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아름다운 자연…사람이 있어 더욱 멋지다

UPI뉴스 / 기사승인 : 2019-06-07 11: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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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파나하첼, 안티구아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풍경은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숨을 막히게 할 정도로 대단한 경치라도 그 신비로움에 감탄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 참모습이 살아나기 때문이고, 또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경치는 훨씬 더 아름다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테말라의 산과 호수, 도시와 시장에서 만난 경관들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다. 


▲ 아티틀란 호수의 모습 [셔터스톡]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과테말라(Guatemala)'는 원주민의 말로 '나무가 많은 땅'이라는 뜻이다. 북쪽과 서쪽은 멕시코, 북동쪽은 카리브해와 벨리즈, 남쪽은 북태평양, 남동쪽은 엘살바도르, 동쪽은 온두라스와 접해 있어 나라 모양은 들쭉날쭉하다. 그러나 고대 마야의 유적부터 스페인 식민지 시대 유산, 활화산 등 볼거리가 가득할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고유종이 많고 독특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어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파나하첼…아티틀란 호수 품은 작은 도시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북쪽으로 147km 떨어진 파나하첼(Panajachel)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아티틀란(Atitlán) 호수가 있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해발 1562m에 있는 이 호수는 주변에 3000m가 넘는 산페드로 화산, 톨리만 화산, 아티틀란 화산 등이 맑고 깨끗한 물을 감싸고 있어 말 그대로 장관(壯觀)을 만들어내고 있다. 러시아의 바이칼호,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와 함께 세계 3대 호수로 꼽힌다. 


1만여 명 정도가 사는 이 작은 도시는 그린고테난고(Gringotenango, 외국인들의 마을)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인디오의 고유민속이 잘 보존되고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 오래 머물고, 사업차 오가는 외국인들도 많아서 붙인 듯하다. 또 호숫가에 있는 마야의 전통 마을들을 배로 둘러볼 경우 출발지가 되고, 호수를 따라 도는 자전거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 전통 시장이 열린 치치카스페난고 모습. 가운데 멀리 있는 흰 건물이 산토 토마스 성당.


아티틀란 호수로 내려가는 길에는 여행사는 물론 수많은 수공예품점과 기념품점, 카페, 식당이 줄지어 있어 취향에 맞게 쇼핑을 하거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길을 걷다가 뜻밖에 한글이 쓰인 간판을 만나 놀랐다. '브라운 홀릭 Cafe Loco'라는 곳으로 한국 청년들이 운영하는 커피숍이었다. 한국 노래를 들으며 반가움에 몇 마디 건넸지만 대답은 단답형으로만 돌아온다. 이럴 때 지나친 관심은 삼가야 한다. 왜 'Loco(로코, '미친'이란 뜻)'라고 붙였는지도 짐작만 해볼 뿐이다. 그래도 마음은 아끼지 않았는지 커피는 한결 맛이 있었다.


아티틀란 호수는 한때 체 게바라도 다녀갔다고 한다. 그는 페루 공산주의자로 과테말라에 망명 중이던 첫 부인 일다 가데아(Hilda Gadea)를 만나 1953년 결혼했다. 과테말라시티에서 머물던 그가 아티틀란 호수를 보고 “이곳에서는 혁명가의 꿈도 잊게 만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그래서일까. 저녁을 먹는 식당에서 기타를 든 가수는 '코만단테 체 게바라 아스타 시엠프레(Comadante Che Geuvara Hasta Siempre, 영원한 사령관 체 게바라)'를 부른다. 생각 탓인지 짧은 생을 마친 그의 한(恨)이 느껴지는 듯하다. 


호수 투어는 파나하첼을 출발해 솔롤라(Sololá), 산타카타리나 팔로포(Santa Catarina Palopó), 산안토니오 팔로포(San Antonio Palopó), 산티아고 아티틀란(Santiago Atitlán) 등 주변 마을을 들른다. 마을마다 원주민들의 독특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직접 수놓은 전통 의상이나 원주민 화가들이 그린 화려한 색상의 그림들, 목각인형, 작은 액세서리 등을 파는 가게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1960년대부터 찾아와 눌러 앉은 히피족들과 원주민들이 때로 갈등을 빚는 일도 있다고 한다.


