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화재는 인재…超연결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남경식 기자 / 기사승인 : 2018-12-03 14: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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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치안, 금융까지 올 스톱
IT강국 먹칠 이어 '초공포 사회' 예고
"공공성 버리고 수익만 추구"…통신사 전반의 문제

"우리는 천재적인 혁신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기술을 성실하게 운용·관리·보수하는 사람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중 숨진 김군의 1주기를 맞아 언론 기고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전 교수는 "먼지가 끼지 않는 센서, 부식되지 않는 재료, 끊어지지 않는 연결, 고장나지 않는 기계는 없다"며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계는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김군들이 매일같이 살피고 수리하지 않으면 곧 무너지고 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고는 지난 11월 24일 현실이 됐다. 이날 KT 서울 아현지사 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는 IT기술로 대변되는 초연결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서울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중구 일대와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에 걸친 통신 대란은 수백만명의 일상을 마비시켰다.

 

▲ 'KT불통 사태 관련 소상공인연합회' 기자회견에서 소상공인연합회 회원 및 상인들이 피켓을 들고 KT화재에 대한 신속한 피해보상을 촉구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병원에서는 응급환자들이 아찔한 상황에 빠질 뻔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콜폰이 안 돼 응급상황에 의사를 부르지 못했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환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의사를 찾으러 갈 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병원은 응급환자의 전화 접수, 건강 보험 식별 등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치안에도 공백이 생겼다. 서대문·용산·마포 경찰서는 유선전화가 작동하지 않아 사건접수에 차질을 빚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12 신고를 접수해 무전기로 관할서 담당자에게 연결을 해야 했다. 에스원, ADT캡스, KT텔레캅 등 보안시스템도 먹통이 됐다. 위험상황을 감시하고 알려야 할 보안시스템마저 통신 장애로 다운된 것이다.

 

KT 통신망을 이용한 전화와 인터넷뿐 아니라 카드 결제 시스템까지 중단되며, 자영업자들은 생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피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전화와 온라인을 통한 주문을 모두 받을 수 없어 매출이 70% 이상 줄었다"며 "카드 결제도 안 되니 매장으로 직접 찾아온 손님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KT 통신망 장애는 인근 지역주민 등 약 50만명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망가뜨렸다"며 "이번 사고는 초연결사회의 초공포를 예고한 것이며 IT강국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 KT아현국사 화재현장에서 KT관계자들이 광케이블 및 회선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KT 통신대란은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며 '혁신'만 외쳐온 한국사회의 이면을 드러냈다. KT새노조는 11월 25일 성명서를 통해 "통신서비스는 정상 작동될 때는 그 누구도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대형 장애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통신 경영에 있어서 통신 공공성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영화 이후 KT는 공공성을 저버리고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비용 절감을 최우선 방침으로 삼았다"면서 "화재는 어쩔 수 없이 발생했을지 모르지만 엄청난 통신대란으로 비화한 것은 인재이며 KT 경영진의 책임이다"고 덧붙였다.


KT 화재가 통신 대란으로 이어진 원인으로는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장비와 시설의 유지·관리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점이 손꼽힌다. KT 내부 직원은 "KT에서 엔지니어들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며 "낙하산 경영진이 엔지니어의 의견은 배제하고 투자자본수익률(ROI)만 강조하며, 신기술 적용 때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장치를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KT의 전화국 지사는 이석채 전 회장 취임 전에는 전국에 320여곳이었으나 현재는 180여곳으로 40% 넘게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원효, 신촌, 가좌, 은평 등에 있던 통신장비가 아현지사로 집중됐다. KT 민주동지회는 "기술발전으로 교환기 등 장비가 수용할 수 있는 회선 규모가 커져서 가능한 일이었다"면서도 "KT가 임대 수익을 올리고, 시설 및 인력 유지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통신시설을 집중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문제는 통신사고 대비를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며 "사고 당시 근무자는 단 2명이었고, 자동 소화장치 등 화재 초기 진압 설비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 전국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대구경북지회가 임금체불과 노동착취를 고발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KT에서는 본사가 아닌 협력업체 직원들이 통신망 신규 개통 공사 및 유지, 보수를 담당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도를 낮게 설정한 셈이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처우도 열악하다. KT와 계약을 맺어 통신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전국의 53개 하청업체의 현장노동자 211명을 대상으로 올해 7~8월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65.7%가 일용직 노동자였고 평균 일일작업시간은 11.37시간에 달했다. 평균임금은 월 155.52만원에 불과했다.
 

통신망 관리의 외주화는 KT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KT보다 외주화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며 "오히려 최근 외주화에 중점을 둔 KT의 행보는 다른 통신사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구축중인 5G 인프라도 안전대책이 부족하다"며 "이번 같은 사고가 재발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SK텔레콤 5G 기지국의 안테나 숫자는 LTE 기지국의 8배다. LG유플러스 5G 전송장비는 LTE 장비보다 46배 많은 데이터를 처리한다. 이처럼 5G 시대에는 개별 통신장비에 더 많은 데이터가 집중된다. 이는 KT 아현지사 화재보다 작은 사고가 발생해도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태욱 KT 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사고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것이다"며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UPI뉴스 / 남경식 기자 ngs@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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