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은 혼자 뛰지 않는다"

황정원 기자 / 기사승인 : 2018-10-30 16:09:03
  • -
  • +
  • 인쇄
사회 참여적 청년 예술 집단 '얼룩말공작소'
"동시대인에 영향 주는 영상 만들 것"
창작과 생계 병행 위한 '먹고사니즘' 어려움도

'얼룩말공작소'를 아는 사람은 안다. 아현포차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다룬 '개발의 추억', 직장 내 여성혐오 문제를 다룬 '9to6', 서울의 청년 1인 가구에 대해 다룬 '서울유학생-자취생으로 살아남기' 등을 만든 곳. SNS와 유튜브를 통해 여러 사회 문제를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카메라를 통해 짚어온 이 소집단의 구성원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지난 29일 그들의 아지트를 찾았다. 잠실 한강공원의 예술 공간 '사각사각 플레이스'에 있는 컨테이너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각사각 플레이스'는 지난 3월 서울시가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영상,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 예술가들이 창작 및 예술 활동을 펼치며 서로 교류하고 작업하고 있는 곳이다. 한강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다양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상설 공연과 전시, 오픈 스튜디오도 함께 운영된다.

 

▲ 지난 29일 오후 잠실 한강공원의 예술 공간 '사각사각 플레이스'에 위치한 '얼룩말공작소'에서 만난 구성원들. 왼쪽부터 구은비 제작팀장, 송준호 마케팅팀장, 최경윤 대표. [문재원 기자]

 

이곳에 입주한 '얼룩말공작소'는 2010년 같은 대학 출신 청년예술가 세 명이 영상예술을 통해 사회적 대안을 제시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해 만든 '창작집단'이다. 여기서 최경윤(28·얼룩말공작소 대표), 송준호(28·마케팅 팀장), 구은비(26·제작팀장) 세 청년을 만났다.

 

- 얼룩말공작소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간단히 소개한다면?

(송준호) "얼룩말 자체가 희한한 존재다. 초원에서 줄무늬는 보호색이 아니라 오히려 맹수 눈에 잘 띈다. 왜 그런 줄무늬를 갖게 됐을까. 얼룩말은 눈에 잘 띄는 대신 혼자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처지가 예술가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들은 개성도 있고 좀 눈에 띄면서 사회와 불화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얼룩말이 단체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도 얼룩말공작소만 하지 말고 다른 단체들과도 함께 연대하자는 의미다. 청년 예술가들의 현실을 짚고 대안을 고민하자는 뜻에서 거창하게 지었다. 그리고 본래 영상이란 것이 다른 예술과는 달리 노동집약적이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 '얼룩말공작소'가 '노잉 커뮤니케이션즈'와 협업으로 제작한 웹드라마 '서울 유학생-자취생으로 살아남기' 시리즈 [유튜브 영상캡처]


얼룩말공작소는  단편영화, 웹드라마,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자들에게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노잉 커뮤니케이션즈'와 협업으로 제작한 웹드라마 '서울 유학생-자취생으로 살아남기' 시리즈는 페이스북 조회수 평균 10만건이 넘고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혼자 사는 청년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최경윤 얼룩말공작소 대표 [문재원 기자]


- 얼룩말공작소가 추구하는 건 무엇인가?

(최경윤) "예술이 갖는 속성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영향을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어려운 것보다 투박할 수는 있어도 최소한 사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아현동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나 여성혐오를 소재로 웹드라마를 만들었다. 사랑 이야기를 다룬 웹드라마를 만들면 잘 팔리겠지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여성 혐오 이슈를 다루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호사 태움 문제는 사실 노동조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영상 의뢰를 받은 건데,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도 경험하게 돼서 좋다."

(송준호) "아현 포차를 소재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다룬 '개발의 추억'은 작년에 서울시 지원사업인 서울예술청년단에서 지원을 받았던 거다. 시민의 돈으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공공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과거 이명박 정권 때 아현동 일대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온상이었다. 그 때 학교를 둘러싼 환경들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걸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 얼룩말공작소 작품들에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돋보이는데?

(최경윤) "평소에 개인적으로 진지하지 못하다. 뭐든 재밌게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심각한 얘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재밌게 하는 일들을 좋아해서 팀 창작물에 영향을 준거 같다." 

 

▲ 송준호 마케팅팀장 [문재원 기자]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최경윤) "다른 청년 예술가 단체인 '노잉 커뮤니케이션즈'와 협업으로 만든 '서울 유학생-자취생으로 살아남기'다. 준호씨가 자취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을 끌어와 감정적으로 자취생들이 공감할만한 짧은 토막 영상을 만들었다. 1인 가구의 삶을 최대한 고민해보고 반영하고자 했다."