파나하첼을 뒤로하고 약 50km 떨어진 키체마야 고원에서 열리는 최대의 전통 시장 치치카스테난고로 간다. 마야계 키체족의 근거지로 각종 공예품과 직물을 팔고 있어 엄청난 사람들이 몰린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에 장이 서는데, 규모도 크지만 광장 중심에 서 있는 산토 토마스 성당에서 진행되는 가톨릭과 마야족 민속을 결합한 의식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그 자체가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안티구아…오래된 건물 사이로 정겨운 산책


과테말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범죄율이 높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가급적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하지만 숫자로 나타나는 실상은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전체 범죄의 90%가 일어난다고 하는 수도 과테말라시티를 피해 가까이 있는 옛 수도 '안티구아(Antigua) 과테말라'로 향한다.


원래 16세기 중반 스페인인이 건설한 도시로 17세기에는 중앙아메리카 예술 학문 중심지였다. 하지만 주변에 아구아, 아카테난고, 푸에고 등 화산이 있어 지진과 홍수 피해가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1773년에 두 차례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 뒤 이곳을 '옛 과테말라', 즉 '안티구아 과테말라'로 부르게 되었고, 수도는 현재의 과테말라시티로 옮겼다고 한다.


안티구아는 스페인어로 '낡은, 오래된'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난 작은 골목에 예쁜 가게들, 커피숍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어 걷다 보면 정겹게 느껴진다. 도시는 작아서 한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중앙공원 근처에는 시청사인 옛 총독부 건물과 복원 공사 중인 대성당 등이 있고, 허물어진 성당들도 여러 곳 있다. 특히 산토도밍고 호텔은 폐허가 된 수도원 건물을 옛 구조를 살려 개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십자가 언덕은 시내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데 안티구아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들러볼 만하다. 


또한 이곳에는 어학원이 많아 비교적 싼 비용으로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과 과테말라 커피를 좋아하는 마니아들도 많이 찾고 특히 안티구아 오가닉 커피는 화산의 경사면에서 풍부한 비를 맞고 강렬한 태양을 받으며 자란 고급 품종으로 화산재를 품은 듯 스모키한 맛이 강하면서 초콜릿처럼 달콤함도 지니고 있어 인기가 높다.

파카야 화산…분화구 화산재에 마시멜로 구워


파카야 화산(Pacaya Volcano)은 과테말라시티와 안티구아 가까이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과테말라에서 활동이 가장 활발한 화산이다. 첫 폭발은 무려 2만3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23차례 폭발했지만 1860년부터는 휴화산 상태였다. 그러다 1961년 3월 갑자기 폭발한 뒤로 수시로 가스나 증기를 뿜어 올리고 있다. 2010년 5월에는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켜 화산재가 과테말라시티와 공항은 물론 주변 도시 여러 곳을 뒤덮었다고 하며, 가장 최근 폭발은 2014년 3월 2일로 기록되고 있다. 


▲ 저녁 무렵 십자가의 언덕에서 내려다본 안티구아 시내 모습. 맞은편에 푸에고 화산이 서 있다.


용암을 직접 보기 위해 분화구로 가는 길은 왕복 7km 정도로 화산이 흩뿌린 작은 자갈이나 모래가 많아 걷기 힘들다. 그래서 주민들이 말을 몰고 나와 타고 가기를 권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말 위에서 흔들리며 가다 보면 오히려 더 불안할 수 있다. 또 어차피 분화구까지는 갈 수 없으므로 결국 내려서 걸어야 한다. 분화구에는 시커먼 화산재가 바위처럼 뭉쳐져 있는데 한 바퀴 돌면서 살펴볼 수 있다. 다가갈수록 뜨거운 열기가 전해지고 가스 냄새도 풍겨 온다. 재를 뒤적이면 아직 불꽃이 살아 있는 곳도 있다. 거기에 꼬챙이에 끼운 마시멜로를 구워먹는다. 적당히 녹은 마시멜로를 후후 불면서 먹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처럼 자연은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풍요로워진다. 이제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과테말라의 또 다른 비경(秘境)을 찾아가보자.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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