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만이 아냐"…'총수의 탄핵'에 긴장하는 재계

류순열 기자 / 기사승인 : 2019-03-27 16: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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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경영권 상실로 탄력받는 주주행동주의
전경련 충격…"사태 확산으로 기업활동 위축 우려"
지배구조 개선 '메기 효과'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
▲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주주 자격으로 참석해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과 비리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을 지적하며 이사회의 역할을 따지고 있다. 채 의원 발언중 조 회장을 옹호하는 일부 주주들은 벌떡 일어나 "국회의원이냐. 국회로 가라"거나  "공산당이냐"며 막말을 퍼부었다.[사진공동취재단]

 

'조양호'가 아웃됐다.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밀어냈다. 역사적 사건이다. 주주들에 의해 경영권을 상실한 최초의 재벌그룹 총수. 조 회장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렇게 장식할 것이다. 시장에선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은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란 평이 나왔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대한항공 사건을 계기로 주주 행동주의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재계는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주주가치와 기업가치가 극단적으로 훼손될 경우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중요한 선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힘 실리는 주주행동주의


주주행동주의란 주주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이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오래전에 정착됐으나 국내에서는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지배력이 절대적이어서 그 동안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국내에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가 주주 행동주의 활성화에 전환점을 제공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자금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자율지침이다.  

 

'주총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던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은 결정적이었다. 이런 흐름에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작년 11월 등장해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전횡에 주주로서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KCGI는 지난해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과 한진의 지분을 확보해 양사의 2대 주주로 오른 뒤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공세를 펼쳐왔다.  

 

이에 한진 측도 KCGI의 주주제안 내용을 일부 받아들여 사외이사를 확대하고 유휴 자산을 매각하기로 하는 등 '그룹 중장기 비전 및 한진칼 경영발전 방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한진칼 주총에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놓고 법정 공방 끝에 KCGI가 패소하면서 그 기세가 잠시 주춤하는 듯 했다. 

 

이런 가운데 조 회장의 경영권 지속 여부가 결정되는 대한항공 주총이 이날 열렸고 결과는 조 회장의 패배였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국내외 의결권자문사들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잇따라 반대를 권고했다. 외국인 주주들은 조 회장이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실을 비롯해 총수 일가에 대한 국내 시민사회의 부정적 기류, KCGI의 주주 행동주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결정적으로는 대한항공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조 회장 재선임에 반대하고 외국인과 기관, 소액주주까지 여기에 가세하면서 조 회장은 주주들의 반대로 경영권을 잃은 국내 첫 대기업 총수가 됐다.

 

긴장하는 재계…"대한항공의 일 만은 아니다"


재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경영계 단체는 기업활동 위축을 우려했고, 재벌 기업들은 대한항공 사태가 확산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배상근 전무 명의로 유감을 표명하는 입장문을 내고 "국민연금이 이번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그동안 조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판단된다"고 비판했다. 

 

전경련은 "주주들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경련은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지난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한진칼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을 당시에도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게 되면 민간기업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는 첫 사례가 된다"며 "이 결정이 선례로 작용해 경제계 전체로 확산하면 기업활동을 더욱 위축시켜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성장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분명 창업주 등 기업가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번 사례를 계기로 기업가 정신 위축 등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되는 만큼 앞으로도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는 신중히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는 기업들


'메기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주주행동주의의 확산에 대응해 이미 일부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SK와 BGF리테일, 오리온 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기로 했고 자산총액 2조원 미만으로 감사위원회 도입 의무가 없는 농우바이오, 원익IPS, 한미사이언스 등은 감사위원회 설치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자발적으로 주총에 상정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기업들은 보다 선진화,투명화한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주주가치와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U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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