(송준호) "서울청년예술단에서 지원받아 작업했던 '개발의 추억'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작품들이 맥락 없이 나오지는 않는다. 영상 내용 중 아현 포차 사장님들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 그 영상을 찍기 위해선 그 분들과 사전 교감을 쌓아야 했다. 갑자기 가서 '인터뷰 찍겠습니다' 할 수는 없는 거다. 당사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연대와 지지의 마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존중해주면서 갔다. 사회문제 자체를 우리의 예술 활동을 위한 소재로만 삼지 않으려 했다."

(구은비) "저는 뒤늦게 들어와 이제 10개월차다. 삼성의 역사나 노동조합 영상에 관해 다루면서 공부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좋다. 특히 부산에서 아시아교류협회가 주관하는 아시아 청년 G20회의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을 영상스케치하면서 즐거웠다."

- 만든 작품 중 아쉬웠던 것은?

(최경윤) "'9to6'다. 그 작품의 경우 시나리오를 쓴 작가분이 여성주의를 집필해보고 싶다고 했다. 저는 남자지만 직장에서 차별받는 여성이라 생각해보고 마음을 반영해보자 했다. 그러나 깊이를 담지 못하고 단순히 못된 남성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에만 그쳐서 아쉽다."

(송준호) "처음 시나리오에 비해서는 대중적인 수준에서 조절했기 때문에, 주제의식만으로 용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지 못했다. 다음엔 한발 더 나아간 작품을 해보려 한다."

 

▲ 구은비 제작팀장 [문재원 기자]


- 그동안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최경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예술인들이 생계와 창작이 분리돼 있다. 아르바이트를 따로 한다. '먹고사니즘'에 바빠 창작이 안 되는 거다.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영상 외주 작업을 해서 고정적 월급제를 하고 있다. 정체성은 영상 창작자집단이지만 프로덕션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양립되기 힘들어 고민이 많다. 또 요즘 영상이 인기가 많아 경쟁자가 늘었고, 따라서 단가가 낮아졌다. 앞으로 양질의 자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구은비) "이곳 '사각사각 플레이스'에 입주하기 전에는 사무실이 없었다. 회의를 카페에 만나서 하거나 주로 문자나 통화로 했는데 전달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 소통이 어려웠다. 다만 이곳에 입주해 소통 면에서 편해지고 '워라밸'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다른 입주자를 만나 축제나 공연 등 협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송준호) "시청이나 구청에서 청년지원 정책을 시행할 때 지나치게 시혜적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청년 이미지를 설정해놓고, 자기들 틀에 맞춰서 청년들을 들러리나 패션처럼 소비한다. 단지 청년정책이니까 청년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지원을 받으면 물론 감사하다. 예산 집행을 할 때도 책임감을 가지고, 가위를 하나 사더라도 다 물어가면서 한다. 그러나 막상 기성세대는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단순히 대통령 일자리 지표를 위한 청년 지원이 아니라, 한 번쯤은 믿고 일을 맡겨줬으면 한다." 

 

▲ 서울 잠실 한강공원에 위치한 '얼룩말공작소'가 작업하는 컨테이너 공간. "얼룩말은 혼자 뛰지 않는다"는 글귀가 눈에 띈다. [문재원 기자] 


'얼룩말 공작소'의 작업 공간인 컨테이너 박스는 입주 작가들이 '가난한 한강 뷰'라 자조할 정도로 작고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청년 예술인의 넘치는 열정과 감각은 눈앞에 놓인 한강의 풍경에 다채로움을 더해주기에 충분했다. 

 

▲ 서울 잠실 한강공원에 위치한 '사각사각플레이스' [문재원 기자]

 

UPI뉴스 / 황정원 기자 hjw@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인물

+

카드뉴스

+

스포츠

+

한국, 우즈베키스탄 4대0으로 완파

한국 축구대표팀의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한국팀은 20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월등한 기량을 선보이며4대0으로 완승을 거뒀다.황의조를 공격 선봉에 내세운한국은 전반 9분 남태희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다. 남태희는 오른쪽 측면에서 올려준 이용의긴 패스를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멋진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시켜 그림같은 선취골을 뽑았다...

'K리그 2 챔피언' 아산, 승격 자격 박탈…성남은 1부 복귀

프로축구 K리그2(2부리그) 우승을 차지했던아산 무궁화 축구단이경찰청의 선수 모집 중단 방침 고수로 인해 결국1부 자동 승격 자격을 박탈당했다.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일 "경찰청이 내년도 선수를 충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아산의 1부 승격 자격을 박탈한다"고 밝혔다.프로축구연맹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아산의 처리 방안에...

한국 우즈베키스탄 평가전, 오는 20일 네이버 TV와 SBS TV를 통해 중계

한국 축구 국가 대표 팀과 우즈베키스탄의 평가전 경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오는 20일(화) 19시 호주 브리즈번 QSAC경기장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과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이 열린다.이 경기는 네이버 TV와 SBS TV를 통해 중계될 예정이다.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피파랭킹 53위이며 우즈베키스탄은 9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