잘 봤잖아요? 그다음부터 사사건건 나한테만 묻고, 대답하라 그러고. 못하는 친구들 가르치라고 하고."


이렇게 자녀가 일상에서 겪는 괴로움을 맞닥뜨릴 때 부모는 몇 가지 원칙을 숙고해보면 좋다. 

 

■ 상황을 직시해 본다. 두려움이나 괴로움 등의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본다. '잘하고 싶은데 친구보다 자꾸 뒤져서 힘들다'면 자신감이 없어져 생긴 괴로움이다. 친구들이 자기를 빼 고 어울린다든지, 친구 그룹에서 빠져나오고 싶은데 잘 안 된다면 자기 정체성에 관한 괴로움이다. 남이 자기를 무시하는 듯하여 기분 나쁘다면 자존감의 상처로 인한 괴로움이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자주 지적하듯이 독려한다면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괴로움이다.
 

■ 자녀의 괴로운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본다. 보다 또렷하게 자녀가 그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게 구체적인 말로 바꾸어 대화한다. 괴로움의 양상을 질투, 시기, 두려움, 짜증, 불만, 자책, 배신감 등 다른 말로 교체해 본다. 한결 명확하게 감정을 알아차리게 된다. '친구가 네 비밀을 까발렸으니 배신감이 들었겠구나', '네가 OO보다 못하는 게 불안하구나. 잘할 수 있는데 마음이 잘 안 잡히고 혼란스럽구나', '교실에 네가 나타나면 친구들이 갑자기 말을 하다 그친다고? 혹시 네가 왕따인가 싶은 두려움이 있구나', '그 선생님이 세 번이나 너를 지적했다니 친구들 앞에서 언짢았겠다. 세 번은 좀 많지.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었구나'하고 인정해준다. 그리고 살아갈 때 괴로움이 그토록 다양하게 생긴다는 점을 말한다. 전보다 명확해진 괴로움의 감정을 '어떻게 풀까?'하고 함께 의논한다.
 

■ 무조건 괴로운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든지 그런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하면 자녀가 더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부모가 해결책을 고안해서 그대로 실천하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조언은 하되 자녀 스스로 생각해서 이겨내도록 한다. 괴로움의 해소방법이 어른들이 보기에 비효율적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좋은 판단을 해보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 때로는 자녀가 자기의 괴로운 감정을 부모에게 의지하여 다 쏟아낼 때가 있다. 비움으로써 후련해지려고 시도하는 자구책이다. 그럴 땐 부모가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습관이 반복될 때는 자기감정을 남에게 투척하지 말고 조용히 정리하는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해 본다. '너에게 다가온 그 감정을 소중히 안아 봐. 네 안에서 뭔가 느낌을 호소하는 거니까. 그걸 글로 써보든지 그림으로 그려보든지 해 봐', 그리고 운동이나 영화 보기, 좋아하는 친척과 만남 등 문제에서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는 활동을 권해 본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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