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노소영, "4차 산업혁명, 촛불혁명 염원과 반대로 가고 있다"

류순열 기자 / 기사승인 : 2019-02-03 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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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이 독점·양극화 심화시키고 인간소외 야기"
"예술이 기술혁명에 맞서 인간의 주체성 보존할 것"

▲ 서울 종로구 '아트센터 나비'의 디지털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노소영 관장. [문재원 기자]

 

전직 대통령의 딸, 대한민국 3대 재벌가 안주인. 두 타이틀만으로 노소영(57)씨는 특별한 신분이다. 양극화하는 대한민국을 '1대 99의 사회'로 나눈다면 그는 당연히 1쪽일 테다. 그 안에서도 다시 1%에 속하지 않을까. 그런 그가 자신은 "1이 아니라 99"라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에도 관심이 많은데 낙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혁신이 재앙이 될 위험성을 경계한다. 독점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인간소외 현상으로 이어질 것을 걱정했다. "4차 산업혁명은 촛불혁명의 염원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촌평은 반전의 극치였다. 그런 혁명적 언어를 그의 입에서 듣게 될 줄 몰랐다. 누가 봐도 1%인 그가 촛불혁명의 염원을 입에 올리다니. 또 미디어아트 전문가이자 미술관장인 그가 웬 4차산업혁명 비판이란 말인가.

최근 서울 종로구 SK본사 빌딩에 있는 아트센터 나비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SK그룹의 미술관이다. 한시간 반 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1% 신분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과정이었다.

-왜 1%가 아니라 99%인가

"20대 초반의 경험, 인식이 평생 가는 것 같다. 가장 큰 게 '1980년의 봄'이다. 많은 이들이 광주에서 죽었고, 친구들이 데모하다 붙잡혀 가고, 최루탄이 내 앞에서 터졌다. 데모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그런 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고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위치는 0.00001%쯤이었는데 그 위치가 편하지 않았다."

노 관장은 "물론 다른 사람과 내가 같을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품고, 미래 사회에 보탬이 될 바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 시대의 아픔을 나름대로 느꼈고 시대적 모순에 대해 고민했다는 말이다. 그는 "내 친구들처럼 야학을 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봉천동 달동네를 혼자 찾아가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많은 듯한데

"예술과 기술을 주제로 전시할 때였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왜 외로운 사람이 많아지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만든 게 '소셜 로봇', '컴패니언 로봇'이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여기엔 지능이 필요했다. '알파고'가 나오기 1~2년전 오픈소스로 제공되는 인공지능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를 가져다가 시도해보던 중 딥러닝이 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기술의 본질은 무엇이고, 지능은 무엇인지 묻게 됐다."

노 관장은 "지능에는 논리적 추론, 상상력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인공지능은 단지 '패턴 인식'일 뿐이다. 패턴을 토대로 어떤 상황에선 어떻게 움직인다는 식"이라며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딥러닝 계통의 패턴인식 지능은 많은 데이터를 갖고 효율적으로 결과치를 예측할 뿐 이런 지능이 대세를 이룬다면 설명이 필요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설명이 없다면 이해도,반성도 없다. 이는 반(反)지성"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이 생각을 멈춘다면 "정말로 큰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생각을 멈추면 뭐가 남나. 전체주의, 독재로 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 UPI뉴스와 단독 인터뷰하고 있는 노소영 관장. 노 관장은 "기술이라는 괴물과 싸울 방법은 인간의 감정을 더 경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원 기자]

 

-그래서 기술혁신이 촛불민심과는 반대로 간다고 한 건가

"2016년 촛불시위는 '이건 아니지'라는 부정의 연대였다. 이들이 원하지 않는 세계는 분명했다. 소수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사회,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맘대로 군림하는 사회, 도덕성이 무너진 사회였다. 그런데 기술발전의 궤적,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궤적을 통해 바라본 사회는 촛불민심과는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다고 본다."

-저서에서 쓴, '기술이라는 괴물'이라는 표현도 같은 얘기인가

"인간의 인지를 넘어서기 때문에 괴물이라고 했다. 연결성으로 인공지능이 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기술에 잠식되지 않는 게 어떤 게 있는지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인간의 활동이나 존재 자체는 지성이 전부가 아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땐 감정의 역할이 크다. 지성은 그걸 합리화하는 것이고. 정치를 결정하는 것도 감정이 토대다."

"정의란 지성인가, 감정인가." 노 관장은 답변 중간중간 질문도 던졌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우리는 마치 지성인 것 처럼 얘기하지만 정의도 결국 감정의 문제"라고 자문자답했다.

-그래서 기술 괴물을 맞서는 방법이 뭔가

"기술이라는 괴물과 싸울 방법은 감정을 더 컬티베이트(Cultivate), 경작하는 것이다. 이성은 가르지만, 감정은 잇는다. 감정으로 소통하면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공동의 문제를 풀어갈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의 걱정대로 IT혁신은 독점과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미 세계 굴지의 IT기업들은 무수한 개인정보들의 총합인 빅데이터로 막대한 부를 쌓으며 독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대안이 될 것이란 지적도 많다

"지금의 경제 체제에선 양극화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소수의 1%가 엄청난 부를 얻는다. 주목받는 신생 기업들도 엄청난 플랫폼의 끄트머리에 붙여서 뭔가를 하는 경우다. 대부분 인류가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독점에 반해서 나온 게 블록체인이지만 대안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비트코인만 해도 이상은 탈중앙화이지만 현실은 하드웨어 파워를 가진 소수에게 집중됐다."

-철학자나 인문학자, IT전문가를 인터뷰하는 것 같다

"공학도에서 시작해 경제학을 거쳐 미디어 아트라는 생소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 전형적인 아웃라이어(outlier·왕따)다. 공학계에도, 사회과학계에도, 예술계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분야에서 러브콜을 받는다. 융복합 시대에는 나와 같은 아웃라이어들이 필요하다."

 

▲ 노소영 관장은 "철학자나 인문학자, IT전문가를 인터뷰하는 것 같다"는 UPI뉴스의 질문에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예술인에 가깝다"고 답했다.[문재원 기자]

 

그는 "다양성 확보는 생존에 필수적"이라며 "굳이 진화생물학의 교훈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아웃라이어들이 줄어드는 세상은 위험하다. 전체주의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대 공대계열 80학번이다. 2학년때 섬유공학과에 배정됐다. 학교를 거의 다닐 수 없는 시기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윌리엄앤매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시카고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경제학을 택한 것도 80년대 데모를 보면서 불평등에 관심이 생겨서라고 했다. 인간을 합리적·이성적 주체로만 보는 시카고학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스탠퍼드대로 옮겨 노동경제학과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는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 "예술인에 가깝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예술이 대안이라는 얘기인가

"촉촉한 뭔가를 제공하는 게 예술이고 문화다. 경제, 세계, 예술, 문화가 다 따로 존재하는 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드라이'한 기술 문명을 어떻게 촉촉하게 만들 것인가가 나의 숙제다." 노 관장은 "혁신과 상상이 모두 있는 게 디지털 아트"라고 강조했다.

노 관장은 "예술이 기술혁신에 잠식되는 사람들을 지켜낸다는 말이냐"는 물음에 "인간의 주체성을 보존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SK그룹에서 계속 지원하나

"현재까지는 잘 지원받고 있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남편의 선견지명이 특출난 편이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예술도 이렇게 변할 거다'고 해서 어머님(박계희 여사)이 하시던 미술관의 성격을 지금처럼 바꾼 것이다.

 

UPI뉴스 / 류순열·오다인 기자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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