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옛 철길에서 만나는 향수(鄕愁)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6-07 11: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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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숲길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진풍경이 펼쳐진다. 연트럴파크 잔디밭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잔디에 누워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 버스킹하는 사람들 덕분에 귀도 즐겁다. 이곳은 뉴욕 맨해튼 센트럴 파크와 닮았고 해서 ‘연트럴파크’라고 불린다. 휴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 표정이 밝다. 


▲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책거리 [정병혁 기자]

 
총 6.3km 직선형 산책로 ‘경의선숲길’은 연남동 구간, 와구교 구간, 신수동 구간, 대흥ㆍ염리동 구간, 새창고개·원효로 구간으로 나뉜다. 2005년 용산역과 가좌역을 잇는 철로가 지하화되고, 2009년부터 남겨진 지상 구간을 공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염리ㆍ대흥동 구간을 시작으로 신수동 구간을 마지막으로 2016년 5월에 모든 구간이 완공되었다. 철로가 지나는 마을의 정체성을 반영해서 구간마다 테마를 조금씩 달리해서 조성되었다. 


▲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 [정병혁 기자]



▲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 [정병혁 기자]


연트럴파크를 둘러보고 건널목을 건넜다. ‘AK&홍대’를 지나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 이르니 ‘경의선 책거리’ 안내판이 보였다. 이 거리는 마포구가 경의선 홍대복합역사에 독서문화가 살아 숨 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책 테마 거리이다. 산책로를 따라 양옆으로 기차 모양의 건물에는 ‘창작산책’, ‘아동산책’, ‘미래산책’, ‘여행산책’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테마별로 책을 분류해서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5월에 있었던 ‘북플로우 책축제’ 플래카드가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다. 저자와의 만남, 소품 판매, 출판사 홍보,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산책로에서 열리고 있었다. 독자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현실을 방증하고 있는 듯해서 씁쓸했다. 


시골 간이역처럼 만들어놓은 ‘책거리’역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녹이 슨 선로가 놓여 있고, 플랫폼 이정표는 이곳이 세교리와 서강 중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철도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그 옛날에 역은 만남과 이별의 공간이었다. 


▲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책거리 [정병혁 기자]


경의선숲길을 가로지르는 와우산로32길은 일명 ‘땡땡거리’로 불린다. 철도 건널목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기차가 지나갈 때면 건널목에 차단기가 내려지고 “땡땡” 소리가 울렸다. 차도 사람도 기차가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근처에는 인디밴드들과 연극인들이 연습실로 사용하던 허름한 창고가 많았다. 술을 값싸게 먹으려는 배고픈 예술가들이 오가던 거리였다. 기타 치는 청년과 책을 읽는 여자 조각상은 땡땡거리의 과거를 말해주는 듯했다. 홍대 쪽으로 조금만 가면 산울림 소극장이 나온다. 


서강로를 가로지르는 ‘서강하늘다리’를 건너면 신수동 구간이다. 다리를 건너자 길이 한가롭다. 잔디 위에서 개를 훈련하는 사람이 보였다. 장난감을 던지면 개는 뛰어가 장난감을 물어왔다. 그 옆에서 세 마리 개들이 엉켜 장난을 치고 있다. 개들의 장난을 구경하며 걸었다. 사람들과 개들이 함께 즐기는 경의선 숲길이다. 


조금 더 걸으니 철로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소년 조각상과 철길 위를 걷는 소녀 조각상이 보였다. 철로에 귀를 대고 어디쯤 기차가 오는 지 확인했다. 아득한 기차의 덜컥거림과 기적 소리가 점점 선명해질 때 소년은 무엇을 상상했을까. 언젠가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날 꿈을 꿨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철로는 단순한 길이 이상이었으니까. 기차는 동경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누군가에겐 고달픈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철로 위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소년 조각상을 보고 어린 시절 막막했던 날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흥ㆍ염리동 구간의 경의선숲길에는 자전거길이 따로 있었다. 타세콰이어와 느티나무, 스트로브 잣나무처럼 키 큰 나무들도 많이 있다. 주변 건물들 높이도 만만치 않다. ‘소금마을’[鹽里]은 조선 시대에 소금장수들과 물자를 운반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마포나루와 가깝고 소금을 운반하고 보관하기에 적당한 위치였다. 그 흔적을 살려 ‘소금길’을 만들었다. 대흥역 2번 출구에서 숭문고등학교 정문까지 가면 소금길의 출발지인 소금나루가 나온다. 바닥의 노란 점을 따라가면 소금길 종착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소금길’ 산책을 할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며 다시 경의선숲길로 돌아왔다. 


공덕역 10번 출구에서 효창공원역을 지나 용산문화체육센터까지가 새창고개ㆍ원효로 구간이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이 길에는 가족 단위로 휴일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새창고개에서부터는 경사길이다. 용산(龍山) 줄기 중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새창고개를 일제가 경의선 철도를 건설하면서 절단했다. 조선 시대 출납을 관장하던 선혜청에 딸린 만리창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백범교 쉼터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석양이 아름답다. 효창공원역을 지나서 만난 옛날 화차로 만든 화단이 이곳이 과거 철길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원효로 구간 끝에는 폐화물 열차를 개조해서 만든 ‘숲길 사랑방’이 있었다. 이번 달 사랑방 ‘뚝딱뚝딱 목공교실’에서는 강아지 선반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110년을 기차가 달렸던 철로를 이제 사람들이 걷는다. 경의선숲길.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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